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친구가 이렇게 어질러 놨지?

by Ro

아이랑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가 가르쳐 준 기억이 없는 단어들, 나는 잘 쓰지 않는 표현들을 쓰는 경우들이 꽤 많다. 처음에는 가정에서의 언어 생활 안에서 그 이유들을 찾아 보기도 했지만 한 미얀마 학생의 이야기를 들은 후 다른 이유가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랑 같은 개월 수의 아이를 키우는 미얀마 부부의 이야기였다. 두 사람은 아직 학생 신분이기도 하고 해서 우리 아이보다는 조금 이른 시기부터 어린이집을 보내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그렇게 기관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를 잘 키우고 있으며 그래도 번갈아가며 휴학하고 아이를 잘 돌보기 위해 애쓰는, 다른 사람과 똑같은 부모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그 부부가 신기하게 생각하는 부분 중 하나는 부모가 모두 미얀마 사람인데도 아이가 미얀마 말을 전혀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휴가 기간에 미얀마에 데려가면 그곳에서 나누는 대화를 전혀 알아듣지 못해서 불편해하고, 특히 친정 어머니가 손녀가 미얀마 말을 못하는 것을 너무 아쉬워 하신다는 이야기였다. 대신 그 아이는 요즘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중이라고 한다.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자신들보다도 더 낫다며 신기해 하였다. 그러다보니 친정 어머니가 늦은 나이에 한국어 공부에 전념하고 계시다고 한다. 손녀와 대화하고 싶으신 그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한 마음을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아이가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경험하는 언어노출이 크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6시간, 길게는 8시간까지 어린이집에서 보내게 되는 만 2세의 아이에게는 부모와의 상호작용보다 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이 가져다주는 언어 자극이 더 강한 듯 했다. 그래도 아이를 전적으로 양육하는 부부가 사용하는 언어보다 사회생활에서 경험하는 언어를 먼저 습득하게 된다는 점이 아직도 의아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만큼 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생활이 아이에게 큰 자극을 주고 있다는 것은 우리 아이를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느 날 한참을 방에서 놀다가 거실에 나온 아이는 "어떤 친구가 이렇게 어질러 놨지?"하고 이야기하였다. 그러고는 갑자기 주섬주섬 장난감을 치우는 흉내를 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정신없이 설거지하다가 그 모습을 본 나는 정말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그 찰나를 영상으로 담아놓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쉬웠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듣고 싶은 마음에 "민지야, 뭐라고 했어 방금?" 이렇게 물어봤지만 묵묵부답. 자기도 모르게 따라해놓고 쑥쓰러운 모양이다.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소 장난감을 어지르는 것을 두고 무엇이라 말해본 적이 없는 나이기에 저 표현은 누가 봐도 어린이집 선생님을 따라하는 것임이 분명했다. 평소에 많이 듣고, 인상 깊었던 표현들을 담아두고 있구나. 어린이집에서도 우리 아이는 자라고 있구나. 기특하면서도 너무나 귀여운 그 모습, 내일은 또 어떤 새로운 말을 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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