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2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소비 ① 가족 편
Chapter 2 생존 편 : Part 1 - 2
[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각오 ]
투자를 하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아이디어도, 용기도 아니다.
돈(Seed Money)이다.
오늘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돈을 버는 방법이 아니다.
우리의 지갑에서 '당연하게 새고 있던 돈'을 틀어막아
강제로 돈이 남게 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미리 말해두겠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이야기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가장 거대한 '성역'처럼 취급되어 온 것들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일이다.
그 성역의 이름은,
'체면'이다.
내가 말하는 체면은
예의도, 품격도, 존중도 아니다.
남에게
내 삶이 잘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돈을 태우는 행위.
그게 체면이다.
체면은 감정이 아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지출이고,
대출 잔액으로 찍히는 숫자다.
이 글은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선택들,
소중하다고 여겨왔던 가치들을,
그리고 그 '체면'의 대가를
하나씩 청구할 것이다.
누군가는 불쾌할 것이고,
누군가는
“현실을 모른다.”
“비인간적이다.”
라며 나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더 잘 사는 법’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풍족한 삶’을 논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생존’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생존 앞에서는
선의도, 체면도, 사회적 합의도
모두 후순위로 밀린다.
다시 한번 말한다.
생존 앞에서 타협은 없다.
나는 이 글로
기꺼이 불편한 사람이 될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제 묻겠다.
그대는
불편한 진실을 끝까지 마주할 준비가 되었는가?
시작한다.
[ 하나 : 카푸어, 그리고… ]
카푸어(Car Poor)’라는 말이 있다.
본인의 경제력을 초과하는 비싼 차를 타며
생활 전체가 흔들리는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보통 이런 기준이 붙는다.
・ 차 값의 대부분이 빚일 때
・ 유지비 때문에 일상생활이 무너질 때
예를 들어 보자.
막 20살이 된 사회 초년생이
“풀할부로 그랜저 새 차 산다.”
“풀할부로 BMW, 벤츠 산다.”
라고 말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십중팔구 이런 말을 듣는다.
“주제 파악 못 했다.”
“허세 부리다 인생 망한다.”
그리고 거의 반사적으로
이런 ‘상식적인 조언’이 따라온다.
“돈 없으면 대중교통 타라.”
“정 차가 필요하면 10년 된 중고 아반떼나 타라”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돈이 없고,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는 시기라면
분수에 맞게 소비를 줄이는 게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그 대상이
‘자동차’에서
‘아파트’로 바뀌는 순간
그 상식은 마법처럼 사라진다.
이제 막 결혼한 30대 신혼부부가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건
'원룸・빌라・구축 아파트'가 아니다.
‘신축 아파트’다.
그리고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수억 원짜리 신축 아파트에 들어가면
우리는 비웃는 대신
그걸 ‘능력’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나는
조심스럽게 묻고 싶다.
지금 은행 앱을 켜서
대출 잔액을 확인해 보라.
혹시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지분 중
70~80% 이상이
은행 돈으로 채워져 있지는 않은가?
차를 집으로 바꿨을 뿐이다.
빚으로 체면을 사는 구조는 같다.
‘감당하기 힘든 빚’으로
삶을 끌고 가고 있다는 점에서
카푸어와 다를 게 없다.
아니,
액수가 훨씬 크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더 파괴적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가계부채는
전세보증금 같은 ‘사적 채무’까지 포함하면
약 3,000조 원에 육박한다.
그리고 가계 부채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0~80% 수준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
내 손에 쥔 현금은 거의 없는데,
깔고 앉은 콘크리트 덩어리에
내 인생 전체를 담보로 잡혀 있다는 뜻이다.
현실을 보자.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성남・수원・용인・하남 같은
수도권 인기 지역의 신축 아파트 가격은
이미 8~15억 사이로 형성된 지 오래다.
전세조차
4억, 5억이 흔하다.
그런데 이제 막 가정을 꾸린 신혼부부에게
그런 돈이 어디 있겠는가?
둘이 합쳐
2억 원이라도 모았다면
다행인 게 현실이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라.
전세 대출 이자만
금리 4%로 잡아도
매달 100만 원에서 130만 원이
허공으로 사라진다.
매매를 했다면?
원리금 상환액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자동차에 대해서는
우리는 꽤 냉정하다.
돈이 없으면
급을 낮추고,
중고를 고려하고,
아예 사지 않는 선택도 한다.
합리적인 판단이다.
그런데 집 앞에서는
그 냉정함이 사라진다.
돈이 없으면
빌라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오래된 구축 아파트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원룸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그런 선택지는
왜 ‘패배’로 취급되는가?
사람들은
서울에서 하남으로,
하남에서 수원・용인・구리・남양주로
계속 밀려난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신축 아파트’를 놓지 않으려 한다.
돈이 없으면
10년 된 중고차를 타는 게 상식이라면서,
왜 집 앞에서는
그 상식이 적용되지 않는가?
물론 이런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차는 감가상각이 되지만,
집은 오른다.”
좋다.
그럼 나는 되묻고 싶다.
집값이 왜 계속 올라야만 하는가?
집은 투자 상품이 아니라
‘거주 공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해진 미래를.
저출산,
초고령화,
인구 감소.
여기에
인플레이션과 세금 부담까지 더해진다.
먼 훗날,
우리의 아파트를 사줘야 할 세대가
사회에 진출할 즈음,
그들의 구매력이
과연 지금보다 좋아질까?
지금의 우리조차도
아파트 한 채를 사기 위해서는
20년, 30년의 노동을 바쳐야 한다.
그런데
노인 부양 부담이 폭발하고
노동의 가치가 더 빠르게 녹아내린
미래 세대가,
우리의 낡은 아파트를
지금보다 더 비싼 가격에
사줄 것이라,
정말 믿고 있는 것인가?
혹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가?
“나는 3년, 5년만 살고 빠질 거니까.”
미안하지만,
그 생각을
나 혼자만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갈 궁리를 먼저 하는 시장.
'거주'가 아니라
'탈출'이 목적이 목적인 곳.
그런 시장은
모래성처럼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부동산은 무조건 폭락한다" 같은
공포 마케팅이 아니다.
그저
수요가 줄어드는 구조에서
가격이 영원히 우상향할 수는 없다는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서울 핵심 지역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아파트는
구조적으로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자본주의의 대원칙은,
부동산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화려한 조명,
대리석 바닥,
남들이 부러워하는 브랜드 로고.
그것들이
정말,
우리의 삶을 지켜주는가?
내가 생각하는 ‘집’은 다르다.
매달 갚아야 할 이자 압박이 없고,
은행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완전히
내 것이 된 공간.
화려하지 않아도
가족이 빚 걱정 없이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곳.
나는 단언한다.
생존의 관점에서,
후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집은 돈을 불리기 위한
도박판의 칩이 아니다.
비바람을 막고,
내 가족의 체온을 지키는
‘생존의 요새’여야 한다.
요새를 짓겠다고
가족을 굶기지 마라.
주객이 전도된 삶은,
결국
무너진다.
[ 둘 : 신혼 패키지 ]
집 문제에서 끝났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신혼부부의 소비는
아파트에서 멈추지 않는다.
① 결혼식
소비는 결혼식에서부터 시작된다.
웨딩 촬영,
식장 대관,
식대,
청첩장,
각종 모임 비용.
결혼을 결정한 순간부터
이미 수천만 원의 지출이
당연한 듯 굴러가기 시작한다.
왜일까?
결혼식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 코스'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 결혼식은
사랑의 증명이 아니라
'체면을 증명하는 의식'이 되어가고 있다.
사랑은 남아 있어도,
결혼식은 사치가 되는 시대가 온다.
결혼할 인구 자체가 줄어들고 있고,
결혼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은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결혼식이라는 비용 자체를
감당할 수 없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
이건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많은 국가에서는
결혼 제도를 벗어나
동거라는 형태가 보편화되고 있고,
각국의 정부 역시
동거 커플에게
세제・복지 혜택의 일부를 인정하고 있다.
그런 시대에 우리는
모두가 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길어야 한 시간 남짓한 이벤트에
2천만 원, 3천만 원을 태운다.
물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래도 결혼식으로
부모님이 뿌린 돈,
내가 뿌린 돈을
어느 정도 회수해야 하지 않느냐.”
맞다.
그 논리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결혼식은
그나마 ‘논쟁의 여지’라도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② 신혼 가전・가구
신축 아파트에
오래된 가전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TV를 새로 들이고,
“요즘은 필수”라는 말과 함께
식기세척기,
스타일러,
로봇청소기까지
장바구니에 쓸어 담는다.
가구도 마찬가지다.
침대,
소파,
식탁.
“어차피 평생 쓸 거니까.”
“신혼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건 시작 비용이 아니다.
그나마 미래에
현금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가능성 자체를
스스로 소멸시키는 행위다.
③ 신혼여행
그리고 마지막이 신혼여행이다.
“단 한 번뿐인 이벤트니까.”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결혼식과 가전에서 멈추지 않고
해외로 떠난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여행을 가지 않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선택이다.
그럼에도
신혼여행을 국내로 간다고 하면,
아예 가지 않겠다고 하면,
어딘가 불편한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
심지어 요즘은
‘태교 여행’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하지만 분명히 하자.
결혼은
배우자와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함께 떠나는 것이지,
무분별하게 돈을 태워
해외로 떠나는 행사가 아니다.
④ 신혼 패키지의 진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혼식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가전이 필요 없다는 말도 아니다.
여행을 가면 안 된다는 말도 아니다.
나는 단지
이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 모든 것을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한 번'에 해야만 하는가?
그리고
그 비용을
빚으로 끌어다 쓰면서까지
정말 감당해야만 하는가?
우리는 이 모든 지출을
'새 출발'이라는 말로 포장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소비를 밀어붙이는 동력은
대부분 따로 있다.
비교.
시선.
체면.
남들만큼은 해야 할 것 같고,
남들보다 초라해 보이면 불안하고,
뒤처지는 순간
레이스에서 탈락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 불안이
우리의 통장에서
조용히 돈을 꺼내간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결제하는 순간,
우리는
‘신혼 패키지’를 산 게 아니다.
미래의 현금 흐름을,
미래의 선택지를,
미래의 자유를
한 번에 포기한 것이다.
만약 그 수천만 원을
신혼 패키지 대신
누구나 다 아는
미국 지수(S&P500)에
그대로 묻어두었다면?
20년 뒤,
그 돈은
우리의 노후를 떠받치는
억 단위의 자산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분명히 하자.
우리는 지금
신혼 패키지를 산 것이 아니다.
우리의
10년, 20년 뒤 ‘자유’를
사회적 시선,
즉 체면과 맞바꾼 것이다.
[ 셋 : 확률 낮은 도박 vs 확정된 승리 ]
자동차, 집, 신혼 패키지.
여기까지는 그래도
‘물건’이고, ‘이벤트’다.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학부모들이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어쩌면 집보다 더 거대한 성역이 하나 남아 있다.
바로 자녀 교육비,
그중에서도 사교육비다.
이 지점에서
많은 독자들이 속으로 반발할 것이다.
“그래도 자식 교육은 다르다.”
“아이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
“이건 사랑이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냉정하게 묻고 싶다.
정말 그럴까?
우리가 사교육비 쓰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대부분은 이것이다.
・ 우리 아이만 뒤처질까 봐
・ 우리 아이만 손해 볼까 봐
・ 언젠가 아이가 나를 원망할까 봐
이렇듯,
사교육의 연료는
사랑이 아니라
불안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가
자신이 누구인지 탐구해 보기도 전에,
이미 무한 경쟁으로 지옥이 되어버린 입시판에
아이를 밀어 넣는다.
영어 유치원,
사교육,
선행 학습.
그리고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 너를 위해서야.”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어서.”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건 사랑의 언어를 빌린
불안의 합리화에 가깝다.
이제 생각을 전환해 보자.
우리는 왜 기를 쓰고
명문대를,
의대를 보내려고 하는가?
결국은
‘돈’을 더 잘 벌고,
더 ‘안정적’으로 살게 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냉정하게 바라보면,
이건
성공 확률이 극히 낮은
‘도박’에 가깝다.
아이가 명문대를 가려면
초등학교(요즘은 유치원) 때부터 고3까지,
1년에 4번 있는 시험을
단 한 번도 크게 미끄러지지 않고 잘 봐야 한다.
수행평가를 챙기고,
입시 면접도 뚫고,
끝까지 경쟁에서 밀리지 않아야 한다.
그걸 다 버텨낸 뒤에도
끝이 아니다.
대학 이후에는
'취업'이라는
더 높은 난이도의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아이의 경쟁 상대는
옆자리 친구만이 아니다.
AI,
로봇,
자동화 시스템까지
경쟁에 뛰어든다.
이미 우리는
대졸자 취업률이
어떻게 붕괴되고 있는지
지난 < 재앙 편 >에서 확인했다.
정리해 보자.
이 모든 바늘구멍을
20년 가까이,
단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고
통과해야 한다.
이게 정말
‘안정적인 투자’가 맞는가?
하지만 생존의 관점에서
우리는 냉정해져야 한다.
명문대, 의대가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 주던 시대는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 안정을 얻기 위한 가격이
이미 미쳐버렸다.
비용은 폭증했고,
경쟁은 지옥이 되었으며,
그 끝에도
또 다른 경쟁이 기다린다.
그리고 이제는
그 경쟁에
AI와 로봇이라는,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대항하기 어려운
'문명 단위의 경쟁자'가
끼어들었다.
즉, 이건
"노력하면 된다"의 문제가 아니다.
극단적으로 높은 비용을 들여
극단적으로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이건
도박에 가깝다.
이제 감정은 내려놓자.
숫자를 보면 답이 나온다.
2025년 3월,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전체 학생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약 47만 4천 원이다.
하지만 이건 사교육을 안 하는
학생까지 포함한
평균의 함정이다.
사교육을 하는 학생으로만 좁히면?
약 59만 2천 원.
서울로 범위를 좁히면?
약 67만 3천 원.
사교육을 받는 서울 고등학생이라면?
월 100만 원 이상이다.
또한
2024년 기준
전체 사교육비 총액은
약 29조 2천억 원,
사교육 참여율은 '80%'에 달한다.
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사교육비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 말은 곧,
거의 대부분의 가정에서
매월 이 막대한 돈이
고정비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 막대한 돈을
사교육비로 쓰는 대신,
앞서 잠깐 언급했던
미국 지수(S&P500)에
그대로 묻어두기만 한다면 어떨까?
아이가 30살이 되었을 때,
설령 취업난으로 절망하고 있을지라도
그 아이 손에는
복리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수억 원의 자산과,
평생 마르지 않는
현금 흐름이 쥐어져 있다.
이건
확률 게임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승리할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노력도, 재능도 필요 없는 '확정된 승리'다.
생각해 보라.
명문대 졸업장 하나를 쥐고
빚더미에 앉은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삶과,
학벌은 평범하지만
수억 원의 자산을 들고
생계 걱정 없이 선택권을 가진 삶.
무엇이 진짜 아이를 위한 선택인가?
무엇이 진짜 성공인가?
혹시
‘대학 안 나오면 사람 구실 못한다’고
걱정하는가?
대학은 30살에 가도 상관없다.
자산이 있는 아이는
생계를 위한 취업 스트레스 자체가 없다.
세상을 경험하다가
진짜 배우고 싶은 게 생겼을 때,
그때 자기 돈으로 대학에 가면 된다.
“나이 들면 머리가 굳어서 안 된다”라고 말하고 싶다면,
성인이 되어
뒤늦게 자신의 적성을 찾고
다시 도전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실패자로 규정하는 셈이다.
답은 이미
우리의 계산기 안에 있다.
포기해야 할 건 단 하나다.
“우리 애 어디 다녀.”
“어느 명문고, 명문대 다녀.”
그 자랑할 권리,
그 ‘체면’ 하나만 내려놓으면,
아이는 학업 스트레스 없이
부모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사랑을 느끼고,
부모는 노후 파산 걱정 없이
아이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
학원 숙제 때문에 싸울 일도,
성적 때문에 아이를 다그칠 일도 없다.
아이의 단 한 번뿐인 학창 시절을
학원 안에서 보내게 하는 대신
가족과 함께하는 추억을 만들어준다면,
대화가 많아지고
공유하는 감정이 깊어진다면.
과연 그게 실패한 인생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교육을 말하지만,
실은 체면을 소비하고 있다.
“남들 다 하니까.”
“우리 애만 안 하면 이상하니까.”
그 ‘체면’ 때문에
우리의 노후와
아이의 미래를
동시에 담보로 잡고 있다.
이건 투자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다.
‘레버리지(빚)’다.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가장 비효율적인 레버리지.
[ 골든 타임을 놓치지 말자 ]
30대부터 50대.
우리가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시기이자,
생존을 위한 자산을 모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기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우리는 이 시기에
가장 많은 돈을 쓰고,
심지어 현재의 소득에서 멈추지 않고
미래의 소득까지 빚으로 끌어다 소비한다.
그리고 이 구조는
우리의 노후를
거의 확실하게
가난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다.
이건 우리가 잘못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허영심이 많아서도,
이기적이어서도 아니다.
지금의 소비는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구조가 만들어낸 흐름이다.
비교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게 만들고,
뒤처지면 실패자로 만드는 사회.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그저 가족을 위해,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을 뿐이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선택을
스스로 부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지금 이 순간부터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미 산 아파트를
당장 팔 필요도 없고,
아이를 학원에서
지금 당장 빼낼 필요도 없다.
단 하나면 충분하다.
“이 소비가 정말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가?”
이 질문을
한 번 더 하는 것.
변화는
항상 거기서 시작된다.
[ 에필로그 : 우리는 왜 힐링을 갈구하는가 ]
요즘 서점에 가면
‘위로’, ‘힐링’, ‘자존감’, ‘마음 챙김’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를 장악하고 있다.
왜일까?
우리 모두
끝없는 비교와 경쟁에 지쳐
이미 마음이 병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그토록
마음의 평화를 원하고,
삶의 본질에 다가가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우리를 병들게 하는
그 무거운 삶의 짐들은
끝내 내려놓지 못한다.
남들 보기에 번듯해야 하는 집,
남들에게 뒤처지면 안 되는 교육,
남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소비.
입으로는 “마음 챙김”을 말하면서,
몸은 여전히
‘비교의 감옥’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이제 그만 인정하자.
책 몇 권 읽는다고
자존감은 회복되지 않는다.
진정한 치유는,
나를 갉아먹는
‘가짜 욕망’들을
하나씩 걷어낼 때 시작된다.
본질로 돌아가자.
집은 투자가 아니라
안식이다.
자녀는 경쟁의 도구가 아니라
사랑이다.
삶은 보여주기가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남들의 시선이라는 거품을 걷어내고,
과도한 빚과 경쟁을 내려놓을 때,
통장에는
생존 자본이 쌓이고,
마음에는
진짜 평화가 깃든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고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이며,
이 시대의 ‘진정한 자기 계발’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건
더 화려한 껍데기가 아니다.
그러니
과감하게 벗어던져라.
그리고
진짜 생존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라.
EP 23
<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소비 ② 개인 편 > 에서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