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서는 대부분의 하늘을 철창 사이로 본다. 하늘을 오롯이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25분 정도.
빌딩처럼 만들어진 교정시설에서는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
출처 : 법무부 뉴스
사회에서 맞는 4계절은 각각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겨울은 추운 대로, 여름은 더운 대로, 봄과 가을은 그 나름대로 예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사람들은 그 계절에 따라 스키장, 해수욕장, 산으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교도소 안에서의 4계절은 외형적으로는 단조롭다. 그냥 철창 밖에 눈이 올 뿐이고, 비가 올 뿐이고, 어디선가 꽃내음이 날 뿐이었다.
그러나 교도소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그래서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변화, 수용자들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 새로운 교도관과 새로운 수용자가 오고 갈 때의 어색함과 불편함, 이런 일상적인 것으은 교도소 안에도 있다.
전국에는 50개가 넘는 교정시설이 전국에 있다. 기관마다 시설의 크기가 다르고, 형태도 다르고, 수용자의 처우등급이 달라 지내는 모습은 다르지만 교도관 13년차 내 멋대로 적어본다.
겨울, 철창 안 겨울도 춥다. 그러나 몸보다 마음은 더 춥다.
12월부터 2월까지를 우리는 겨울이라 한다. 이 시기엔 연말 모임이며, 크리스마스, 제야의 종소리, 설명절 등 모임과 파티가 많은 시기이다. 부모님, 가족과 함께 1년을 마무리하며 새해를 맞이하고, 12월 31일엔 저녁시간부터 연말시상식 방송이 흘러나오다가 종각의 모습이 뉴스를 통해 전해진다. 설명절에는 친인척들을 만나 새해인사를 하기도 한다.
물론 교도소도 종교위원분들과 주변 종교단체에서 크리스마스 예배와 간식을 가지고 오셔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주시곤 하지만 남자들이 군대에서 간식 따라 종교활동을 다녔던 것처럼 떡과 과일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가는 수용자도 많다. 그리고 교도소 안에서도 명절에 차례상을 차려놓고 절을 하는 행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극히 일부의 수용자에게만 허락된 행사일 뿐이다. 많은 사람이 잠금장치가 있는 방 밖으로 나오는 일은 교도소 안에서는 조심해야 하는 일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일부 선별된(?) 사람만 참석할 뿐이다. 일명 모범수.
그렇기에 교도소의 겨울은 조금 외로운 마음으로 추운 겨울을 보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매일같이 쳇바퀴 돌 듯 새벽 6시에 기상음악에 눈을 뜨고, 저녁 7시에 침구류를 바닥에 깔고, 밤 9시에 TV가 꺼지고, 밤 10시엔 형광등이 꺼지고 취침등이 켜진다. 그렇게 이벤트 없는 하루하루가 흐르다 보면 오늘이 월요일인지 화요일인지, 크리스마스인지 새해 아침인지 누구 하나 먼저 인사를 건네지 않으면 모를 법도 하다.
그나마 가족들과 왕래가 많고 접견예약 능력이 있는 가족이나 지인을 둔 사람들은 접견이라도 온다. 작가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교도소에서는 접견이 예약제로 운영되다 보니 접견예약시스템에서 예약에 실패하면 접견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특히 명절에 가까운 시기 등과 같은 특정한 시기에는 접견을 예약하기가 쉽지 않다. 예전에는 접견 예약 따로 현장접수 따로 받아서 했지만 이제는 미리 예약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교도소에는 접견예약과 상관없이 가족이 없거나 연락하는 사람이 없는 사람이 더 많다. 1800명이 조금 안 되는 교정시설이지만 하루 평균 200여 명의 수용자가 접견을 실시한다. 이렇게 숫자만 보면 2주에 한 번씩은 모든 수용자가 접견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경험상 매번 접견 오는 사람이 또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2개월 3개월 동안 한 번도 접견기록이 없는 사람도 흔히 볼 수 있다. 이것도 교통이 편리한 곳의 기관일 경우이다. 본인이 강원도 쪽 기관에 있을 때엔 수용자 수는 비슷했지만 평일에는 하루에 100여 건이 조금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갑자기 접견얘기를 하다보니 한 수용자의 어머니가 떠오른다. 당시에는 현장접수로 접견이 이루어 질 때 였다. 1시간을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해서 50분 배차간격의 시내버스를 타고 40분을 교도소 근처에 도착하셔서 20분을 걸어서 교도소에 도착하시는 분이 계셨다. 이렇게 매주 살인죄로 복역중인 수용자를 보러 오는 겉모습으로 뵈도 70,80대가 되어 보이는 어머니 셨다. 하루는 접견을 마친 어머니가 시내버스를 타러 걸어가시려는 찰나에 나도 모르게 그 어머니께 태워드릴테니 타시라고 했다. 어머니께서는 너무 고맙다며 나의 차를 타셨고, 나는 30분 거리에 있는 버스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렸다. 그 30분동안 어머니는 "전에는 아들있는 곳이 멀어서 갈 수 없었는데 이제는 매주 올 수 있어 너무 좋다", "우리 아들이 나쁜 짓을 했지만 잘 부탁드린다", "교도관님들 너무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나에게 하셨다. 왕복 5시간은 걸릴 것 같은 거리를 매주와서 아들을 볼 수 있어 좋다는 어머니의 감사인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몰랐다.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 살인죄를 지은 수용자와 그 피해자와 그 가족의 마음. 교도관들이 흔히 겪게 될 딜레마였다는 걸 그 당시 신입교도관 1년차에는 잘 몰랐다.
그렇게 교도소 밖은 "메리크리스마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등 시끌벅적한 인사가 오고 가고 명동이나 홍대 같은 곳은 파티로 밤낮을 구분하지 않지만, 교도소 안은 소소하게 1명당 1평 안팎의 공간에서 함께 있는 몇몇 사람들과의 인사가 전부이다. 가족관계가 단절된 많은 수용자들은 특히 그렇다.
그렇게 교도소의 겨울은 차분하면서도 왠지 모를 외로움이, 어색함이 흐르는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