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침몰하는 한국에서 살아남기 #23

EP 23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소비 ② 개인 편 I

by 이슬비

Chapter 2 생존 편 : Part 1 - 2




[ 나를 위한다는 착각 : 화려한 빈곤층 ]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몇 가지 숫자부터 꺼내놓고 가려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20대와 30대의 1인 가구 비율은

이미 각각 17%를 넘어섰다.


하지만 진짜 주목해야 할 숫자는

따로 있다.


바로 미혼율이다.


20대 미혼율은 약 95%.

사실상 결혼이 멸종된 상태다.


30대 미혼율은 약 51%.

이미 두 명 중 한 명은 혼자 산다.


조금 더 범위를 좁혀

30대 초반(30~34세)만 보면

이 수치는 더 선명해진다.


・남성 미혼율 : 약 74.7%

・여성 미혼율 : 약 57.1%


즉,

남성은 4명 중 3명,

여성은 5명 중 3명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더 충격적인 건,

'변화의 크기'가 아니라

'변화의 속도'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세상은 이렇지 않았다.


30대 미혼율은

2000년 13.4%에 불과했으나,

2023년 51.3%까지 치솟았다.


한 세대가

지나가기도 전에

세상이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이제 결혼은 누구나 하는

'당연한 과정'이 아니라

점점 선택받은 소수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니 지난 < 가족 편 >을 읽으며


"어차피 나는 결혼 안 할 건데?"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네."


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거대한 시대에 밀려

'못'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


결혼을

안 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그것이

부양가족이 없으니

자유롭게 돈을

펑펑 써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늙고 병든 노후를

책임질 사람이

이 세상에 오직

'나 혼자'뿐이라는 뜻이다.


자, 이제 한 번

우리의 지갑을 열어보자.


부양할 처자식도 없고,

사교육비가 필요하지도 않으며,

수천만 원짜리 혼수를 산 것도 아니고,

아파트를 사려고

무리하게 빚을 낸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우리의 통장은

월급이 들어오는 족족

스쳐 지나가기만 하는 걸까?


이제부터 우리는

개인의 소비를 해부한다.


'나를 위한 투자'

'갓생'

'힐링'

'보상'

'재테크'


이런 달콤한 말로 포장된 채

우리의 미래를

조용히 갉아먹고 있는

기만적인 소비 습관들

하나씩 도마 위에 올릴 것이다.


읽는 내내 불편할 수 있다.

애써 외면해 왔던

통장 잔고를

마주하기 싫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해둔다.


이 글은

우리를 주눅 들게 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우리의 10년, 20년 뒤

비참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쓰인 글이다.


준비 되었는가?


이제

우리가

'나를 위한다'라고 믿어왔던

그 소비의 실체를

마주할 시간이다.




[ 하나 : 해외여행, 경험이라는 착각 ]


인스타그램을 켜 보자.

화면을 몇 번만 내리면

해외에서 찍은 화려한 인증샷들이 쏟아진다.


유튜브에는

해외여행 브이로그와 리뷰 영상이 넘쳐난다.


2025년 설 연휴,

정부는 내수 소비 활성화를 명분으로

1월 2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나?


국내 관광지가 아니라

인천공항에 대규모 인파가 몰렸다.


이제 인천공항은

명절이든 주말이든,

성수기든 비성수기든

늘 붐빈다.


실제로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해외 출국자는 약 2,869만 명.


국민 절반 이상이

비행기를 탔다.


마치

"1년에 한 번쯤은 해외여행을 가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옆 동네 마실 나가듯

비행기 표를 끊는다.


그리고 늘 같은 말을 한다.


"경험을 하기 위해서."

"나에게 주는 보상이니까."

"힐링이 필요해서."

"요즘은 국내보다 해외가 더 싸잖아."


그럴듯하다.

아주 그럴듯한 핑계다.


그런데

냉정하게 한 번 묻고 싶다.


그 여행이 정말

우리의 삶을 바꿨는가?


비행기 표, 숙소, 식비, 쇼핑.

적게는 200만 원,

조금만 욕심내면

300~500만 원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몇 달 동안

시간과 체력을 갈아 넣어 번 돈이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에

공중분해 된다.


여행이 끝나고

무엇이 남는가?


카드 할부,

여행 후유증,

"다시 일하기 싫다"는 허무함.

그리고

핸드폰과 SNS에 남은 사진 몇 장.


솔직해지자.


요즘 해외여행을 가는

목적의 상당수는

'경험'도 '회복'이 아니다.


플렉스(Flex),

즉 사치다.


남들 다 가는 관광지에서

비슷한 사진을 찍고,

평소보다 과한 돈을 쓰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경험이 되는가?


그래서 그 여행이

우리의 삶에

어떤 방향성을 남겼는가?




현실은 팍팍하다.

직장은 숨 막히고

미래는 불투명하며,

집은 너무 비싸

아예 살 엄두조차 안 난다.


그래서 우리는

'보상'을 원한다.


"이 정도는 나한테 써도 되잖아."

"다들 한 번쯤은 가잖아."


그렇게

가장 쉽고,

가장 만만한 선택지로

'해외여행'을 고른다.


하지만

여행이 끝난 뒤 기다리는 건

더 나아진 삶이 아니다.


여행의 여운은 짧고,

카드 명세서의 고통은 길다.


남은 건

비어버린 통장과

더 버거워진 현실뿐이다.


문제는

이 소비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습관이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해외여행을 안 가면

인생이 너무 각박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한 번의 해외여행에

200~300만 원을 쓴다는 건,


매일 아침

지옥철을 견디고,

상사의 비위를 맞추며,

뼈 빠지게 모은

3~4개월 치의 돈을

단 며칠 만에

불태워 없앤다는 뜻이다.


여행 사진도,

SNS에 남은 추억도

우리의 생활비가 되어주지 않는다.


15, 20년 뒤

예고된 재앙이 현실이 되었을 때,

갤러리에 잠들어 있는

사진 쪼가리들은

우리를 지옥에서 꺼내주지 못한다.


그때 우리를 지켜주는 건

잠깐동안의 화려한 기억이 아니라

길고 지루한 시간을 견디며

쌓아 올린 생존 자본이다.


그리고 그 자본이

미래의 우리에게

자유를 선사한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

비참한 인생을 살지 않을 자유.

다음 달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을 자유.


이게

진정 나를 위한 보상이다.


오해하지 말자.


나는 해외여행을

무조건 가지 말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기분 전환은

인간에게 분명 필요하다.


다만 비행기 티켓을 끊기 전

한 번만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떠나려는 그 여행이

정말 회복을 위한 여행인지,

아니면

충동적이고 습관이 되어버린

무분별한 소비인지.


우리의 여권에 찍힌

그 수많은 도장들이

정말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는가?


아니면,

우리의 미래를 조금씩 약탈하며

우리 영원히 노동 현장에 묶어두는

족쇄가 되었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3박 4일의 달콤한 마취제가 아니라,


길고 지루하지만

확실하게

우리의 생존을 보장해 줄

자본이다.




[ 둘 : 취미와 운동, 갓생이라는 사치 ]


해외여행이

'휴식'을 핑계로

지갑을 연다면,


취미와 운동은

'자기 관리'와 '애착'이라는

훨씬 더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운다.


"건강이 최고잖아."

"자기 관리는 필수지."


맞다.

운동은 분명 필요하다.

건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운동이 아니라, 소비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사실부터 마주하자.


우리는 아마추어지

프로가 아니다.

그리고

프로가 될 필요도 없다.


기록을 깨고 싶은 욕심,

남들보다 잘하고 싶은 승부욕,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프로 전용 장비'

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카본 플레이트가 들어간 러닝화,

수십만 원짜리 최신형 워치,

수백만 원짜리 골프채,

선수용 테니스 라켓,

고가의 사이클 프레임.


그 장비들은

취미를 즐기라고 만든 물건이 아니다.


평생을 그 종목에 바친 사람들이

자신의 '인간적 한계'

단 0.1초, 1cm라도 더 밀어붙이기 위해

사용하는 '전투 무기'다.


왜냐하면

그 기록과 승리가

그들의 생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서,

그 정도 경지에 올라야

그 비싼 장비의 성능을

온전하게 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의 생계는

트랙 위에도 없고,

필드 위에도 없고,

코트 위에도 없다.


우리의 생계는

사무실 책상 위에 있거나,

매일 출근하는

현장에 있다.


솔직해지자.


기본 체력도,

기술도,

꾸준함도 부족한데

우리는 먼저

장비부터 업그레이드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고가 장비는

실력을 끌어올려 주는 대신,

"장비가 좋아서 이 정도 한다"는

착각을 유지하게 해 줄 뿐이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고객이 없다.


우리는

프로의 장비를

가질 이유가 없다.


각 제조사가 이미

아마추어를 위해 만든

'보급형 장비'만으로도

우리의 운동 목적은 200% 달성된다.


그 정도면

건강을 지키고

취미를 즐기기엔

차고도 넘친다.




운동뿐만이 아니다.


캠핑,

사진,

무분별한 굿즈 수집,

각종 팬덤 활동까지.


물론

이미 미래의 생존 자본이

충분히 쌓여 있고,

이 소비가

우리의 노후와 선택권을

조금도 위협하지 않는다면

굳이 말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소비의 끝에 남는 게

잠깐의 도파민과

점점 희미해지는 기억,

사진 몇 장이 전부라면.


그리고

그 대가로

매달 카드값이

우리의 목을 조여온다면.


그것은

'취미'가 아니라

'파괴'다.


기억하자.


취미는

나를 회복시키는 몰입이어야 한다.


내 통장을 갉아먹는

정기 결제 항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건

사진 몇 장과

SNS에 올릴 기록이 아니다.


오래 살아남을

건강한 몸,

그리고

미래의 내 삶을 지켜줄

자본이다.


나를 위한다는 핑계로,

무리한 운동과

과한 취미 생활로

건강과 자본,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죽이지 마라.


우리의 몸은

아마추어여도 괜찮다.


하지만

나 자신의 통장 관리만큼은

'프로'여야 한다.




[ 셋 : 자동차, 도로 위에 돈을 뿌리다 ]


자동차 분야에서

아주 유명한 농담이 있다.


"그돈씨."

"모닝 사러 갔다가 롤스로이스."


웃자고 하는 말 같지만

자동차 소비의 본질을

정확히 찌르는 표현이다.


차가 필요해지는 순간,

우리는 처음에 '이동'만을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새

'기능'을 따지게 되고,

마지막에는 '체면'이 개입한다.


모닝을 보러 갔다가

옵션을 넣다 보니 아반떼가 보이고,

그 돈이면 조금 보태서 소나타,

결국은 그랜저를 계약하고 나오는 상황.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건 수없이 반복된 현실이다.


차는

인간의 욕망을 가장 교묘하게 자극하는 기계다.


3천만 원, 4천만 원이라는 숫자도

'월 30만 원', '월 40만 원'이라는

할부의 마법이 적용되는 순간

갑자기 감당 가능한 선택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미래를 담보 잡힌 채

무리한 소비를 저지른다.


도대체 왜?


이유는 단 하나다.


하차감.


차에서 내릴 때

창피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나아가

조금은 있어 보이고 싶은 욕망.


수입차를 타든,

그랜저를 타든 본질은 똑같다.


하지만 분명히 하자.


좋은 차를 탄다고 해서

우리의 소득이 늘어나지 않는다.

차를 바꾼다고

우리가 CEO가 되지도 않는다.


도로 위에서

성능과 하차감을 즐기고 있다고 느끼겠지만,

실상은

우리의 월급과

우리의 미래 자산을

도로 위에 흩뿌리고 있는 중이다.


명심하자.


도로 위의 하차감을 즐기려다

우리의 인생 자체가

비탈길로 하차하게 될 수도 있다.




이제

카푸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여기서부터는

자동차 그 자체가 갖는 문제다.


차를 소유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대한 소비 구조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경차라서 괜찮아."

"연비도 좋고 유지비도 적잖아."

"대중교통이랑 비교하니까

차가 더 효율적인 것 같아서 샀어."


차를 사기 전,

대부분은 이런 계산을 한다.


"리터당 15km니까 기름값은 이 정도."

"대중교통이랑 비슷하네."

"편하고 시간까지 아끼니까 이득이야."


하지만 이 계산은

반쪽짜리다.


자동차는

기름만 먹는 기계가 아니다.


보험료,

자동차세,

정기 점검,

소모품 교체,

세차 비용,

예기치 못한 수리비,

할부금.


그리고 결정적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차값이 똥값이 되는

'감가상각'까지.


차를 소유하는 순간,

우리의 통장에

매달 수십만 원씩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고정 지출' 빨대가 꽂힌다.


경차든, 중형차든,

국산이든 수입이든

이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어떤 자동차도

대중교통보다

저렴할 수는 없다.


자동차는

'편리함'을 사는 물건이지,

'절약'을 만들어주는 물건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를 사는 이유는 명확하다.


불편하기 싫어서.


덥고,

춥고,

버스 기다리기 싫고,

사람들 틈에 끼기 싫어서.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자.


돈이 없다면

불편한 게 맞다.


그게 정상이다.


자산도 없는데

편안함까지 누리겠다는 건

욕심이다.


부자들은

그 불편함을 피할 수 있는 비용을

이미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다.


우리가 지금 겪는 불편함은

가난해서 겪는 서러움이 아니라,

미래의 생존 자본을 만들기 위해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다.


영업직이거나,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곳이라서

차가 생계를 위해 필수라면

그건 예외다.


하지만

대중교통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한 삶인데도

단지

'몸이 편하고 싶어서'

차를 산다면,

우리가 가난해질 시간을

앞당길 뿐이다.


불편함을

돈으로 해결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가난을 예약한다.


지금 춥고,

지금 덥고,

지금 불편하자.


지금의 불편함은

우리의 생존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미래의 불편함은 다르다.


미래에 춥고,

미래에 덥고,

미래에 불편한 것은


우리의 생사를 결정짓는

재앙이 될 수 있다.




[ 넷 : 명품과 패션, 미사일과 기관총 ]


우리는 왜 명품을 좋아할까?


이유는 단순하다.

브랜드 로고가

우리의 자존감을 대신 채워주기 때문이다.


내가 입은 옷이,

내가 들고 있는 가방이

내 '위치'와 '계급'을 증명해 준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명품을 들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명품을 입는다고 해서

우리의 신분이

한 단계 위로 상승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명품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우리는

'명품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돈을 주고

제품을 홍보해 주는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 될 뿐이다.


명품 회사는 이미 알고 있다.


중산층의 신분 상승 욕망,

'남들보다 뒤처지기 싫은 마음'을.


그래서 그 욕망에 맞춰

가격대와 라인업을 세분화하고,

"이 정도면 살 수 있잖아?" 싶은

제품들을 정교하게 배치한다.


그러니 굳이

명품 회사의 상술에 걸려들어

내 피 같은 돈을

스스로 갖다 바칠 이유가 없다.


진짜 자존감은

로고가 크게 박힌

가방이나 시계 따위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진짜 자존감은

비교를 내려놓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때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의 관점에서 보면

차라리 명품은 솔직하다.


비싸고,

과시적이고,

한 번에 큰돈이 든다.


그래서 명품 소비에는

늘 이런 비장한 말이 붙는다.


"진짜 큰맘 먹고 산다."

"이건 각오하고 산 거야."

"그래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니까."


맞다.

명품은 충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각오하고 쏘는 미사일이다.


그래서 오히려

명품은 사람을

덜 속인다.


비싸기 때문에 망설이고,

비싸기 때문에 계산기를 두드리고,

비싸기 때문에 쉽게 사지 못 한다.


진짜 문제는

'일반 의류'다.




명품이 미사일이라면,

일반 의류는 기관총이다.


한 발 한 발은 가볍다.


티셔츠 3만 원.

바지 5만 원.

아우터 10만 원.


게다가 이 소비는

'가성비'라는 이름으로

아주 정당하게 포장된다.


"이 정도는 괜찮잖아?"

"남들 다 있는 기본템이니까."

"자주 입을 거야."


바로 이 말들이

가장 위험하다.


왜냐하면

이 소비는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카드를 긁는 순간도 가볍고,

후회도 적고,

죄책감도 없다.


그래서 멈추지 않는다.

방아쇠를 계속 당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유행이 바뀔 때마다,

세일 알림이 울릴 때마다,


"하나쯤 더."


그렇게

돈을 난사하며 구매한 옷은

어느새 옷장에 눌러앉고,

우리의 통장을

조용히,

조금씩 갉아먹는다.


명품은 한 방에 끝나지만,

일반 의류는

매달 조금씩,

그러나 절대 멈추지 않는다.




오해하지 말자.


기본적인 옷을 사는 건

전혀 잘못이 아니다.


직장에 입고 갈 옷,

일상에서 편하게 입을 옷,

추위와 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의류는

생존 필수품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필요'가 아니라

'습관'이다.


옷이 없어서 사는 게 아니라,

소비의 통제력을 잃고

습관적으로 결제하는

행태를 말하는 것이다.


기억하자.


전쟁터에서

미사일로 죽은 사망자보다

기관총으로 죽은 사망자가

훨씬 더 많다.


한 번 쏠 때마다

큰 각오를 해야 하는 명품보다,


아무 생각 없이

주저 없이 긁어버리는 일반 의류가

우리의 통장에 더 크고 많은 구멍을 낸다.




[ 다섯 : 얼리어답터, 앞서 있다는 착각 ]


대부분의 사람에게

최신 기기는 필요 없다.


이미 우리가 쓰고 있는 기기로

연락, 업무, 영상 시청, 결제까지

모두 충분히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바꾼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우리가

200만 원짜리 최고 사양 스마트폰과

고급 태블릿으로

실제로 하는 일이 무엇인가?


유튜브,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그리고 넷플릭스.


그나마 성능을 쓴다는 게

게임 정도다.


하지만 그 정도 작업조차

2년 전 모델로도

차고 넘친다.




기업은 늘 말한다.


"이번에는 다릅니다."

"성능이 대폭 향상되었습니다."

"생산성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막상 구매하고 나면

이전 제품과

무엇이 그렇게까지 달라졌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용 패턴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유튜브를 보고,

인스타를 하고,

메신저를 확인할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굳이 돈을 줘가면서,

스스로 기기를 테스트해 주고

기업의 수익만 늘려주는

'유료 베타테스터'를 자처한다.


나아가,

우리는 이름 뒤에 붙은

'Pro', 'Ultra'라는

단어에 홀려

지갑을 연다.


어쩐지 기본 모델은

제 성능이 부족할 것 같고,

생산선이 낮을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최신 기기를 손에 쥐고도

결국

비싼 장비를 가진 유튜브 시청자

남게 된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전자기기는

박스를 뜯는 순간

가치가 수직으로 하락하는

가장 대표적인

'소모품'이다.


그러니 반드시 기억하자.


멀쩡한 핸드폰을 놔두고

신제품에 기웃거리지 마라.


전자기기는

새것이 나올 때 바꾸는 물건이 아니다.


수명이 다해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

바꾸는 것이다.




'EP 24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소비 ③ 개인 편 II'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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