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목욕탕에서

by 허옥현

새해 첫날이다. 그렇다고 해서 뭐 별일은 없다. 예전처럼 들뜨지도 않고. 며칠 전부터 감기몸살로 앓고 있는 게 작년과 다르다면 다르다. 그래서 휴일인데도 서울로 올라가지 못했다.

“옆으로 돌아누우세요.”

세신사가 끼얹을 물을 뜨면서 말한다. 1년에 몇 번 오지 않는 목욕탕에 왔다. 감기몸살이 좀 나아지려는 기미를 보여 뜨끈한 탕에 들어가면 한결 나아질 거 같아 좀 괜찮은 사우나를 검색해서 왔다. 오래된 사우나인데 찜질방이랑 카페도 있다고 간판에는 쓰여 있지만 어디를 봐도 그런 시설은 없다. 상관없다. 어차피 씻고 뜨끈한 탕에 좀 있다 갈 거니까. 때를 자주 밀면 피부에 안 좋다고 예전에 들었다. 그래서 목욕탕엔 수십 년간 다니지 않다가 최근 몇 년 새에 연중행사처럼 추운 겨울날 한두 번 왔다가 온 김에 세신사에게 몸도 맡기고 그런다. 때밀이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쉬는 날은 언젠가요?”

여기 목욕탕이 연중무휴라 혹시 쉬는 날이 따로 있는지 세신사에게 물었다. 다음에 그 요일은 피해야 하니까.

“매주 화욜은 쉬어요. 이거 힘들어서 쉬지 않으면 못 해요!”

자욱한 수증기 사이로 아빠랑 같이 온 꼬마들이 보인다. 냉탕에서 물놀이도 하고 아빠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 애들도 있고 아빠에게 몸을 맡기고 때밀이를 당하는 애도 보인다. 아버지는 왜 나랑 목욕하러 가는 걸 조심스럽게 얘기했을까? 어렴풋하지만 중3 때부터는 아버지가 ‘목욕탕 가자’라고 아주 자신 있게 얘기하지는 않으셨던 거 같다. 그런 눈치가 보였고 그렇게 눈치 보시는 게 싫어서 가자고 하실 때마다 군말 않고 따라다녔다. 근데 애 키워보니 나도 똑같다. 키가 크고 콧수염이 좀 날라치면 쟤가 뭔 생각을 할까 싶고 뭐라도 같이 하자 했을 때 싫어하면 어쩌나 그런 생각, 눈치도 좀 보이고 한다. 그래도 애들이랑 친해지려고 노력은 많이 한 거 같은데.

“명일이 왔다 갔나?”

“어... 오늘 못 봤는데!”

오래된 목욕탕이라 단골들이 많나 보다. 손님이 세신사에게 저런 것도 물어본다.

“아저씨 다음에 저 해도 될까요?”

“아 네. 거기 번호키 두고 가세요. 이 분 끝나면 부를게요.”

오늘 때밀이 못 할 뻔했다. 뜨거운 습식 사우나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이제 쓸쓸 때 밀고 갈까 싶어 세신사를 부르러 갔다. 세신사가 보이지 않아 이발사에게 물으니 입구 데스크 쪽을 가리켰다. 데스크를 봐도 잘 보이지 않아 근처까지 갔더니 뒤편 아래에 아주 키가 작은 할아버지가 돌아보시면서 조금만 기다리라 하시고는 밥 먹는 시늉을 하셨다. 아! 네 하고 돌아섰는데 기다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저 할아버지가 세신사이신가? 완전 꼬부랑 할아버지인데? 저 몸으로 때밀이가 가능한가? 아니 저런 분에게 때밀이를 맡겨도 되나? 내가 밀어드려야 할 거 같은데? 탕 속에서 입구 쪽을 보면서 걱정 반 고민 반 하고 있는데 한참 뒤에 좀 젊은, 그래도 50대는 되어 보이는 분이 팬티만 입고 들어오셨다. 휴 다행이다 싶었다.

“이제 엎드리세요. 좀 더 올라가세요. 목을 밖으로 완전히 빼세요”

“아 네 근데 세신사님. 제가 목이 좀 안 좋아서 그런데 참고하시고 살살해주세요.”

목 디스크가 와서 우측 팔이 저린 증세가 온 건 3-4년 전부터였던 거 같다.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려서 MRI를 찍었는데 같이 찍은 목 부위가 더 안 좋아 보였고 무리하게 교정 좀 해보고 운동 좀 해보다가 그만 디스크가 터져버렸다. 그래도 잘 달래서 큰 무리 없이 지내고 있지만 늘 조심해야 하고 맘 한편에 불안감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운동도 못 하고 우울했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초등학교 때 체육 담당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오래 기억에 남는 말인데 최근에 많이 느꼈다. 운동이라고는 숨쉬기만 하던 내가 1년 전 직장 동료가 권하는 런데이라는 앱을 접하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디스크가 있었지만 단거리부터 살살 늘려가면서 주 3회 정도 했고 점차 달리기 능력이 향상되고 1년 만에 10km 달리기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달리기를 꾸준히 한 이후로는 정신 건강이 좋아진 거 같았다. 몸은 힘들어도 오히려 무력감이 덜했고 정서적으로 안정이 된 느낌, 지구력도 좋아지고 활력이 더 증가된 느낌이었다. 건강해 보인다, 얼굴이 좋아졌네, 살 좀 빠진 거 같은데 라는 말을 듣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과유불급. 10km 달리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우측 팔이 저려 오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괜찮다가 어느 정도 달리면 증상이 생겼다. 더 이상 달리기 힘들 정도로.

나이 들면 서글퍼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몸이 안 좋으면 당연히 첫 번째로 서글프다. 얼마 전 동기 중에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무슨 기력이 남아도는지 정치 얘기하다가 싸웠단다. 나이 들면 고집도 세지고 사리 판단도 시대 변화를 따라가기 힘들어 싸우면 사과하기도 더 힘들 거 같고 화해해도 앙금이 오래갈 거 같다. 아직 그 정도 나이가 아닌 거 같지만 모른다, 나만의 생각인지. 누가 그랬더라? 나이 들면 관계를 줄이고 혼자 있는 시간을 늘리라고. 쇼펜 뭐라는 누구나 스님이나 철학자들이 그랬나 본데 그 고독을 즐기라거나 인연을 줄이라는 게 말은 쉽지. 싸워봐야 아는 건가? 나이 들면서 생기는 관계의 변화가 서글프다.

“이 분 다음에 바로 할 수 있나요?”

“좀 기다리셔야 하는데, 오늘 휴일이라 많네요. 손님이 네 번짼데.”

손님 많아서 대충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근데 아마 좀 짜증 나실 거다, 때가 많아서. 근 1년 만에 때밀이 하는 거라 좀 미안한 느낌도 들었다. 하고 나면 너무 개운하다. 마법같이 피부가 매끄럽고 부드러워진다. 요즘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피부과를 많이 간다. 외모가 점점 더 중시되는 시대가 되고 삶의 여유가 생기다 보니 그런가 보다. 천성적으로 피부가 좋아서 별로 외모에 신경도 안 쓰고 관리도 안 하고 살았는데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다. 눈가에 주름이 잡히고 기미가 생긴다. 아내나 애들이 쓰는 화장품들이 눈에 들어오고 뜬금없이 물어보기도 하고 직접 사서 발라보기도 한다.

때밀이가 끝나고 뭔가 화한 느낌의 마사지액 같은 거로 한 번 더 문질러 주신다.

“끝났습니다. 손님.”

어제가 작년이었고 하루 만에 새해가 되었는데 실감은 별로 안 난다. 몸이 가벼워졌고 감기 기운도 좀 덜해진 건 실감이 난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다. 17년째 해 온 주말부부 생활인데 이제 혼자 있어도 뭐든 잘 해낸다. 요리 실력도 많이 늘었다. 그래도 오늘은 집에서 청승맞게 요리해서 먹는 거보다 사 먹는 게 낫겠다 싶다. 언젠가 먹었던 흑염소탕이 생각난다. 기운도 없고 잘 안 먹던 거라 한번 먹어볼까 하고 먹었는데 의외로 맛은 나쁘진 않았고 다음 날 기운이 올랐던 기억이 난다. 내일은 개운해지겠지 싶다.

17년간 타고 다니는 차를 몰고 흑염소 식당에 가 앉았다. 아뿔싸 가방을 놓고 왔네. 기억을 더듬는데 옷 입고 난 뒤에 잠시 앉았던 평상 위에 둔 거 같기도 하고, 옷장에서 안 꺼낸 거 같기도 하고.

“사장님 내가 뭐 좀 놓고 와서 금방 다시 올게요”

물 잔과 밑반찬을 나르는 사장님에게 말하고는 급히 다시 갔다. 가까운 거리라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가방이 안 보였다. 옷장 안에도 없고 평상 위에도 없다. 귀중품 도난, 핸드폰 분실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문구들이 보였다. 특별히 중요한 물건들이 든 건 아니었지만 그 가방은 큰딸이 다 떨어져 가는 낡은 아빠 가방을 보고 사준 건데. 데스크로 갔다. 그 키 작은 할아버지가 계셨다.

“저 실례합니다. 좀 전에 왔다 간 사람인데 혹시 짙은 곤색 가방 하나 못 보셨나요?”

한참을 보시더니

“아 그 가방! 여기 있어요. 이거 맞지요?”

할아버지는 목욕탕 생활이 40년째란다. 일부러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눈썰미가 좋아서 손님들 드나드는 거 다 기억하고 복장이나 가방 든 거도 한번 본 건 웬만하면 떠오른다고 한다. 심지어 며칠 전 손님도 기억해낸다고 한다.

“좀 전에 가방이 놓여 있길래 생각했지요. 이 가방 주인은 아까 나가는 거 같던데 싶어서 혹시 몰라서 보관해 놨지요. 지금 보니까 손님 가방이 맞네. 우리 목욕탕에 처음 오셨죠? 하하하”

대단하시다 싶었다. 좀 부끄럽기도 했다. 가방이나 잊어버리고 다니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빨래만 잔뜩 든 가방을 들고 다시 흑염소 식당으로 향했다.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으려나. 잃어버렸던 가방도 쉽게 찾고 개운한 목욕도 하고 기운도 차리고 하니. 기운이 좀 나니 또 욕심이 난다.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가까운 야산에나 올라가 볼까? 아니다. 욕심은 금물. 명심하자.

이것저것 생각하면 복잡하고 힘든 일들도 많았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얼 위해 살아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건 젊을 때 일이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꼭 큰일이 아니라도 꼭 뭔가를 해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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