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는 만종을 정말 사랑했을까

by gemma



평범한 것을 숭고한 감정으로 다루는 것,

그것이 예술에 진정한 힘을 부여한다. -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



작품에 대한 해석은 저의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이며, 전문가들의 분석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농촌 풍경은 아름답다. 하나 반나절만 허리 굽혀 흙을 파내며 일을 해보면 풍경을 아름답게 바라볼 여유가 사라진다. 도시의 생활을 각박하다고 표현한다면 농촌의 생활은 절박하다. 때로는 무지에서 오는 잔인함이 쓴웃음을 짓게도 한다.


만종, 이삭 줍는 여인들로 유명한 밀레의 그림은 어릴 때부터 수없이 봤던 터라 밀레라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개인적으로 일지 않았다. 그러나 나카노 교코가 쓴 '내 생애 마지막 그림'에서 밀레의 생애 마지막 작품인 <야간의 새 사냥>을 보고 '사실은..' 하고 운을 떼는 나지막한 한 노인의 독백이 들렸다.



<야간의 새 사냥/1874> 원제목: 횃불을 이용한 새 사냥/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이미지 출처: 필라델피아 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어두운 밤, 어른들은 나무에 앉아 쉬고 있는 수많은 비둘기들을 횃불로 눈을 멀게 하고 몽둥이로 마구 휘둘러 쳐냈어. 사방에서 비둘기 울음소리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깃털먼지,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와 고함들로 보고 있던 나도 정신이 아득해졌지.. 픽픽 바닥에 떨어진 비둘기들을 사람들은 정신없이 자루에 주워 담았고 집집마다 나누어 들고 집으로 돌아갔단다..' 노인 밀레가 유년 시절 보았던 광경을 회상하는 조그마한 말소리가 들렸다.



언뜻 작품을 보면 불꽃이 터지고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는 축제의 한 장면처럼 보일 수 있다. 밀레가 그린 장엄하고도 엄숙했던 정적인 분위기의 그림들과는 사뭇 다르며 제목과 그림 속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잔혹함에 놀라게 된다.



밀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촌의 노동자들을 아름답게, 때로는 숭고하고 그려냈다. 그는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은 아니었고 꽤 규모 있는 농장을 운영했던 집안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고단한 농촌을 아름답게 미화시켜 그려냈던 그가 인생 말미에 다달아 유년시절 보았던 잔인하고 참혹한 비둘기 사냥 장면을 그렸다.


농기계에 손과 발이 잘리는 이야기, 정성껏 키운 개를 잡아먹는 이야기, 새끼오리일 적부터 다리병신인 오리는 몽둥이로 때려죽여버리는 이야기, 살아있는 사슴뿔을 잘라 피를 나눠마시는 사람들 이야기


나만 알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밀레도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었을까?


어쩌면 밀레와 나는 자루에 담긴 비둘기를 가족들과 맛있게 나눠먹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마냥 팔짱 끼고 비난할 수 없다.


나에겐 그곳이 현실이었다.






가난한 여인들이 허리 숙여 남은 이삭을 줍고, 멀리 들리는 종소리에 하던 일을 멈춘 채 기도를 올리던 부부의 모습이 허구는 아니다. 밀레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소외되었던 농촌과 노동의 가치를 숭고하게 길어 올린 '조용한 혁명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끝내 외면하지 못하고 캔버스에 옮겨야만 했던 <야간의 새 사냥>을 마주할 때면, 나는 그의 인간적인 고백 앞에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이 그림을 가슴에 품게 된다.


200년이 지난 지금 농촌의 현실과 시선은 과연 달라졌는가

이 또한 우리가 밀레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좌 <만종 / 1857-1859> 우 <이삭 줍는 여인들/1857> / 오르세 미술관 소장 (이미지 출처: Musée d'Orsay 공식 홈페이지)





*밀레의 독백은 제 문학적 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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