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CosmoNomad

by 전상희 js

몸은 왜 먼저 아는가

전상희


나는 오랫동안

아는 것과 살아지는 것이

같은 줄 알았다

이해하면 바뀌고

설명할 수 있으면 견뎌질 거라 믿었다

그래서 늘 생각을 앞세웠다

몸은 따라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몸은 언제나 먼저 반응했다


아직 말로 정리되지 않은 거부

이유를 붙이기 전의 피로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불편함


몸은

묻지 않았고

토론하지 않았고

설득되지도 않았다

그저

이 상태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아

라고 조용히 신호를 보냈다


몸이 먼저 안다는 말은

몸이 똑똑하다는 뜻이 아니다

몸은 생각하지 않는다

몸은 살아남는다


우리가 의식이라 부르는 것은

이미 수많은 선택이 끝난 뒤에

겨우 도착한 보고서에 가깝다


몸은

그 이전 단계에서

이미 수없이 많은 경로를 버리고

하나의 상태만을 통과시킨다

그래서 몸의 판단은

빠르고

비가역적이며

되돌릴 수 없다


아픔은 처벌이 아니다

피로는 나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이 방향은 유지 확률이 낮아

라는 정확한 통계적 경고다


몸은

앞으로의 삶을 계산하지 않는다

대신

무너지지 않을 확률이 높은 쪽으로

조용히 이동한다


우리는 그 이동을

컨디션이라 부르고

기분이라 부르고

컨디션 난조라며 무시한다


그러나 몸에게 그것은

단순한 생존 전략이다

그래서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마음은 타협한다

생각은 합리화한다

관계는 의미를 덧씌운다

하지만 몸은

오직 하나의 질문만을 반복한다

이 상태로 다음 순간도 통과할 수 있는가?

통과 가능하면

숨은 이어지고

통과 불가능하면

통증이 온다

그 단순함 때문에

몸은 잔인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단순함 덕분에

우리는 아직 여기 있다


몸이 먼저 안다는 사실은

슬픈 진실이 아니라

가장 따뜻한 구조다

몸은

우리를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끝까지 함께 가려 하지 않는 상태를

먼저 버려준다

무너질 관계

지속 불가능한 리듬

감당할 수 없는 선택을

몸은 가장 먼저 알아보고

우리 대신 거절한다

그래서

몸의 신호를 무시하고 나면

삶은 언제나

뒤늦게 무너진다


나는 이제

몸을 나보다 아래에 두지 않는다

몸은 나의 하위 시스템이 아니라

나보다 오래 살아남은 알고리즘이다

수십억 년 동안

실패한 경로를 지워가며

단 하나의 조건을 지켜온 시스템

무너지지 않을 것

몸이 먼저 안다는 건

몸이 나보다 현명해서가 아니라

몸이 나보다 오래 이 질문을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몸에게 묻지 않는다

몸의 말을 듣는다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지 못해도

몸이 멈추라 하면 멈춘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다음 순간으로 가기 위한

가장 정확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몸은 이미 알고 있다.

나는 아직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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