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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May 23. 2024

이런 개밥 같은 걸 먹어?

영국 스코틀랜드 학교 급식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나오는 학교 급식은 어떨까? 궁금했었다. 큰 딸은 중 3이 되도록 계속 도시락만 쌌다. 급식이 맛이 없고 줄을 오래 서야 하니까 급식대신 도시락을 선택했다. 그러다 작은 딸이 중학교를 가면서 급식을 먹게 되었다. 점심에 따뜻한 음식을 먹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스코틀랜드의 학교 급식은 초등학교 5학년까지가 무료고 그 후부터는 돈을 내야 한다.  


어제 학교 급식 메뉴는 머핀(80p/1,390원), 치즈페니니(£1.5/2,600원), 감자칩 한 봉지 100g(25p/433원)이었다. 총 £2.55(4,423원) 파운드가 지급됐다. 주식으로 피시 앤 칩스, 피자, 토마토 파스타, 인도카레, 토마토 수프 등 매일 바꿔서 나온다. 학생들에 따라 주식만 먹을 수도 있고 과일, 머핀, 봉지 과자, 쿠키, 음료수, 우유 등을 먹고 싶은 것만 선택해서 계산하면 된다. 학교에서 주식으로 나왔다는 치즈페니니가 생각보다 꽤 컸다. 안에 뭐가 들었을지 궁금해서 딸한테 물었더니 '치즈'란다. 양상추나 버터도 바르지 않고 오직 치즈만 있단다. 언젠가 점심 메뉴로 인도카레 나왔는데 맛있었다며 사진 한 장이 날아왔다. 딸은 자랑삼아 보냈을 테지만 나에겐 충격이었다. 길거리 음식처럼 종이그릇 위로 올려진 인도카레.  


왼) 인도카레                         중) 치즈 페니니                       오) 토마토 파스타

'이런 개밥 같은 걸 먹어?'

차마 목구멍까지 차 올랐던 이 말을 내뱉진 못했다. 하지만 으등그러진 내 얼굴을 어째 숨길 수가 없었다. 

"이런 걸 먹어?"

"어.. 맛있어."

딸아이가 날 쳐다보지 않아서 다행이었을까. 하지만 정말 어이가 없었다. 


큰 딸은 치즈 베이글 하나, 포도 몇 알, 사과 한 개, 초콜릿 비스킷을 점심으로 가져갔다. 딸만 했을 때 밥과 국과 반찬을 도시락으로 싸갔던 나로서는 저 걸로 배가 찰까 우려도 되지만 점심에 밥보다 샌드위치를 더 선호하는 영국 남편을 생각하면 저 점심이 괜찮을 거란 안심이 들기도 한다.   

큰 딸이 싼 점심


우리 집 저녁상도 간단하다. 메인식사 하나와 샐러드가 보통이니까. 메인식사가 스파게티, 라자냐, 마카로니치즈, 파히타라면 샐러드는 상추, 방울토마토, 오이, 피망을 썰어서 한 그릇에 담거나 브로콜리와 당근을 삶을 때도 있고 오이나 당근을 손가락 크기만큼 잘라서 먹기도 한다. 어째보면 우리 집 저녁 밥상도 학교 급식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4천 원의 점심' 영국 어딜 가도 4천 원 주고 메인음식과 디저트, 과자까지 다 먹을 수 있는 곳은 없다. 그걸 모르는 게 아니다. 단지 '정성'이 빠져버린 점심 같아서 서운한 마음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아서 그럴 뿐이다. 동그란 접시 위로 토마토 파스타와 야채 한 움큼 정도만 얹어주면 좋겠건만. 내가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하고 있는 걸까. 


45분의 점심시간. 개미처럼 길게 이어진 줄이 짧아질 때까지 종종거리는 아이들이 눈에 선하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고 하얀 연기가 솔솔 올라가는 급식을 받았는데 막상 앉을자리도 마땅치 않다. 앉아 있는 아이들 또한 빈자리를 내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질 것이다. 점심을 다 먹고 접시를 두고 가기보다는 차라리 종이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게 오히려 편하게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22년 스코틀랜드 정부가 내세웠던 <학교에서의 건강한 식습관> 지침서를 찾아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첫 번째로 과일과 샐러드 항목이 적혀있었다. 


'학교 급식에서 주식과 함께 샐러드는 반드시 제공되어야 한다'


이 글을 다시 또박또박 읽었다. 동그란 접시는 포기하더라도 샐러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보통 질문이 있어서 학교로 메시지를 보냈지만 이번처럼 뭔가를 부탁하는 메시지는 처음 써 본다. 

'아이들 급식으로 신선한 샐러드나 로스팅한 야채가 매일 제공되면 좋겠습니다.' 

나름대로의 생각과 주된 요지를 정리해서 적었다. 남편한테 물어보며 최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메일을 보낸 지 이틀이 지났지만 아직 연락은 없다. 물론 우리 작은 딸이 큰 딸처럼 도시락을 싸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급식이 어떻게 나오는지 알게 된 이상 급식 플러스 정성이 같이 나왔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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