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 우후 우후'
뒤틀리던 통증이 잠시 가라앉으면 참았던 호흡을 정신없이 내뱉었다. 대여섯 번 숨을 쉰 것 같은데 다시 날카로운 통증이 뼛속까지 밀려왔다. 이미 축축해진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눈물 콧물 흘려가며 공처럼 웅크리고 앉아 배를 움켜쥐었다. 내 등을 동그랗게 마사지해 주던 남편은 구급차가 길을 잃어서 이제 오는 중이라고 했다. 한 시간이 지났을까. 두 명의 남자 응급 구조사가 미안하다며 들어오는데 갑자기 일시 느림 버튼을 누른 것처럼 모든 게 느리고 뿌옇게 보였다. 그때였다. 남편이 빨갛고 노란 수건을 펴서 거실 바닥에 눕혔고 구조사들은 가방 안에서 밀폐된 장갑과 도구들을 바닥에 깔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 여기서 아기 안 낳아요! 병원 가요. 빨리!"(영어로)
세 남자의 황당한 시선이 일시 정지되는 순간이었다. 앗, 뜨겁다. 바로 고꾸라져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우리 집 거실은 연한 베이지 카펫으로 되어있다. 낡은 카펫이 안쓰럽다며 주인이 새로 바꿔준지 얼마 되지 않았다. 첫째를 낳아봐서 아는데 강처럼 흐르던 피를 남편이 도와준다 해도 닦아낼 자신이 없었다. 응급 구조사는 차분하고 친절하게 다음 진통이 멈추면 집 앞에 있는 구급차로 뛰어가라고 했다. 베개에 얼굴을 묻힌 채 오케이 손짓을 보냈다. 죽을 것 같은 통증이 잠깐 멈췄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보름달 같은 배를 꼭 쥐고서 잽싸게 달렸다. 벌겋게 달아오른 뺨으로 찬 바람이 스쳤다. 맨발로 구급차 침대에 누웠을 때다. 둘째 아기가 양수와 함께 미끄럼틀을 타듯 쑥 빠져나왔다. 이러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응급 구조사 얼굴 보기가 무척이나 민망했다. 팔뚝만 한 아기를 끌어안고 미안하다는 따발총만 쏘아댔다.
도착한 곳은 런던의 성 마리아 병원. 구급차에서 태어난 둘째 아이와 남편과 나는 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보통 영국에서는 분만 후 아이와 산모가 건강하다면 바로 집으로 가게 한다. 밤에 출산을 했다면 나처럼 다음날 아침 토스트 두세 개를 먹고 집으로 간다. 전 날 밤새도록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처럼 다리가 후들거렸다.
엄마는 나를 집에서 낳았단다. 손도 잡아주고 마사지해 주는 남편도 없이. 교회 집사님 두 분이서 가위를 소독하고 뜨거운 물을 받아 가면서. 오들오들 심하게 추웠던 겨울이었다지. 조그만 방바닥에서 내가 태어난 날은.
"나 태어나고 엄마 혼자서 뒷정리 다 한 거야?"
"아니, 집사님들도 도와주고 나도 하고.. 그때는 다 그랬지 뭐."
"엄마는 어떻게 집에서 딸 넷이나 낳았데?"
"빛나는 보석이 태어나는 순간, 엄마라는 초능력도 태어나는 거 같아. 너처럼 말이야. 우리 딸, 수고했네."
엄마라는 초능력이라니. 전화로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왠지 기분이 좋았다. 나에게 빛나는 보석이 두 개나 있다니. 행복했다. 보석 같은 아기가 곤히 잠든 사이, 가만가만 부엌으로 갔다. 혼자서 미리 만들어 뒀던 소고기 미역국을 냉동실에서 꺼냈다. 작은 냄비에 얼은 미역국 덩어리를 넣고 한소끔 끓였다. 단단한 초록 미역이 흐물흐물 늘어지는 게 꼭 내 다리 같아서 금새 시무룩해졌다. 뭉근히 폭 끓여진 미역국에서 하얀 김이 폴폴 피어오른다. 뽀얀 미역국에 남편이 해 준 냄비 밥 한 공기를 몽땅 넣어 말았다. 한 숟갈 떠먹을 때마다 또르르 떨어지는 눈물방울도 더해졌다. 담백한 고마움과 짜디짠 수고로움 같은 것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배 속이 따뜻했다. 꼭 내 마음을 다독여 주는 것 같았다. 나를 낳던 엄마의 마음도 이랬을까. 엄마가 돼도 엄마가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둘째 아이가 지금은 11살. 우리 집엔 보석 세 개가 반짝거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