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어느 날 나는 아내에게 두 마디만 던졌을 뿐이다. 그러나 날아온 건 짜증과 분노와 욕설뿐.
내가 아내에게 했던 두 마디는 이것이었다. 아파트의 위치, 육아와 관련한 질문.
내가 실수한 걸까, 아니면 그냥 나의 행동 모든 것이 불만인가, 그냥 나란 남편 자체가 싫은 건가.
그냥 지금보다 아내와 더 멀어져야 덜 화내고, 덜 싸우며, 덜 상처받을까?
나는 결혼이 서로 성향이 다른 남녀가 맞추어가야 하는 것이고, 서로 배려하여야 하고, 이해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부부 모두 비슷한 생각을 가져야 가능했거나 그래야만 했나 보다. 아니 비슷한 사람과 결혼하는 게 덜 부딪치고 덜 힘들다.
반대성향의 배우자와 사는 부부들도 꽤 많겠지. 배우자와 성향이 다른만큼 장단점도 다를 테니 서로 보완적 측면에서 성향이 다르면 좋을 거야라고 생각하였다. 그렇다고 사람의 성품이나 결이 완전 다른 것이 아니니 괜찮을 거라 자만했다. 내가 맞추면 되니까. 그렇다면 우리 부부가 무슨 큰일이 있겠냐 싶었던 나는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라 착각했던 것이다.
가까워지면 부딪치고 그로 인해 분노가 쌓이고, 멀어지면 또 멀어진 대로 서운함을 내 비취는 배우자의 모습을 보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아직도 나는 아내가 나에게 가슴속 불만을 쏟아낼 때를 빼곤 그래도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가고 싶은데 가까이 오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는 모습을 보며 눈치만 보다가 거리를 두게 되고, 다가갔다가 상처받기를 반복하고 있다.
출처:픽사베이
어디서부터 우리는 단추를 잘못 꿰기 시작했을까
결혼을 준비하면서부터 아내와 나는 달랐는데 애써 그것을 아내는 보지 못했던 걸까.
나의 아버지는 월드컵이 막 끝났을 무렵, 고3인 나와 사관생도인 형, 40대 초반의 어머니를 두고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릴 적부터 우리 가정은 넉넉하지 않았다. 많은 부모가 그렇듯 전라도 시골에서 서울로 빈 손으로 올라와 여러 일을 하시며 결혼하시고 두 형제를 키우셨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까지 안 계시니 경제적으론 전혀 뒷받침을 해 주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근데 결혼을 하려고 보니 사회에 나와 모은 돈은 학자금대출을 갚았고 가지고 있는 돈이 없던 나는 결혼준비와 집을 구하는 문제에 있어서 도움을 구하고 조언을 구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때 처음 느끼고 불효스러운 마음을 가졌었다.
'난 왜 이리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지?', '우리 어머님은 왜 이리 경제관념이 없으시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내와 장인장모님께서 그 모든 상황을 이해해 주셨고 응원해 주셨다. 그렇게 별다른 도움 없이 전세 9000만 원짜리, 전세자금대출 7000만 원으로 다가구주택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그렇게 신혼집을 어렵사리 구하고 결혼식을 치렀다.
내 생각에 '우리 부부가 부부로 잘 안 맞나?'라고 처음 생각된 건 신혼여행이었다. 신혼여행이니 유럽으로 가고자 했던 건 서로 맞았는데 여행과정에서 부딪치는 것들이 생겼다. 난생처음 유럽여행을 가본 나와 아내인데 우린 자유여행으로 갔다. 신혼여행비를 아끼고자 해서 했던 결정이었다. 그러니 나는 온갖 신경이 쓰였다. 여행루트부터 호텔을 찾는 일, 동선 따라 이동하는 일 모든 것이 신경 쓰였다. 참고로 아내는 짐을 싸거나 계획을 짜는 일을 잘 못한다. 그래서 안 한다. 그러나 빼먹은 짐이 있거나 계획에 오점이 발견될 때 이를 지적하며 나에게 타박을 하는 행동을 했었다. 신혼여행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길을 못 찾을 때, 피렌체 두오모성당의 휴무인 걸 확인 못해서 올라갈 수 없었을 때, 파리의 지하철에서 입장티켓이 잘 안 들어가는데 파리의 흑인남성들이 아내와 같이 들어가며 무임승차를 시도했을 때 등등 사소한 일들이 생겼다. 아내도 처음이니 얼마나 긴장되고 무서웠을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신경이 예민해진 아내의 모습에 나는 눈치가 보였다. 그러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치기 시작했다. 참고로 그 와중에 가족들 선물을 산다고 들고 다녔는데 가방만 3개였고 양가 어른, 형제 들 거까지 사서 들고 다녔다. 남자인 내가 그걸 들고 이리저리 자유여행을 했으니 또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러던 중 피렌체 미켈란젤로 언덕에 갔을 때 주변에 애정표현하는 많은 커플들 사이에 우리도 있었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애정표현이 어색했는데 그때 아내가 다시 안 볼 사람들 앞에서 왜 그렇게 애정표현을 안 했냐며 다투는 일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해줄 수 있었는데 왜 그랬나 싶지만 당시엔 너무 그냥 지쳐있었다. 아내가 싫었던 것도, 그 풍경이 별로였던 것도 아닌데 그냥 너무 지쳤었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우리의 신혼여행은 프랑스, 이탈리아를 다녔던 아주 즐거운 기억이지만, 한편으론 좀 서툴러서 몸을 고생시켰던 여행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쁜 옷을 입으며 샹젤리제 거리를 걸었던 추억이 아닌 그저 유럽이 좋고 신기했지만 심신은 힘들고 지쳐서 편한 옷만 입고 다녔던 촌뜨기 청년 같았던 내 모습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