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침몰하는 한국에서 살아남기 #17

EP 17 : 기후 위기 ② 기후 위기는 당신의 지갑을 노린다

by 이슬비

CHAPTER 1 : 재앙 편 / Part 2 - 3



[ 지금부터는 우리의 이야기 ]


지난 편의 ‘부동산 이야기’, ‘재난 이야기’가

아직 피부에 와닿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강남에 집이 없으니까.”

“태풍과 폭우는 이미 겪어 봤으니까.”


괜찮다.

여기까지는 그렇게 생각해도 된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다르다.

이번 편에는 예외가 없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지갑 이야기이고,

우리의 식탁 이야기이며,

우리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다.


기후 위기가 우리의 통장을 터는 방법.

그 적나라한 과정을 지금부터 알아보자.



[ 전기는 곧 ‘돈’이다 ]


여름은 점점 더워지고 있다.

이제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상상해 보자.

살인적인 습도, 35℃를 훌쩍 넘는 기온.

퇴근 후 도착한 집은 더 이상 휴식처가 아니라

숨이 턱 막히는 거대한 습식 사우나다.


그리고 우리는 본능적으로

에어컨 리모컨에 손을 뻗는다.


하지만 전원 버튼을 누르기 직전,

‘시원한 바람’ 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지난달 날아왔던

전기요금이 찍힌 관리비 고지서다.


기후 위기로 전력 수급이 불안정해지면

국가는 굳이

전기를 강제로 끊는

무식한 방법을 쓰지 않는다.


대신 훨씬 더 세련되고

교묘한 방식을 사용한다.


가격.


전기는 계속 들어온다.

다만, 감당할 수 없는 가격으로 청구될 뿐이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전기요금 누진제’다.


“전기를 아껴 씁시다.”라는

공익광고는 이제 옛말이다.


이제는 고지서가 우리를 협박한다.


“켤 테면 켜 봐라.

감당할 수 있으면 말이지.”


문제는 폭염이

더 이상 ‘잠깐’이 아니라는 데 있다.


과거에는 7월 말에서 8월 초,

길어야 2주만 버티면 끝났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6월부터 9월까지,

앞으로는 이보다 더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1년의 3분의 1,

어쩌면 절반 가까운 기간을

에어컨 없이 버티기 힘든

‘아열대 기후’가 되었다.


기후 위기로

여름은 더 길어지고, 더 뜨거워진다.

그리고 에어컨은

사치품이 아니라 생존 장비가 된다.


하지만 누진제는 냉정하게 묻는다.


“살기 위해 전기를 쓸 것인가?,

그렇다면 요금은 감당할 수 있는가?”


개인의 선택지는 점점 사라진다.


에어컨을 끄면

열사병, 수면 붕괴, 만성 피로가 찾아온다.


에어컨을 켜면

전기요금 고지서가 날아와

우리의 삶을 조용히 압박한다.


전기는 끊기지 않는다.

단지 우리의 선택권이 끊길 뿐이다.



[ 최악의 상황, 단전(Blackout) ]


하지만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돈을 내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최악의 상황,

‘단전’이 남아있다.


이미 미국 텍사스주와 캘리포니아주는

한파와 폭염으로

대규모 단전 사태를 겪었다.


2025년 4월 28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중심으로도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이건 가정이 아니라 현실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우리는

AI와 데이터센터, 로봇 기술이

일상이 되는 시대를 앞두고 있다.

미래의 기반이자 안보,

경쟁력이 되는 사업들이라

국가는 이 사업을 포기할 수 없다.


필연적으로 전기 수요는 폭증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국가는 ‘선택’ 해야 한다.


누구의 전기를 먼저 지킬 것인가?


반도체 공장의 전기인가?

도시 기능을 유지하는 공공시설인가?

아니면 당신 집 거실의 에어컨인가?


냉정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다.

산업용 전기가 1순위다.


국가는

대정전이라는 최악을 막기 위해

가정용 전기 공급을 제한하거나,

아예 에어컨 리모컨에

손을 댈 엄두조차 못 내게

전기요금을 폭발적으로 인상할 수도 있다.


이건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다.


노약자나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는

말 그대로 생존의 문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한다.


15년 뒤,

우리 대부분은 ‘노약자’다.



[ 전기요금은 예고편, 본편은 ‘식탁’이다 ]


전기요금 고지서가

우리의 통장을 스치고 지나간다면,


기후 위기는

이제 우리의 ‘식탁’을 정조준한다.


전기는 너무 비싸면

에어컨을 끄고 선풍기로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식량은 다르다.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최근 마트에서 장을 보며

“물가 미쳤다.”는 말을

무심코 내뱉은 적은 없는가?


계란 한 판에

8천 원, 1만 원이 찍힌 가격표를 보고

들었던 손을 조용히 내린 적은?


단순히 물가가 오른 게 아니다.

기후가 망가지면서

식량 공급 시스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이른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다.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앞으로 우리의 가계부를

박살 낼 가장 큰 위협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날씨가 망가졌기 때문이다.


기온 상승은

‘조금 더 더워진다’는 문제가 아니다.


작물이 자랄 수 있는 지역이 줄어들고,

비는 너무 많이 오거나,

아예 오지 않는다.


가뭄과 폭우는

농작물을 동시에 망가뜨린다.


가뭄, 폭우, 이상 고온은

수확량을 말려버리고,

뿌리를 썩게 만들고,

병충해를 부르며,

재배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 결과,
덜 생산되고, 더 비싸진다.


이미,

우리의 아침을 깨우는 커피,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초콜릿.


이 두 가지는

식탁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품목이다.


커피 원두와 카카오의 주된 생산지인

적도 부근 국가들이

가뭄과 이상 고온으로

재배량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 곡물이 오르면, 모든 게 오른다 ]


기후 위기로

가장 먼저 가격이 오르는 것은 곡물이다.


밀, 옥수수, 대두.


그리고 곧바로

고기가 오른다.


가축은 곡물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사료값이 오르면

고깃값은 반드시 오른다.


이건 예측이 아니라

구조다.


문제는 이것이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전 세계에서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은

이 흐름에 가장 취약한 국가 중 하나다.


한국은 식량 자급 국가가 아니다.

쌀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식재료를 수입에 의존한다.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OECD 최하위권,

곡물 자급률은

겨우 20% 수준이다.


기후 위기가 심화될수록

식량은 상품이 아니라 ‘안보’가 된다.


당장 자국의 국민들이 굶어 죽는 판에,

어떤 나라가 식량을 수출하려 하겠는가?

각국은 빗장을 걸어 잠글 것이고,

결국 우리는 웃돈을 주고서라도

사 와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당신의 지갑으로 청구된다.


우리는 이전 에피소드에서 확인했다.

기후 위기가 없어도

원화 가치는 하락하고,

인플레이션은 확정적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식량 인플레이션까지 겹친다.


이건

“조금 비싸진다”는 문제가 아니다.


생활이 무너진다.



[ 식탁은 계급이 된다 ]


임금은 통계로 포장된다.

연봉은 세전・세후로 왜곡된다.


하지만 식탁은 속이지 않는다.


같은 돈으로

덜 사고,

더 적게 먹고,

더 나쁜 것을 먹게 된다.


이게 바로

생활 수준의 하락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가장 약한 계층부터 시작된다.


가격이 오르면

우리는 선택한다.


신선한 음식 대신 가공식품,

단백질 대신 탄수화물,

제철 대신 싸구려.


식비를 줄이기 위해

건강을 깎아 먹는다.


그리고 그 대가는

몇 년 뒤

병원비로 청구되어 돌아온다.


돈이 있는 사람은

여전히 신선한 과일과 채소,

질 좋은 고기를 먹을 것이다.


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비싸진 신선 식품 대신,

가공식품과 인스턴트로

배를 채워야 한다.


‘신선함’이 곧

부의 상징이 되는 시대다.



[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우리는 이미

세금과 전기요금으로 지갑을 털렸고,

이제는 마트 계산대 앞에서

먹고 싶은 것을 포기하는

비참함까지 감당해야 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버텨볼 수라도 있다.


더위는 공공시설로 피신하고,

밥 대신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면 되니까.


하지만 다음 문제는 다르다.


버티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

돈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 상상조차 하지 못한 문제.


‘물’이다.



'다음 이야기 EP 18 : 기후 위기 ③ 깨끗한 물은 부자의 것이다'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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