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침몰하는 한국에서 살아남기 #18

EP 18 : 기후 위기 ③ 깨끗한 물은 부자의 것이다

by 이슬비

CHAPTER 1 : 재앙 편 / Part 2 - 3



1990년대 이전까지

한국에서는 생수를 사서 마시는 문화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생수 판매를 금지한 법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먹는 샘물’의 제조・판매 허가는

사실상 거의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외국인 선수단과 방문객을 위해

예외적으로 허용된 적이 있었을 뿐이다.


당시 국가의 기본 입장은 단순했다.


“수돗물은 안전하다.

국민은 수돗물을 마시면 된다.”


그리고 실제로,

그 말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물을 사서 마시는 것은 일상이 되었고,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더 좋은 물’, ‘더 깨끗한 물’을 고르는 시대가 되었다.


샤워기에 필터를 달고,

일반 생수 대신 프리미엄 라인을 찾고,

정수기를 설치하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선택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깨끗한 물’을 원하는 소비자가 되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이런 행동을 두고

누군가는 “사치”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당연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입장 차이가 있는 단계다.


하지만 기후 위기는

이 애매한 경계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지워버리고 있다.



[ 물 부족이 아닌 ‘좋은 물’ 부족 ]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한국은 비가 많이 오잖아.”

“댐도 많고, 수돗물도 나오는데 뭐가 문제야?”


틀렸다.


문제는 물의 존재여부가 아니다.


마실 수 있는지,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다.


기후 위기는

비를 없애는 방식으로 오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비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성격이 바뀐다.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너무 강하게 내린다.


과거의 비는

천천히 오래 내려

땅에 스며들 시간을 주었다.

그 물은 지하수가 되었고,

댐을 채웠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폭우로 쏟아진 물은

저장될 틈도 없이

하천을 타고 바다로 흘러가 버린다.


그 결과,

지하수는 보충되지 않고,

댐의 저장 효율은 떨어진다.


비는 많이 오는데,

정작 쓸 수 있는 물이 줄어드는 상황인 것이다.



[ 끓여도 독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


더 큰 문제는

수질’이다.


우리가 매일 마시고 쓰는 수돗물은

깊은 산속의 옹달샘이 아니다.

대부분이 ‘강물’이다.


기온 상승은 바다만 데우지 않는다.

강과 호수의 온도도 함께 올린다.


물이 따뜻해지면

무엇이 생길까?


녹조,

조류,

그리고 각종 독소.


우리가 뉴스에서 보았던

‘녹조 라떼’가 바로 그것이다.


이 문제를

단순히 “냄새가 난다”,

“보기 안 좋다” 수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녹조가 뿜어내는 독소,

특히 ‘마이크로시스틴’은

피부염을 일으키는 수준을 넘어

강한 간 독성을 가진 물질이다.


장기간 노출될 경우

간 손상과 면역 저하를 일으킬 수 있고,

여러 연구에서 발암 위험성까지 지적되고 있다.


심지어 생식 독성 가능성도 보고되고 있다.

우리 세대만의 건강 문제가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독소가 기존 정수 시스템으로는

완전하게 제거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물을 끓여 마시면 된다”는 방법도

사실상 통하지 않는다.


일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마이크로시스틴은

100℃에서는 물론,

150℃에서도 잘 분해되지 않으며

200℃ 이상의 고온이 되어야

비로소 분해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즉,

집에서 아무리 끓여봤자

독소는 그대로 남아있다는 뜻이다.


결국 해결책은

오존 처리,

활성탄 여과 같은

고도의 정수 과정을 거치는 것.


하지만 여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더 많은 전기,

더 많은 약품,

더 많은 설비와 유지 비용.


결국,

물을 깨끗하게 만들수록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리고 그 비용은

어디를 향할까?


고스란히

우리의 수도 요금으로 청구된다.



[ 수도관은 안전할까? ]


비싼 돈을 들여 독소를 걸러내고,

고도 정수 처리를 마쳤다고 치자.


정수장 문을 나선

‘깨끗한 물’은

우리의 집 수도꼭지까지

긴 여행을 시작한다.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한다.

물이 지나오는 ‘길’이다.


노후 수도관,

녹물,

미세 입자,

중금속.


지자체마다 예산 부족으로

수십 년 된 수도관을

제때 교체하지 못한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와

수돗물 깔따구 유충 사태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노후 인프라가 있는 모든 도시의 예고된 미래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도관을 전면 교체하고,

시설을 상시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 역시

막대한 돈이 든다.



[ 물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


그래서 물은

어느 순간부터

‘공공재’가 아니라

‘비용의 문제’가 된다.


어떤 집은

정수기를 거친 물을 마신다.


어떤 집은

프리미엄 생수를 집에 쌓아둔다.


샤워기에는 필터가 달려 있고,

교체 주기까지 관리한다.


반면 어떤 집은

“끓여 먹으면 되지”라는 말로

불안함을 참고 넘긴다.


필터는 사치고,

정수기는 부담이다.


문제는 이 차이가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 되어간다는 점이다.


물의 계급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1단계

“수돗물에서 냄새나네.”

→ 생수 구매


2단계

“아기 있는 집은 필터 달아야지.”

→ 정수기 설치


3단계

“정수기 성능 차이가 너무 크네.”

→ 고급 필터・고급 정수 시스템


4단계

“이 지역 물이 안 좋다더라.”

→ 상수원 좋은 지역, 신축 건물 선호.


그리고 마지막 단계.


깨끗한 물을 당연하게 쓰는 집과,

제한된 조건에서

물 사용을 걱정해야 하는 집으로 갈린다.


이게 바로

물의 계급화다.



[ 80억 명이 함께하는 조별 과제는 실패했다 ]


총 3편에 걸쳐서

집, 재난, 전기, 식량, 그리고 물까지.

기후 위기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조금씩 조여오는지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 질문에 도달한다.


“전 세계 국가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니다.


세계의 국가들, 정치인들, 기업들 모두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충분히 알고 있다.


문제는

모르는 게 아니라, 합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각 국가는

저마다 기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노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방향이 서로 다르다.


미국은

2026년 파리기후협약 탈퇴가 예정되어 있다.

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기후 위기를 공개적으로 “사기”라고 규정했고,


“Drill, Baby, drill”

( 파라, 계속 파라! )


이라는 구호 아래

석유와 가스 시추를 확대하고 있다.


환경보호보다는

에너지 가격을 낮춰서

당장의 경제를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논리다.


중국은 어떤가?


배터리, 전기차, 태양광 산업을 앞세워

기후 위기 대응의 선두에 있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화석연료를 소비하는 국가다.


기후 위기는

환경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략의 일부로 취급된다.


유럽도 다르지 않다.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의 위기가 가시화되자

Euro 7 배출가스 규제는 대폭 완화되었고,

전력난을 이유로

폐쇄 예정이던 화력발전소를

비상시 재가동을 허용했다.


생존 앞에서

신념은 언제든 접힌다.


세계 최대 열대우림을 가진 브라질은

아마존을 농경지로 바꾸는 대신

‘열대우림 보존 기금’을 내세운다.


“우리가 숲을 지켜 주고 있으니

선진국이 매년 보상금을 내라.”


돈이 끊기면

다시 밀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무언의 협박이다.


동남아시아의 열대우림 국가들은

더 솔직하다.


“우리 경제가 먼저다.”


서방의 환경 압박에

“너희는 환경 파괴하며 성장해 놓고

왜 우리에게만 참으라고 하느냐”라고 맞선다.


결과는 명확하다.

숲은 밀리고

농경지는 늘어난다.


이 모든 흐름의 결과는 명확하다.


파리기후협약이 내세운

‘1.5℃’라는 기준선은

2024년 기준,

이미 상당수의 날에서 넘어섰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많은 기후학자들은

공식적으로는 “1.5℃를 지켜야 한다”라고 외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이렇게 말한다.


“넘는 것은 사실상 확정이다.”

“문제는 넘은 뒤를 어떻게 수습하느냐이다.”


그래서 지금,

기후 위기는 정치의 손을 떠나

과학에게 그 공이 넘어가 버렸다.


과학이 기적처럼 탄소를 포집하거나,

지구의 온도를 인위적으로 낮춰주길 기도하면서.


기후 위기는

80억 명이 함께하는 ‘조별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 조별 과제에는

리더도 없고,

합의된 목표도 없고,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다.


각자는 자기 몫만 챙긴 채

“나는 할 만큼 했다”라고 말한다.


기후 위기라는

과학 문제가 정치 문제가 되어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공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단 기후 위기만 그럴까?


우리는 이미

수많은 갈등과 혐오 속에서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며 살고 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는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EP 19 : 정치 편 - 분열되는 정치, 그리고 개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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