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살의 버킷리스트;공무원 그만두기 Part 2
공무원이 아닌 '나'는 누구일까.
평생을
아니, 정년퇴직할 때까지
살아온 기간보다 앞으로 공무원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더 많은 '나'였다.
하루아침에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그만두게 될 줄
10년 전의 '나'는 과연 알았을까?
2015년 7월, 24살에 입사해서
2024년 3월, 33살이 되던 해에 의원면직을 했다.
일을 많이 하든, 적게 하든
출근만 하면 따박따박 나오던 월급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망할 걱정 없는 회사,
사람들에게 철밥통이라고 불리던 공무원을
스스로 그만두었을 때의 솔직한 심정은 바로
해방감과 안도감
더 이상 내 숨을 조이는 곳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구나.
나 이제 살았다.
친하게 지냈던 직원들은 나의 퇴사소식에 부러움을 표했고,
모두의 꿈을 대신 이루어주었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렇게 바라던 퇴사를 한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우습게도 퇴직금 신청이었고,
그보다 더 우스웠던 건 그게 고작 700여만 원이라는 숫자였다.
퇴사한 후의 내 하루하루는 평범하다 못해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직장을 그만두면 금방이라도 좋아질 것만 같았던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여전했다.
여전히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 가는 것은 두려웠고, 사람들을 마주칠까 무서웠고,
누가 나를 알아볼까 전전긍긍했다.
이제는 앞으로 어떻게 돈을 벌어서 살아가야 할지 생계의 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직원들과의 만남은 줄어들었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90% 이상을 차지했다.
그동안 현생이 바쁘다는 이유로 내 살길만 찾기 바빴는데
이제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부모님이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굉장히 많았다.
딸이 직장 다니느라 힘들 텐데 부탁하기 미안해서, 눈치가 보여서 나에게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특히 병원을 같이 다닐 때면 놀랍도록 변한 최첨단 기계들과 수많은 키오스크들에 나도 당황스러울 때가 종종 있었다.
나 없이 두 분이서 헤맸을 생각을 하니 괜스레 미안하고 마음이 짠해졌다.
두 번째는 '나' 자신에 대한 탐구이다.
그동안 내가 뭘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다.
바쁜 회사생활 속에서도 즐거움은 놓치기 싫다며 유행하는 것들을 좇고 유흥의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 본질은 무시한 꼴이었다.
사실 지금도 하루하루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기도 하고,
기분과 컨디션이 롤러코스터를 탄 듯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한다.
침대에 누워 울기만 하다가 하루를 보낸 적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제의 나보다 나아지고 발전했다고 믿기로 했다.
아니, 그렇게 믿는다.
남과 비교하며 자존감을 떨어트리고 자기 비하를 하는 비참한 생활을 이어나갈 수는 없다.
입사도, 퇴사도 결국 내가 선택한 일이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스스로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조급함은 내려두자.
그동안 빨리 달려왔으니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다며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여전히 답을 찾는 중이지만 섣불리 정의할 수는 없다.
나는 곧 공무원이라며 직업이 내 인생 최고의 업적이라고 생각하던 과거의 나는 이제 없다.
비로소,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