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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의 일기장 Oct 21. 2024

길내음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에서 '나'를 만나다.


사는게 뭐 별거인가. 


살아가다 보면 별거가 될 수는 있겠지만 별거가 되기 위해서 살아간다면 조금은 기분 나쁜 숨이 차오르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별거인 것보다는 그냥 지금 이대로에 마음을 내주고 있는 편이다. 

3년 전 이맘 때 연년생 두 녀석을 늦은 나이에 낳아서 기르며, 살짝 자존감에 대한 무뎌져 가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많이 우울해 했었다. 정신의 우울함은 나의 육체의 어두운 나른함을 불러 왔고, 나는 하루 하루 무기력이라는 감정을 체험하며 회복에 대한 막연한 희망만 쉰소리로 내뱉고 있었다. 별 소용도 없는 끈을 부여 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불안감과 슬픔은 여지없지 다음 날의 늘어진 나를 드러내게 하고 있었다. 

나의 이런 마음의 요동은 아마도 두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을 갓 탈피하고 이제 집에도 혼자 씩씩하게 걸어 올 수 있을 때였으니, 아주 약간의 숨통이 트이고 진심 작은 여유에 생각이 많아 지던 때였던 것 같다. 생각이 문득 문득 들 때면 내가 뭘 하던 사람이었었지? 나는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지? 오롯이 내 삶의 방향은 어디로 가고 있는거지? 내 인생의 좌표를 쓰고 있는 사람은 누구지? 그리고 나는 행복한가?라는 물음을 마지막으로 던지고 있었다. 하루 아침에 정답입니다!를 외치지 못한건 당연하고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명확한 대답보다는 연기에 휩쓸리고 있는 뿌연 흐릿함이 더해져만 갔다. 

심장이 콩닥거리기도 하고 잔 숨이 잘 안쉬어지면서 억지로 명치를 들어 올려서 큰 숨을 내 뱉고 나서야 살 것 같았던 순간이 자주 찾아왔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엄마'라고 부르거나 나의 동거인이 내 이름을 우렁차게 부를라치면 난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응~ 왜~ 뭐 해줄까?'라는 말과 편안한 표정을 연신 반복하고 있었다. 아마 잘은 모르겠지만 난 마치 가면증후군이라는 마법에 걸린 사람 같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그 숨마저도 제대로 내뱉기가 버거웠을 때였다. 

내가 정말 이러다 잘못돼 버릴 것만 같은 공포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이런 내 마음을 내 생각을 어린 아이들이 이해 해 줄리 없었고, 남편에게 나 좀 어떻게 해 줘라는 말을 하기에는 이미 내 마음이 너무 각박하고 가난해져 버린 상태였기에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내가 먼지처럼 사라질 것 같아 아무 내색도 하지 못하고 방황할 수 밖에 없었다. 한참을 하염없이 헤매이다 문득 어느 날 머리에 스치고 지나간 모세혈관 보다고 가느다란 한 줄기의 생각의 끈이 나를 불렀다. "지금 너를 위해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유일한 단 한 사람 바로 너야!"라는 외침이었다. 뒷통수를 크게 얻어 맞은 느낌이 들었지만 어쩌면 나 자신이 누구보다 그 답을 제일 먼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숨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내밀어 주는 손을 잡고 일어서면 지금까지의 나의 힘듦이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에 대한 막연한 바램 같은 거였다. 그리고 그 바램은 나를 위한 게으름에 대한 구차한 변명 같은 것이었다.


내 자신을 커버해 주던 옷가지들이 하나씩 벗겨지고 난 뒤 가는 바람도 온전히 내 피부에 스침이 느껴질 정도의 솔직함이 모습을 드러낼 즈음 나는 내가 걷고 있는 '길'에서 나만의 네비게이션을 작동시켜보기로 했다. "길 안내를 시작하겠습니다"라는 깨끗한 음색의 청음을 시작으로 나는 출발을 외쳤다. 


뭐든 "하면 되지", "할 수 있지", "해 봤잖아", " 더 잘 할 수 있어" 등의 긍정 에너지를 스스로에게 투하하면서 마지막에 던진 힘있는 한마디 "너니까 할 수 있어"는 나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그래, 나니까 할 수 있는거야. 나니까". 마치 속임수를 쓰고 있는 마법처럼, 레드썬 하면서 수면치료를 받고 이 말 저 말을 마구 내 뱉으며 고해성사하는 사람처럼 나는 그냥 솔직해 졌고 마냥 신이 났던 것 같다. 


난 한 사람의 아내이고, 두 아이의 엄마이고, 두 집안의 딸이자 며느리고, 그리고 나는 그냥 나이다. 

아무리 내 이름 석자 앞에 수 많은 타이틀이 따라다닌다고해도 또 그 앞에 또 다른 수식어가 두 어 개 더 붙는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난 완전 멀티플레이어 그 자체의 인간이었다. 머릿 속에는 수 많은 서랍들이 있었고, 그 서랍마다 별도의 라벨링을 하지 않아도 한번의 헷갈림 없이 난 서랍마다의 속을 들여다 보고 있는 초능력이 있었다. 이런 능력자라면 뭐라도 하지 싶었다. 그래서 난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나만을 위한 네비게이션은 항상 최신상이다. 왜냐면 내가 매일 업데이트를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의 네비게이션을 해킹하거나 조작할 수 없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나를 유일한 주인님으로 알고 있는 충성도 최상의 길라잡이이다. 난 나만의 네비게이션으로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기도 하고, 빠른 지름길도 찾아 본다. 그리고 때로는 제일 긴 여정을 세팅해 놓기도 한다. 여전히 나는 길을 찾고 있지만 매번 내가 찾아 내고 있는 길에서 혼자가 아님을 느낀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에는 항상 내가 있다. 난 매일 내가 걷고 있는 '길'에서 '나'를 만난다. 그래서 외롭지 않다. 내가 있어서. 


난 오늘도 또 다른 길찾기를 해 본다. 

그리도 그 길에서 길내음으로 행복을 느껴 본다. 

내가 찾고 있는 길에서 나는 내음은 내가 내일 찾아 낼 또 다른 길을 위한 것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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