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6 : 기후 위기 ① 북극곰 이야기
CHAPTER 1 : 재앙 편 / Part 2 - 3
[ 트리거(Trigger) ]
지금도 그날의 장면이 또렷하다.
기억이라기보다, 감각에 가깝다.
11월, 수능이 끝난 오후였다.
시험을 마치고 버스에서 쏟아져 나오던 고3 학생들의 모습은
‘이상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반팔 차림의 남학생들과,
두툼한 패딩을 입고 있는 여학생들.
같은 날, 같은 장소, 같은 시간.
여름과 겨울이 한 장면 안에서 뒤엉켜 있었다.
그 낯선 풍경을 마주한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훈련소에서 수류탄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처럼,
‘이건 잘못됐다’는 감각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그건 놀라움도, 불안도 아니었다.
직감적인 ‘공포’.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죽음’이었다.
뉴스와 교과서에서 수없이 접해 왔던
‘지구온난화’, ‘기후 위기’라는 단어들이
그날 처음으로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내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현실이 되었다.
“내가 죽고 나서야 문제가 되는 이야기겠지.”
그렇게 애써 밀어내던
나의 안일한 생각과 믿음은
그 순간 철저하게 박살이 났다.
그날은,
나를 생존의 길로 이끈
이슬비 프로젝트의 시작점이자
‘트리거(Trigger)’였다.
[ 1.5℃, 북극곰,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아는 이야기 ]
기후 위기라고 하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북극곰을 떠올린다.
지구 평균 기온이 1.5℃ 오르면
북극 얼음이 녹고,
생태계가 파괴되며,
산호초가 멸종하고,
해수면이 상승하여
섬에 사는 사람들이 위험해진다.
여기서 조금 더 아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린다.
그린란드의 영구동토층,
그 안에 갇혀 있던 메탄층이 녹으면
인류가 모든 화석연료 사용을 멈춘다 해도
지구가 스스로 가열된다는 ‘되돌릴 수 없는 임계점’ 이야기.
“그래서, 그게 내 삶에 어떤 위협이 되는데?”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변들도 대게 비슷하다.
・ 영구동토층이 녹으며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올 수 있다.
・ 한국이 아열대 기후가 되어 뎅기열 같은 열대 질병이 확산될 수 있다.
・ 커피와 카카오 재배지가 줄어 지금처럼 마음껏 먹지 못할 수도 있다.
・ 올해 여름이 남은 인생에서 가장 시원할 것이다.
맞다.
틀린 말 하나 없고, 다 중요한 이야기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보자.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내 통장 잔고나, 당장의 대출금,
내 월급과 내 집 값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 그랬다.
“북극곰 이야기.”
“우리 다음 세대가 겪을 문제.”
“언제가 과학이 해결해 주겠지.”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혹시 기후 재앙이 닥치더라도
그 시점은 내가 80세, 90세쯤 되어
인생을 마무리하며 겪을 먼 미래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재난도 시즌제가 도입된다 ]
하지만 기후위기는
영화처럼 ‘멸망’이라는
거창한 시나리오를 달고 오지 않는다.
대신, 아주 익숙한 모습으로
우리의 일상 속에 천천히 스며든다.
우리는 겨울이면 스키장 시즌권을,
여름에는 워터파크 시즌권을 끊는다.
돈을 내고, 기간을 정하고,
즐길 수 있을 때만 즐긴다.
그러나 기후 위기는 다르다.
앞으로는 지구가 일방적으로
‘재난 시즌권’을 발급한다.
우리는 신청한 적도 없고,
해지할 방법도 없다.
더 무서운 건,
이 시즌권이 단일 상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태풍, 폭우, 폭염, 폭설, 홍수, 가뭄이
번갈아 가며, 때로는 동시에 찾아온다.
우리가 한 가지 재난에 익숙해질 즈음,
다음 재난이 곧바로 덮친다.
과거 전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매미’, ‘루사’ 같은 슈퍼 태풍은
이제 더 이상 ‘특수한 사건’이 아니다.
매년 찾아오는 지겨운 연례행사가 된다.
해수면이 겨우 30cm, 50cm 오르는 것,
며칠 폭우가 쏟아지는 것쯤은
별일 아닌 것처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겨우 한 뼘 높아진 해수면 때문에
과거에는 방파제에서 막혔을 파도가
이제는 그대로 넘어와 도시를 덮친다.
배수 시설이 감당하지 못한 물은
역류하고, 넘치고,
도시 전체를 마비시킨다.
그 결과, 해안가 도시는
방파제를 더 높이 다시 쌓아야 하고,
2022년 기록적인 폭우로 침수됐던
강남 같은 도시는
배수 시설을 전면 보강하고
침수된 도로와 시설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이 일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후 재난이 잦아질수록
복구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 천문학적인 비용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전부 우리의 세금이다.
국가는 마법사가 아니다.
무너진 제방을 다시 쌓고 도시를 복구하기 위해,
결국 당신의 월급을
더 악착같이 털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기후 위기는 환경 문제이기 전에,
당신의 지갑을 터는
‘재정 문제’다.
[ 강남역 침수는 ‘사고’가 아니라 ‘리허설’ ]
2022년 8월 8일,
강남구 일대에 시간당 141mm의 폭우가 쏟아지며
강남역 한복판이 물바다가 되었던 사건을 기억하는가?
침수된 제네시스 차량 지붕 위에
고립된 채 앉아 있던 남자의 사진.
일명 ‘제네시스 좌’라 불리며
각종 밈과 패러디로 소비되었던 그 장면 말이다.
우리는 그 비현실적인 사진을 보며
웃고, 공유하고,
안타까운 사고를 유머로 넘겼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그날의 침수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앞으로 반복될 미래의
‘리허설’에 가까웠다.
강남역 일대는 애초에
침수 위험을 안고 형성된 도시다.
과거 한강의 범람원이었고,
자연 배출이 어려운 저지대 위에 개발되었다.
항아리처럼 움푹한 지형 탓에
폭우가 쏟아지면 물이 모일 수밖에 없으며,
자연 배수가 아닌
기계적 배수시설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한다.
문제는 기후 위기로 폭우가 일상화되면,
같은 지역, 같은 주소에서
똑같은 피해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자본주의의 냉혹한 논리가 작동한다.
보험사는 ‘강남’이라는 부의 상징을 보지 않는다.
그들이 보는 것은 오직 하나,
‘손해율’이다.
같은 유형의 사고가 짧은 기간 반복되면
보험료는 급등하고,
자기 부담금은 늘어나며,
핵심 특약은 빠진다.
그리고 결국
갱신 거절, 혹은
극도로 까다로운 조건부 갱신으로 바뀐다.
그리고 이건 가정이 아니다.
이미 자본주의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현실이다.
산불과 허리케인이 반복된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주에서
주요 보험사들은 주택 보험 판매를 중단하고
아예 철수해 버렸다.
이유는 단순하다.
“손해율이 감당 안 된다.”
[ 한국이라고 다를까? ]
한국 역시
자본주의의 규칙 위에서 움직이는 국가다.
같은 주소에서 침수 피해가 반복되면
보험사는 그 지역을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한다.
만약 보험사가
“이 건물은 보험 가입이 어렵습니다.”
혹은
“침수 피해는 보장 대상이 아닙니다.”라고 선언하는 순간,
그 자산의 운명은 사실상 결정된다.
보험이 없는 건물은
은행 대출이 나오지 않는다.
보험이 가입되지 않은 건물은
담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담보 대출이 나오지 않는 집.
현금 100%를 가진 슈퍼 리치가 아닌 이상,
도대체 누가 그 집을 살 수 있을까?
수요가 사라지면
가격은 무너진다.
이것은 예측도, 감정도 아니다.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아무리 비싼 강남의 건물이라도,
아무리 입지가 좋아도,
팔리지 않는 순간
그 자산은 곧바로 짐덩어리가 된다.
좌초 자산이 되는 것이다.
물론 한국이
당장 미국과 같은 단계에 도달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보험 보장 축소,
보험 접근성 약화,
담보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자본주의 구조상
피할 수 없는 방향이다.
국가는 재난 직후
도배와 장판 정도는 바꿔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후 위기로 붕괴된
자산 가치를 보전해 주지는 않는다.
살 수는 있어도,
부자로 남게 해주지는 않는다.
[ 내 얘기 아닌데? ]
사실, 여기까지 읽고도
별로 와닿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북극곰은 너무 멀고,
강남은 어차피 딴 세상 부자들의 이야기고,
해수면 상승은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의 사정이니까.
“결국 여름이 조금 더 더워지는 정도 아닌가?”
“비 좀 많이 오는 건 대비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괜찮다.
지금은 그 안도감이 남아 있어도 좋다.
아니, 오히려 그 반응이 지극히 정상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해두겠다.
다음 편을 읽고 나면,
지금 그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음 이야기는
지루한 환경 호소문이 아니다.
기후 위기가
당신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어떤 방식으로 지갑을 털어가는지,
당신의 식탁을 엎어버리고
어떻게 건강을 무너뜨리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다음 이야기
'EP 17 : 기후위기 ② 기후는 당신의 지갑을 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