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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Sep 26. 2024

어느 할아버지의 자살

민폐가 아니라 사랑이에요.

여든두 살의 할아버지가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딸이 받아온 한 달 치 수면제를 꿀꺽 다 삼키고서 저 세상으로 떠나갔다.

'약이 작아서 마무리될지 모르겠구나. 확실해야 할 텐데..'

손바닥만 한 종이에는 확실하게 죽지 않을 것 같은 염려 말고도 또 하나가 담겨있었다.

'미안하다.'

빼곡하게 8줄의 글이 적힌 종이에는 7줄이 다 '미안하다'라는 말이었다.

뭐가 그렇게 미안했을까.


할아버지는 채소장사를 했었다. 이른 새벽부터 수레에 그날 들어온 채소를 담고 골목골목을 다녔다. 그렇게 팔린 채소값으로 오 남매를 키웠다. 아이들이 다 자라서 둥지를 떠날 때쯤 할아버지는 경비로 일했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 아빠와 함께 식사하셨던 사진을 보면 할아버지 콧구멍에 산소줄이 끼어 있었다. 밥숟가락 들고 환하게 웃고 있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백 년까지는 거뜬히 살 것처럼 건강해 보였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다녀온 아빠와 통화를 했다. 가깝게 알고 지내던 형을 떠나보낸 아빠의 마음이 어떨지 궁금했다.

“억울하다. 억울해.”

아빠는 죽도록 고생한 형의 삶이 억울하단다. 그의 아내가 죽고 할아버지는 종종 외롭다는 말을 했었고 우울증 약과 수면제를 먹기 시작했다. 아빠의 삶도 억울한 것 같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빠는 행복하지’라는 대답을 했다.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아빠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골라서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빠는 왜 행복할까?

"애들이 잘 지내고 잔소리하는 와이프가 있으니 난 행복해. 외로울 틈이 없잖아."

아빠가 웃으며 대답했다. 핸드폰 넘어서 입꼬리가 올라간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말하지만 아빠가 외로울 거라는 생각은 종종 한다. 밥 사주길 좋아하고 집으로 초대하길 좋아하던 아빠가 언제부턴가 사람 만나기를 꺼려했던 건 10년 전 중풍이 오고부터였다. 왼쪽에 마비가 오면서 숟가락 하나 들기도 어려웠다. 지금은 혼자서 화장실도 가고 산책도 하지만 오 분 걸으면 10분은 의자에 앉아서 쉬어야 한다. 말도 점점 어눌해지면서 사람들과 말하는 것도 불편해졌다. 교회에서 그룹끼리 소풍 가는 날이면 아빠는 불안해했다. 느릿느릿 걷는 아빠를 사람들이 기다려줘야 하고 의자나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계속 확인할 뿐만 아니라 아빠의 말을 천천히 귀 담아야 할 인내도 필요했다. 아빠는 이 모든 걸 ‘민폐’라고 불렀다.


마흔 중반이 되어버린 내가 외국에서 살다 보니 내 나이 또래의 친구만큼이나 할머니 벌 친구도 많아졌다. 학교 방과 후 교실에서 만난 제시카(83세)는 초등학교 아이들과 종이나 클레이로 만들기를 한다. 교회에서 하는 토들러 그룹( Toddler's group, 0세부터 3세까지의 놀이 시간)을 돕는 티파니(80세)는 아이들과 부모를 동그랗게 모여놓고 '반짝반짝 작은 별'을 부른다. 금요일마다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는 '라더'(Food ladder)라는 곳에서 폴은(78) 오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만들어 준다.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바둥거리는 엄마들에게 이들은 존재만으로도 힘이 된다.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아이들에겐 '옳거니' 장단을 맞춰주는가 하면 문 밖에서 무료로 주는 음식을 가져갈까 말까 망설이는 이들에겐 커피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래주기도 한다.

초등학교 방과 후 공예 클래스


제시카, 티파니, 폴과 함께 산책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러 갈 때도 종종 있다. 영어에는 할머니에게 쓰는 존칭어가 없고 이름을 부르다 보니 보이지 않는 장벽이 낮아진 기분이랄까. 친구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의 나이를 까먹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례하다는 말은 아니다. '친구'라면 지켜야 할 존중과 신뢰만 있다면 나이가 문제 될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대화를 좋아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도 같아 스릴 있다.

할머니가 지금 사귀는 연하 남자친구와 울고 웃고 지내는 이야기를 할 때면 설레곤 한다. 스물네 살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 그 아들이 어릴 적 낙서했던 벽돌을 만지며 이야기할 때면 같이 펑펑 눈물을 쏟기도 한다. 한 친구는 중국 만리장성을 걷다가 선글라스가 떨어졌단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장벽 밑으로 내려가려다 군인이 이를 보고 그의 안경을 주워줬단다. 만리장성 장벽을 내려가려던 친구가 백발의 70대 노인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할머니 친구와 산책을 하다 보니 깨달은 것이 하나 있는데 내 걸음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생겼다. 풀밭 사이로 솟아오른 검지만 한 버섯들이 보이고 나무 위에서 햇볕을 쬐고 있던 검푸른 도마뱀도 보았다. 어느 날은 새들의 지저 기는 톤이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도 발달하다니.. 신기했다.


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13살 둘째 딸은 앞집에 살고 있는 제니 할머니(73살) 집에 자주 들락거린다. 이래 봐도 제니 할머니가 작년 가든대회 때 우리 지역구에서 2등을 하고 신문 앞면에 대문짝만 하게 찍혔었다. 사진 속 할머니 옆에는 한 아이가 수줍게 웃고 있었는데 그 여자아이가 우리 딸이었다. 딸은 두 달 가깝도록 할머니와 함께 정원을 가꿨다는 이유로 청소년 가든상을 받았었다. 그날 이후로 딸은 물을 주거나 잡초를 뽑으러 앞집을 찾아갈 때도 있고 새로운 꽃을 산 할머니가 꽃구경 하라고 딸을 부를 때도 있다. 그냥 내 집처럼 드나들 때마다 할머니는 딸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의 엄마는 한국에서 살고 남편의 엄마는 런던에서 살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에서 살고 있는 우리 집에 할머니가 놀러 오는 날은 1년에 한 번 올까 말 까다. 할머니가 고픈 딸에게 제니는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의가가 되어주는 친구가 되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사람과 사람은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아빠가 불렀던 '민폐'라는 건 '행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 하늘을 보면서 이 하늘을 같이 바라보고픈 사람이 있고 노란 낙엽이 떨어진 거리를 손잡고 걸어 줄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행복은 흘러가는 것 같다.


"아빠 때문에 난 행복해요."


약간은 어색했지만 아빠와 통화를 끝내기 전 꼭 하고 싶은 말이었다. 지금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 평생 내 옆에 있을 것 같은 아빠라서 너무 당연한 말이고 아빠가 알 것 같아서 굳이 이런 말을 해야 하나 생각했었다. 이제는 대놓고 말해야겠다. 아빠가 내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지금도 어딘가에서 할아버지처럼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때문에 대수롭지 않은 하루가 괜찮았다고 말할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들에겐 구수한 된장국 한 그릇 같이 먹고 '맛있다' 소리칠 딱 한 사람만 있으면 족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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