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랑 처음 밤거리를 걷던 날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외국인과 걸었던 날이기도 하다. 만날수록 내 가슴을 콩닥 이게 하는 이 사람. 검은색 후드에 어두운 색의 바지를 입고 있었다. 환경에 따라 색깔이 바뀌는 카멜리온처럼 남편의 검은 피부가 밤하늘에 보호색으로 바뀌고 보니 바람과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그 후로 남편 옷은 무조건 밝은 색으로 골랐다. (16년 살아보니 남편에겐 핑크가 제일 잘 어울린다는.)
어두운 색의 옷을 입으면 사진도 어둡게 나온다. 희미한 가로등 아래에서 찍힌 사진은 더더욱 최악이다. 사진을 찍을 때 조명이 있는 쪽으로 남편을 슬며시 데려가면 왜 여기서 찍냐고 물어본다. 아니.. 정말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여기가 밝잖아.”
지금처럼 스마트폰 하나로 밝기나 명암, 색상, 질, 거리감까지 조절 가능한 세상이 왔어도 편집 한번 하질 않는다. 나도 검색해서 오늘 알았는데 사진에도 '성형' 메뉴가 있다고 한다. 피부 톤을 밝게 해 주는 '미백효과'며 쉽게 눈과 턱선을 수정할 수 있는 '스마트 뷰티', '갸름하게', '눈 확대', '잡티 제거'까지 말이다. 뭘 들이 맨들 남편에겐 돼지 발가락에 낀 금반지나 다름없을 거다. 정말 모르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척을 하는 것도 아닌 관심이 없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괜찮은데.. 왜 고쳐?”
“뽀샤시하게 보일라고”
"아..."
한 번은 남편이 일요일에 라이브 강의를 하러 잉글랜드 하트포드로 내려갔다. 같이 가진 못했지만 아침에 실시간으로 들어 보려고 페이스북을 켰다. 한 여자분이 남편을 소개했고 남편이 강단 앞에 섰다. 문제는 갑자기 카메라 앵글이 바뀌면서였다. 어찌나 웃음이 터지던지 콧물까지 튀어나왔다.
커다란 콧구멍 두 개가 주인공처럼 스크린 중앙에 자리 잡아 있었고 그 오른쪽 구석으로 남편의 움직임에 따라 두 눈이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어쩜 카메라 앵글을 그렇게 잡았을까? 한 3분 듣다가 고개를 돌렸다. 팟캐스트처럼 이어폰을 끼고 아까 멈췄던 설거지를 했다. 이 영상을 보고 있을 사람들도 나처럼 딴짓을 하며 듣기를 간절히 바랐다.
“오늘, 카메라 앵글이 왜 그래?”
“어.. 나도 왜 탁자 밑에 카메라가 있을까 생각이 들더라. 근데 왜?”
“당신 콧구멍밖에 안 보였어.”
“어.. 그렇게 나왔구나…”
뭐야. 앞집 아저씨 일처럼 대답하네. 남편은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스윽 돌아서더니 자기 일을 한다.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남편은 페이스북도 없다. 인스타그램도 그 흔한 블로그나 카톡도 없다. 단 왓츠앱 하나 있다. 남편의 친구들이 내 페이스북을 보고 남편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하니 장담하건대 옆 동네에 BTS가 왔다 해도 동굴 안에서 마늘과 쑥을 반찬삼아 아침과 저녁을 꼬박 챙겨 먹을 사람이다.
한 달 전 남편 폰, 화면 사진으로 뜬 내 얼굴을 보고 섬뜩했다. 나도 모르게 언제 찍었는지. 포즈도 없이 그냥 어딘가를 쳐다보며 웃는 사진이었다. 줌을 했는지 그냥 찍었는지는 모르지만 얼굴이 화면에 꽉 찼다. 워낙에 화장을 안 하는 데다가 사진 편집 하나 되지 않아서 얼굴에 있는 수 십 개의 점들이 겁나게 또렸했다.
“이건 아니다. 바꾸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인데 왜?”
“아파. 내 눈이 아프다고. 바꿔.”
“내 거야. 싫어.”
“바꾸라고.”
“싫어”
내가 졌다. 남편 폰으로 맘에 안 드는 내 사진이 찍히면 쓰레기통에 몰래 버리곤 했다. 남편은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 금세 복구 시키기를 반복했다. 휴지통에 몰래 잠입해서 전멸시킨 사진들도 이 사진 어디 갔냐며 금세 핸드폰 접근 금지령이 떨어진다. 하긴 내 핸드폰도 아니고. 내가 이길 수가 없지. 어쩌면 우리 남편은 무관심한 것도 아니라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를 정말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그가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지만 남편 스마트 폰 사진 속에서 섬뜩했던 내 얼굴이 요새 들어 그럭저럭 괜찮아 보인다. 희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