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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May 30. 2024

폐교 위기의 초등학교를 살리는 길

 영국 펀드레이징(기부) 문화/ 바비큐 파티

6월 초, 아들이(8살) 가게 될 학교 트립이 Blair Drummond 사파리 공원이다. 기린, 코뿔소, 사자등 차로 운전하면서 와일드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 스코틀랜드에 사는 아이들이라면 꼭 한번 가봐야 할 인기 있는 장소로 꼽힌다. 아쉽게도 스코틀랜드의 정부 지원만으로는 이런 학교 트립을 갈 수 없다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공립학교마다 학부모들 중심으로 펀드레이징(모금)을 한다. 처음에는 펀드레이징이 너무 낯설었다. 학부모들에게 부탁하는 글이 두 달에 한 번꼴로 올라오는 게 별나기도 하고 귀찮기까지 했다. 몇 개의 펀드레이징 예를 들면 이렇다. 


'Raffle 티켓 팔기'

학교 발표회나 마을의 특별 행사 전에는 아이들에게 라플 티켓을 사도록 권장한다. 한 장당 £1. 아이들은 가족이나 친구, 이웃에게 이 티겟을 파는 형식이다. 각 라플 티켓마다 번호가 있고 발표회나 행사 당일에 라플을 무작위로 뽑아서 그 번호를 가진 사람에게 선물이 돌아간다. 물론 모든 선물도 학부모들이 준비한다. 작년 크리스마스 행사 때 라플로 300파운드(521,800원)가 기부되었다. 

학부모들이 준비한 '라플' 선물


'학교 가든 오픈 데이'

8월이 되면 학교 가든을 지역 주민들에게 오픈한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도 학부모도 가든장갑을 끼고 잡초를 뽑고 꽃을 심고 나무를 정돈하며 정성을 모아 우리 학교만의 가든을 만들어 간다. 작년에 가든 오픈으로 496파운드(862,730원)가 모여졌다.  


'크리스마스 카드 팔기'

아이들이 직접 디자인한 크리스마스 카드를 £4.95(8,600원, 12장의 카드와 봉투)로 판다. 생일이나 기념일, 크리스마스 때마다 카드를 주고받는 문화가 보편화된 영국에서의 카드세일은 기부가 필요할 때마다 빼먹을 수 없는 아이템 중 하나다. 카드세일로 115파운드(200,000원)를 벌었다. 


'BBQ 파티'

뭐니 뭐니 해도 천 파운드(1,739,000원) 정도의 기부금이 모여지는 최고의 행사는 바로 봄에 열리는 '바비큐 파티'다. 냉랭하게 바람이 많이 불었던 작년과 달리 저번주 토요일에 열렸던 바비큐 파티는  날씨가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한 사람당 입장료 5파운드(8,700원)를 내면 바비큐 가격도 포함되어 있다. 영국 바비큐 파티라 하면 그릴에 직접 구운 햄버거와 소시지가 대표 메뉴다. 그 외에 차와 케이크, 장난감, 화분 세일의 가판대가 있고 물에 둥둥 떠 있는 오리를 잡는다거나, 코코넛 던지기 등의 게임 가판대도 보인다. 페이스페인팅이나 축구, 점핑캐슬 등 뭐든 원하는 걸 하려면 £1 - £2(1,740 - 3,480원) 정도를 지불하면 된다. 나는 빅토리아 케이크와 김치, 쿠스쿠스 샐러드를 만들어 갔다. 다른 부모들도 집에서 키운 화분이나 새 거지만 자기한테 필요 없는 장난감 또는 게임을 위한 여러 도구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왔다. 엄마, 아빠들이야 당연히 아이와 학교를 위해 팔을 걷어붙인다고 하지만 내가 놀라웠던 것은 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었다. 13살에서 15살 되는 일곱 명의 졸업생들. 이들은 커피나 아이스크림을 팔거나 축구, 페이스페인팅, 네일 아트로 봉사했다. 무려 네 시간 동안 이어진 파티였지만 어느 누구도 얼굴을 찌푸리거나 불평하는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매대에 사람이 없으면 다른 매대에 가서 일을 도왔고 잔디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차나 커피를 마시겠냐며 물어보기도 했다. 


선생님과 학생이 합쳐서 41명인 Muckhart 초등학교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Muckhart이라는 마을에 있다. 2,800명이 사는 조그만 마을이다. 전체 학생과 교직원을 합쳐서 마흔한 명이 전부인 이 작은 초등학교. 안 그래도 정부의 재정이 부족한 공립학교에서 학생의 수에 따라 지급되는 재정으로는 Muckhart 초등학교가 폐교할 위기에 처해있다. 하지만 이렇게 조그마한 학교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었고 무려 천 파운드가 모여진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학교를 사랑하는 아이들과 학교에서 받은 혜택을 돌려주고 픈 졸업생들, 학교가 잘 되길 바라는 지역 주민들의 마음이 십시일반 모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모여진 학교 기부금으로 가고 싶은 여행도 보내주고 싶고 읽고 싶은 책도 사 주고 싶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컴퓨터나 아이패드를 공급해 주고픈 게 이 학교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오히려 한 사람이 큰돈을 기부한 후 그 사람에게 알게 모르는 파워가 쏠리는 것보다는 훨씬 민주주의적인 것이다. 


영국 펀드레이징(기부) 문화

'아름다운 재단 기부문화' 연구소에 따르면 영국은 165,000개의 등록 단체와 약 80,000개의 미등록 자선단체가 있다. 이들은 연간 680억 파운드의 수입이 발생하고 이중 200억 파운드가 국제구호에 쓰이고 있단다. 여기서 가까운 스털링이라는 도시만 가도 옷, 책, 물건 등이 재활용되어 다시 싸게 팔리는 자선단체 상점들만 열 군데나 된다. 우리 국민이나 나라만을 위한 자선 단체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를 위한 자선 단체가 있다는 걸 보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있는 '펀드레이징'의 힘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난주 토요일에 열린 바비큐 파티


작년은 바비큐파티가 뭔지 몰라서 그냥 방문만 했다면 이번에는 나와 딸도 직접 나서보기로 했다. 나는 케이크 메대에서 케이크와 쿠키를 팔았다. 역시 어딜 가나 음식 메대 인기가 제일 좋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바람에 점심 때는 먹고 있던 햄버거를 그냥 입에 구겨 넣어야 했다. 큰 딸은 자기 친구들과 함께 아이들에게 페이스페인팅을 해 주었다. 얼굴에 나비나 벌 모양을 한 아이들이 잔디 위를 훨훨 날아다니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바비큐 파티가 다 끝나고 정리를 하고 있을 때쯤 큰 딸이 살짝 다가오더니 속삭였다.


"엄마, 나 내년에도 또 올 거야. 그동안 페이스 페인팅 연습 좀 해야겠어."


나도 그렇게 하자고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뿌듯함이 쭈욱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발 밑으로 새어 나오는 뿌듯함도 하루종일 우리를 따라오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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