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의 파티에서 끔찍한 살인 범행이 이뤄졌다. 문제는 내가 그 파티에 초대되었다는 것이다.
개츠비의 파티를 생각한 주인공은 우리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친구의 아빠 리드였다. 무슨 마흔 살의 생일잔치를 이렇게 요란하게 할까? 리드가 건네준 초대장을 받고 떠오른 생각이었다. 초대장 말고도 A4 두 페이지나 되는 긴 설명서도 함께 첨부되었다. 나는 내 이름이 아닌 그레타 개츠비(Greta Gatsy)라는 사람으로 초대되었다.
1925년 피츠제럴드가 쓴 '위대한 개츠비'는 꽤 유명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책으로 접했거나 2013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개츠비를 맡은 '위대한 개츠비'의 영화를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는 '으르렁 거리는. 광란의 1920년'(the American Roaring 20s)이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 봤을지도 모르겠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승리 후 미국은 급성장하게 된다. 부동산과 주식부자들이 늘어나면서 생산적인 일은 하지 않고 스포츠나 여행을 즐기는 귀족들이 호화스러운 파티를 열었다. 그 당시 금주령이 있었지만 술을 가장 많이 마셨던 때로 알려져 있고 도덕적, 윤리적으로 타락했던 미국의 사회를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의 주인공 제이 개츠비.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자수성가해서 아메리칸드림을 상징하는 거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제이는 약국에서 술을 팔아 밀수업을 하며 부를 얻는다. 어렸을 적 좋아했던 하지만 이미 결혼해서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버린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 데이지가 살고 있는 집, 그 건너편의 대저택을 산다. 매주 토요일마다 성대한 파티를 열였고 언젠가 그녀가 파티에 나타나지 않을까 고대하며 기다렸다.
리드의 마흔 살 생일파티(개츠비의 파티)는 원작과 조금 달랐다. 이미 제이(리드)는 데이지(리드의 아내)와 결혼을 했고 제이에게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그녀의 이름은 그레타 개츠비. 바로 나였다. 데이지는 제이가 불법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더욱 감추기 위해 그의 동생 그레타에게 주류판매와 도박등 모든 비즈니스를 맡기게 된다. 그러면서 그간 주류판매를 운영하던 찰리가 모든 경영권을 갖게 된 나(그레타)한테 불만을 갖게 된다. 파티에는 제이와 데이지, 찰리 말고도 도박을 담당하던 에디, 제이와 함께 돈을 투자했던 친구 채비(내 남편), 데이지의 전 남편 톰 뷰캐넌, 시장과 그의 아내, 경찰, 유명한 할리우드 가수와 배우, 유명한 복싱선수와 야구선수, 기자, 영화 프로듀서가 초대되었다. 파티가 한참 무르익어 갈 때쯤 초대받았던 사람 중 한 명이 사살된다. 그리고 모두가 살인자가 누구인지 찾아가는 미스터리 스토리다. 단 초대받은 사람과 초대한 사람, 그 누구도 누가 살해될 것인지, 누가 살인자인지는 모른다.
남편은 이런 미스터리 파티에 참여하는 상상만으로도 도파민이 나오는 반면 나는 1920년대를 대표하는 드레스도 없을뿐더러 파티에서 내 역할을 이해하고 연기해야 하는 게 싫었다. 사람들의 말을 집중해서 들어야 하고 누가 죽였는지 추궁해야 하는 이 복잡한 상황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호르몬이 팍팍 분비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러다 아는 친구가 1920년을 대표하는 원피스를 찾았다며 나보다 더 흥분된 목소리로 연락이 왔다. 화려한 태슬이 주렁주렁 달린 빨간 드레스와 빨간 깃털 패시네이터(머리 장식용), 흰색 진주(가짜) 목걸이까지 완벽하게 구해주었다. 친구 덕분에 파티를 위한 준비는 다 갖췄지만 정작 마음이 준비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제1막
드레스에 달린 빨간 태슬이 흔들흔들거릴 만큼 바람이 쌩쌩 불던 토요일 밤, 제이 친구 채비(남편)와 함께 위대한 개츠비의 파티에 들어섰다. 입구에서부터 총을 가지고 왔는지 확인했고 가져온 총들은 좌물함에 보관되었다. 화려한 조명불빛 아래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춤을 추거나 와인을 마시며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리드가 주었던 설명서에 적힌 지시들을 기억하면서 찰리를 만나 그의 불평을 들어주었고 나는 전쟁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두려울 게 없는 사람임을 강조했다. 그러니 비지니스쯤은 걱정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도박꾼 에디한테 경기에서 계속 지고 있는 복싱선수 말고 이젠 야구선수로 바꿔야겠다고 말했다. 시장과 시장부인도 만나서 시가 어떻게 잘 돌아가고 있는지를 듣고 억만장자인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를 물었다. 여기서 도움이란 비즈니스를 잘 봐 달라는 뇌물일 테다. 솔직이 이 부분은 설명서에 없었다. 그냥 내가 그레터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니 하고 싶은 말을 도도하고 거만하게 내뱉었을 뿐이다. 이제 슬슬 재미가 생겼다.
제2막
갑자기 화려한 조명이 꺼졌다. 유명한 복싱선수가 총에 맞아 바닥에 쓰러졌다. 그를 좋아했던 할리우드 여배우가 꺼억꺼억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때 또 다른 설명서를 받게 된다. 이번에는 정말 까무러치게 놀랐다. 그 끔찍한 살인자가 바로 나였으니 말이다. 설명서를 읽는데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내 죄를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울 때가 왔다. 설명서에 따르면 복싱선수를 죽인 총의 등록자가 찰리로 되어 있고 톰은 데이지를 다시 빼앗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했다. 그럴싸한 이유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찰리와 톰이 범인이라며 떠벌리고 다녔다. 그러다 내가 죽였다고 의심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어떻게 동생의 위대한 파티에서 몰상스런 짓을 할 수 있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이러는 사이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살인자가 흘린 증거를 따라가던 탐정은 사건의 범죄자를 찾느라 눈에 불을 켰다.
제3막
초대받았던 사람들 중 살인자가 누구일지 종이에 적으라고 했다. 대다수의 이름이 찰리로 나왔다. 순간 웃음이 나왔지만 심각한 표정을 지으려 대단히 노력했다. 마침내 탐정이 범인을 발표했고 난 설명서에 적힌 대로 통곡하듯 소리를 질렀다.
"그래 내가 했다. 내가 했다고!"
경찰이 내 두 손을 뒤로 묶었다. 나와 경찰은 서서히 퇴장했다.
내가 살인자라는 이유를 설명하자면, 파티장에서 나와 제이 개츠비가 유일하게 열쇠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아빠가 열쇠 만드는 직업을 가졌고 아마도 열쇠 만드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가 아무도 모르게 열쇠를 만들었고 찰리의 좌물함을 열어 그의 총으로 복싱선수를 죽인 후 시체 옆에 갖다 두었다.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찰리가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막이 내리자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드디어 긴장했던 내 마음도 가라앉았다. 파티에 입장할 때만 해도 도살장 끌려가듯 못 마땅했던 내가 살인자였다니 아이러니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렇게 스릴 있었었던 파티가 언제였는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 같다. 보통 파티장에 가면 종종 모르는 사람들을 만난다. 서먹서먹하게 인사를 나누고 몇 마디 조금 건네고 나면 또 다른 사람을 만나 따분한 인사가 반복되곤 한다. 이번 파티는 확연하게 달랐다. 모든 사람들을 만나야 했고 또 알아가야만 했다. 또한 살인자를 찾기 위해 모두가 머리를 모아야 했다. 리드는 이런 생일을 원했던 것 같다. 그가 마흔 살이 되기까지 함께 했던 소중한 친구들 모두가 주인공처럼 즐길 수 있는 날. 그가 느꼈던 행복만큼 그의 독특한 해피벌스데이는 모두에게 해피라는 선물을 건네준 날이기도 하다.
그날 밤, 잠을 자려고 이리저리 뒤척이는데 감옥에 혼자 있을 그레타가 떠올랐다. 제이가 곧 나를 꺼내주러 오겠지.
'그놈의 찰리!'
어째 콧웃음이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