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구하기 2편 <스코틀랜드>
며칠 전 농장에서 일했다던 한 청년을 만났다. 그 농장으로 말하자면 스코틀랜드에 살면서 처음으로 용감하게 이력서를 낸 곳이다. 주소가 우리 동네라 내가 원했던 조건이랑 딱 맞았다. 구인란에 <농장 관리자>라는 제목 아래로 새를 관리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매일같이 새에게 먹이를 먹이고 몸무게를 재며 아프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일이란다.
난 자연을 좋아한다. 솔직히 스코틀랜드에 살면서 자연의 매력에 홀라당 빠졌다. 오렌지빛 턱시도를 입은 로빈이 우리 마당을 방문할 때마다. 파란 꼬리를 위아래로 흔들며 우리 집 나무를 올라타는 블루티트를 볼 때마다. 그들의 총총거림과 살랑거림에 숨이 멈춰지곤 한다. 근데 농장 관리자라면 새들을 더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과연 어떤 새를 만날까. 이력서를 쓰면서도 내일부터 당장 일 나갈 사람처럼 콩닥콩닥 심장이 자꾸 나대서 진정 되질 않았다.
이력서를 보냈다. 적임자를 만나면 개별 통지해 주겠다던 농장에서는 며칠째 연락이 없었다. 내 이력서에 뭐가 부족했을까. 어떤 말을 넣었어야 나를 뽑아 줬을까. 아니 면접이라도 일단 보게 해 주지. 생각하면 할수록 그 농장주가 미웠다. 치. 나처럼 새에 진심인 사람이 어딨다고?
그러다 농장에서 1년 정도 일하다 그만둔 한 청년을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 무지하게 궁금했다.
"어떤 새를 관리했어요?"
"닭이요"
"네에?....."
닭 사육장이라고? 먹이 주고 몸무게 재고 매일같이 얼마큼 자랐나 확인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토실토실한 닭이 기대치의 몸무게가 되고 나면 도끼로 목을 잘라야 한단다. 그것까지 농장 관리자의 몫이라고. 헐.
런던에 사는 시아버님 집에는 몇 년째 닭들이 살고 있다. 오랜만에 우리 가족이 아버님 댁을 방문했던 여름, 새벽마다 시끄럽게 울어대던 수탉 한 마리가 있었다. 복잡한 도시 생활에 새벽 네시의 꼬끼오는 반갑지 않았을 터다. 이웃 주민의 신고로 수탉을 없애야만 했다. 그 임무는 이웃의 불만에 동조했던 남편에게 떨어졌다. 남편이 닭 모가지를 손에 쥐고 날이 넓은 식칼을 세차게 휘 두리던 날, 나는 소리를 크게 틀고 텔레비전을 봤다. 그날 저녁, 식탁 위로 올려진 닭요리를 보며 남편이 했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단 칼에 끊어지지 않는 게 목숨이에요."
닭 모가지를 몇 번이고 더 내리 쳐야 닭이 쓰러졌다는 말을 듣고도 깨끗이 접시를 비웠던 기억이 새롭게 떠올랐다. 아 근데 처음부터 구인란에 닭이라고 써야 되지 않나? 괜히 새라고 쓰인 바람에 잔잔했던 내 마음까지 확 흔들어 놓고. 흥. 미워했던 마음속의 농장주를 시원하게 떠나보냈다.
두 번째는 온라인 한국어 튜터를 알아봤다. 현재 한국어를 배우고 있으니 공부하면서 가르치는 것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예전에 남편이 온라인으로 한국어를 배웠던 웹사이트를 찾았다. 자격증도 있고 경력도 화려한 한국어 선생님들이 마우스 휠을 굴리면 굴릴수록 끝없이도 나타났다. 이렇게나 많은데 굳이 나한테 배우려는 학생이 과연 있을까. 의심반 의지반으로 지원서를 작성하고 영상을 만들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 가르칠 거라는. 나만의 티칭 노하우가 스페셜할 거라는 척하며 영상을 찍었다. 웃긴다. 참으로 어색했다. 마치 잠옷 바지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영상을 찍는 것처럼. 보는 이는 몰라도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어색함에 오들거렸다. 5일 안으로 연락을 주겠다더니 결국 연락은 없었다.
일자리 구하기 1편에서 말했듯이 도서관과 동네 게시판에 내가 만든 광고지를 붙이고 웹사이트를 만들어가며 지금은 동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K pop을 사랑하는 십 대 소녀 새라와 K drama를 사랑하고 지금은 은퇴하신 신사 앤디와 함께. 앤디는 센터에서 공부하면 사용비를 내야 하니까 자기 집에서 수업을 하자고 친절하게 제안까지 해 주었다.
'우영우,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별똥별… 역삼역'
ㄱ, ㄴ, ㄷ... 자음, 모음, 받침을 배워가며 우영우가 왜 이렇게 자기소개를 했는지. 한 자 한 자 읽어가며 뜻을 알아보는데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신이 난다. 최근에는 캐나다에 사는 한 엄마가 자기 아이들에게 한국어 줌 강의를 해 달라고 연락이 왔다.
단칼에 끊어지지 않는 게 사람 목숨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경제 위기에 빨간불이 켜진다 해도 난방비가 겁나서 이불 덮어가며 자판기를 두둘 기는 지금도 목숨을 이어갈 방법은 새라와 앤디처럼 나에게 찾아오기도 때로는 내가 찾아가기도 하나보다.
< 우리 가족이 할 수 있는 일들 찾아가기>
- 집안 온도는 18도로 설정. 오전 7-9시, 저녁 4시-10시 (온도를 1도만 낮춰도 연간 약 145파운드를 절감)
- 샤워는 일주일에 3-4번, 8분에서 4분으로 샤워시간 줄이기. (연간 £70 절약 가능. 일주일에 5번 샤워 기준)
- 옷 세탁은 30도로. 일주일에 한 번 덜 돌린다면 연간 £28를 절약할 수 있다.
- 오븐 사용을 줄이고 빨리 조리할 수 있는 전자레인지나 에어프라이어를 쓰기.
- 모든 전구는 LED로
어제는 우리 동네에서 '어떻게 하면 에너지 비용을 줄일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세미나가 열렸다. 모두가 어려운 만큼 각자에게 맞는 방법들을 찾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혼자가 아니라 힘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