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9 : 연금과 사회 복지 ② 국가 편 - 나는 안 갚을 건데?
CHAPTER 1 : 재앙 편 / Part 1 - 3
[ 복지를 향해, 파산을 향해 ]
2024년 기준 한국의 복지 지출 비용은 약 200조 원대다.
하지만 노인 인구가 폭증하는 2040년에는 이 비용이 최소 두 배 이상 치솟을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생각해 보라.
일하는 사람은 반 토막이 났는데,
병원에 가야 하고, 간병을 받아야 하고, 기초연금을 받아야 하는 노인은 두 배가 된다.
돈을 낼 사람은 줄고, 돈을 쓰는 사람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이건 공포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의 영역도 아니다.
초등학생도 풀 수 있는 수학의 영역이다.
결과는 ‘파산’뿐이다.
[ 그럼 국가는 어떤 선택을 할까? ]
“예, 우리는 망했습니다.”
솔직하게 선언하고 시스템을 리셋할까?
아니면 뼈를 깎는 복지 축소를 단행할까?
둘 중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한다.
정치인에게 표는 곧 생명이고,
노인이 유권자의 절반이 된 나라에서 복지 축소는 정치적 자살이기 때문이다.
유럽을 보라.
연금개혁을 시도하는 순간 거리에는 수십만 명의 노인이 쏟아져 나온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이미 우리는 그 조짐을 보고 있다.
[ '2025 연금개정안'이 보여준 진실 ]
'EP 8'에서 일부러 말하지 않았던 것이 있다.
2025 연금개정안은 단지 젊은 세대의 연금 보험료(9%→13%)만 올린 것이 아니다.
현재 연금 수령자들의 연금 지급률도
40%에서 42%로 인상하겠다고 선언했다.
즉, 기성세대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너희(젊은 세대)가 더 내라.
그리고 우리는 지금보다 더 받겠다.”
이것은 세대 간 이루어진 평화로운 합의가 아니다.
그저 쪽수로 밀어붙인 ‘합법적인 약탈’에 가깝다.
유럽을 볼 필요조차 없다.
우리는 이미 ‘답안지’를 받아 들고 있다.
[ 국가가 빚을 갚은 가장 쉬운 방법 ]
국가가 선택할 방법은 명확하다.
EP8에서 말했던 국가의 두 가지 선택지를 기억하는가?
1. 노동자의 지갑을 더 털기
2. 아이들과 미래 세대에게 빚을 넘기기
정부는 이 둘을 동시에 쓸 수밖에 없다.
세금을 올리면서, 동시에 빚도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의 지갑을 털어가는 것도 한계가 있다.
월급의 절반을 뜯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부자에게만 세금을 몰아 부과하면,
그들은 자본을 들고 해외로 떠나버릴 것이다.
결국, 국가는 부족한 돈을 채우기 위해서 빚을 만들고
그 빚을 고스란히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는 길을 택하게 된다.
국가도 우리와 같은 존재다.
돈이 필요한데 없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빌리는 것이다.
세금으로 부족하면
→ 국채를 발행하고,
→ 빚으로 연금을 주고,
→ 빚으로 병원비를 메우고,
→ 빚으로 사회를 연명시킨다.
[ 금단의 비기 ]
여기서 개인과 국가의 결정적인 차이가 생긴다.
개인은 빚을 갚지 못하면 파산하지만,
국가는 부채를 녹이기 위해 쓸 수 있는 ‘최후의 꼼수’가 있다.
바로 ‘돈을 찍어내는 것’이다.
부채가 너무 많아 갚기가 힘들어지면?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 그 부채를 사버리면 된다.
물론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돈을 함부로 찍어 냈다가는 환율이 폭등하고 나라가 망가진다.
하지만 빚더미에 깔려 즉사(국가 부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화폐 가치를 떨어뜨려 서서히 망가지는(인플레이션) 쪽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정부는 화폐 가치를 희생시켜 부채를 녹여버리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돈을 찍어낼수록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물가는 폭등하겠지만,
상대적으로 갚아야 할 부채의 실질 가치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누가 가장 큰 피해를 볼까?
바로
‘원화’로 나오는 연금 하나만을 믿고 노후를 맡긴 사람들,
‘원화’ 자산(예금)만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국가가 부채를 녹이기 위해 돈을 찍어내는 동안,
당신의 적금, 연금도 똑같은 속도로 녹아내릴 것이다.
[ 태어나면 빚을 드려요 ]
자연스럽게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입장에서
동일한 ‘암묵적인 합의’를 하게 된다.
기성세대는
“나는 지금보다 더 받고 싶다”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부채를 아이들에게 넘긴다.
젊은 세대는
“노인 부양으로 월급 털리는 것도 억울한데,
국가 빚까지 갚으라고?”하며
똑같이 부채를 아이들에게 넘긴다.
그리고 참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그들은 투표권도 없고, 정치적 힘도 없다.
심지어 훗날 그들이 자라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나이가 되어도 상관없다.
고작 20만 명도 안 되는 그 소수의 비명 따위는,
수천만 명의 기성세대 앞에서는 그저 빚 탕감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작은 소음’에 불과하니까.
이렇게 한국은 멈출 수 없는
거대한 부채 폭탄의 굴레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 부채는
지금의 우리가 아니라,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이 갚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