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때문에, 시간 때문에, 조건 때문에.. 망설이는 당신에게
"내가 너무 늦어서 그래, 늦깍이지 뭐"
누구나 다급해지는 순간이 있다. 카페에 앉아서 솔직한 심정을 꺼냈다.
우연하게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서 담소를 나눌 때였다. 자연스럽게 근황과 재치 어린 가벼운 고민이 오고지나갔다. 쉽사리 큰 문제에 대해선 입을 떼지 않았다. 무겁고 진지한 발언이 우리둘의 만남을 쉽게 망칠 수 있다는 걸 잘 알았다.
잘가.
잘 지내고.
너무 성급해하지마. 결국 해낼거야.
초등학교 친구가 헤어지고 나서도 나는 마음이 아리송했다. 친구도 알고 있었을까. 내가 지금 다급하고 불안하고 또 초조하다는 걸.
'1년이나 재수하고 대학을 가는 것이나'
'나이가 많은 30대 신입사원으로 일한다는 것이나'
'아직도 40대까지 미혼으로 산다는 것이나'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회 주변엔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은 많다.
특히 나이 즉 '시간적 조건'에 대한 불안감.
대한민국에서는 나이가 곧 위계질서를 정하는 가장 첫번째 요소라고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어딜 가던지 나이를 묻고, 호칭을 정하고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결정 짓는다. 후배는 선배를 깍듯이 대하고, 선배는 후배에게 자유롭게 반말을 하고. 직장 상사는 부하에게 감정적인 어조로 발언해도 적당히 넘어갈 수 있다.
교환학생으로 덴마크를 갔을 때 가장 놀라웠던 사실이 있다. 바로 덴마크 USYD 대학교 수업에 다섯살 아이를 둔 어머니가 있다는 점과 대머리가 되어버린 분도 있다는 점이었다.
수업시간에 만난 대부분은 학생들의 나이대가 다양했다. 덴마크에서는 'gap year'(휴학)을 가지는 것이 흔한 일이라고 그랬다. 물론 그것보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특정한 시기에 '무엇'을 꼭 해야한다는 관념 자체가 덴마크 사회엔 부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 출신 외국인들은 특히 삶에 있어서 '나이'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적어도 내가 겪었던 대한민국 사회보다는 그랬다.
그 누구도 나만큼 덴마크에 있는 친구들의 나이가 다양한지 물어보고 궁금해하고 신기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벨기에에서 온 다른 교환학생 친구도, 독일에서 온 다른 교환학생 친구도, 페루에서 온 다른 교환학생 친구도.
나이,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표정이었다.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who cares?"라고 답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나이에 대한 강박증이 있음을 깨달았다.
나이란 울터리에서 벗어나면 생각보다도, 인생은 훨씬 "모험적이고" "도전적"으로 바뀌게 된다.
근데 꼭 한국인이라서 그게 안되리라는 법도 없지 않을까? 의식적으로, 다급해진 나에게 다시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단순히 나이 때문에 무언가를 포기하는 이유가 되지는 말자 또는 무언가를 강요하게 하는 이유가 되지 말자
최근에 "더브레인"이라는 뇌 과학 책을 읽었다. 데이비드 이글먼 저자 : 더브레인
미완성으로 태어나다
태어날때 인간은 무력하다. 우리는 걷지 못하는 상태로 약 1년, 자기 생각을 말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게 되기까지 또 2년,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기까지 또 여러 해를 보낸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주위 사람들에게 철저히 의존한다. 다른 많은 포유동물과 비교해보자. 예컨대 돌고래는 태어나면서 헤엄친다. 기린은 몇 시간 만에 일어서는 법을 배운다. 새끼 얼룩말은 생후 45분 안에 달릴 수 있다. 동물계를 두루 살펴보면 그들은 태어나자마 놀랄만큼 많은 걸 하고 독립적이다.
난해한 정신적 과정과 뇌가 약물에 의해서 반응하는 신경물질에 관한 이야기를 진행하다가 뇌과학자가 이렇게나 미완성으로 태어나는 인간에 관한 존재론적인 말을 한다. 아 뭐야. 반전 매력? 나는 아이패드에 딱 달라붙어있던 애플펜슬을 슬쩍 들어 밑줄을 쭉 그었다. 진짜 반전은 이 문장 바로 뒤에 나온다.
언뜻 보면 이것은 동물의 커다란 장점인 듯 하지만 실은 한계다. 새끼 동물들이 빨리 발달하는 것은 녀석들의 뇌가 주로 미리 정해진 절차에 따라 회로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준비가 갖춰져 있다는 것은 융통성이 없음을 의미한다.
반대로 인간의 뇌가 상당히 미완성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변화에 강하다. 모든 회로가 배선된 상태로 태어나는 대신에 인간의 뇌는 세부적인 삶의 경험에 의해 변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 뇌는 서서히 환경에 적합한 모습을 갖추기까지 오랫동안 무력한 상태에 머문다.
인간의 뇌는 즉 '생후 배선'(livewired)된다.
인간의 뇌가 도대체 뭘까에서 출발한 책이었다. 책에서 나온 뇌는 무수한 '신경 연결망' 설계 그 자체이기도 했다. 인간의 뇌는 태어날 때부터는 이례적으로 불완전하지만 점차 자라나면서 주변의 환경을 겪으면서 마치 조각상을 깎듯이 시냅스를 이루고 자기 자신의 정체성, 그리고 자신의 성격을 다듬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곧 '지능'이라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루마니아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의 실화가 그 사실을 뒷받침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생활하고 똑같은 머리를 하고 똑같은 옷을 입고 생활하던 아이들은 어떠한 감정적인 대응도 해주지 않는 보모에게서 외부적인 자극 없이 자라났다.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받아주면 더 많은 보모가 필요할텐데 당시 루마니아 고아원은 재정적인 위기에 빠져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울어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걸 알았다. 아이들은 더이상 울지 않았다. 아이들은 놀아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서로 노는 시간은 매우 제한적이었고 대부분은 하루 일과가 아침, 점심, 저녁으로 맞춰져 있었다.
루마니아 고아원의 아이들은 평균 지능이 100에 미치지 못하는 60에서 80 사이라는 안타까운 조사결과가 나왔다.
루마니아 고아원 실화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바로 인간의 뇌는 주변 환경에 아주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에 근본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바로 우리 뇌와 주변 환경에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뇌는 환경에 대단히 민감하다. 인간 뇌가 생후 배선 전략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느냐'는 '우리가 현재 누구인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뇌의 상후 배선 전략.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들이 마치 일차원적인 정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때쯤이면 승진해야지, 이때쯤이면 독립은 해야지..이때쯤이면 결혼을 했겠지..둥둥의 고민이다.
그렇지만 뇌가 받아들이는 "미완성"과 "변화"는 완전히 다르다.
늦게 형성되는 뇌의 배선이 인간 생존에 있어서 필수적이고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지능이란 차별점을 만들어내는 핵심 전략이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을까란 고민은 하지 말자.
반대로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어떠한 사람을 만나고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그리고 그 대답이 현재 그 변화를 맞이하는 나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자.
상후배선 전략을 지닌 뇌 형성 방법으로 인해서 인간은 가장 강한 존재가 되었다. 코뿔소보다도. 호랑이보다도 더욱.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하다.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분명히 내가 느끼는 '늦은 출발'이 그만큼 그 누구도 못 겪은 나만의 경험으로 가득한다는 말이었다.
이것은 나만의 차별점이 되어 나를 더욱 빛나게 할것이다.
instagram @helloreader7
참고 동영상
데이비드 이글먼 : 마음보다 뇌가 지배적일까?
https://youtu.be/UWBtT-Gl4v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