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일차: 실밥을 풀지 못한 치앙마이 응급실에서의 이야기
본격적인 태국 생활 준비가 끝났다는 기분으로 쇼핑을 나섰다. 롬초크몰에 있는 탑스라는 마트였다. 놀랍게
노브랜드의 한국 과자들이 제법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물티슈, 기저귀, 프로틴가루, 그리고 매일 우리 아침 식량이 될 오트밀과 우유, 그릭요거트까지. 한국에서 먹던 방식 그대로 먹으려다 보니 자연스레 수입품(우리나라에서 수입된)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가격대가 훌쩍 올라갔다.
장보기 체감상 그렇게 싸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태국에서 물티슈를 쓰는 내내 한국 물티슈가 너무 그리웠다.
한 장씩 쑥쑥 뽑히지 않는 태국 물티슈라니. 두세 개가 뭉텅이로 나온다. 급하게 아기 응가라도 닦으려고 치면 답답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것까지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탑스 마트 옆에는 거대한 지붕 아래 펼쳐진 거대한 과일시장이 있었다.
줄지어진 과일들 중 먹고 싶은 과일을 한 무더기씩 산다. 망고, 망고스틴, 이름 모를 여러 가지 과일들을 경험해보기 위해 이것저것 구매했다. 껍질을 정성스럽게 발라놓은 두리안까지.
한 무더기를 사도 한국 돈으로 오천 원을 넘지 않는다. '매일 과일만 먹어도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주일 후부터는 과일을 잘 먹지 않게 되었다. 일주일 동안 지나치게 먹인 탓인지 아이들은 망고조차 먹으려 하지 않았다. 하하.)
집에 돌아와 과일 파티를 열었다.
태국에 와본 적 있는 남편이 야심차게 과일 껍질을 손으로 깐다. 아이들 입에도, 내 입에도 가장 맛있었던 것은 망고스틴이었다. 이후 과일시장에 갈 때마다 스무 개씩 손에 들고 왔다.
난생처음 먹어본 두리안. 방구 냄새는 심했지만 맛은 아이스크림 같았다.
딸내미가 한 마디를 던졌다.
"생각보다 맛있네."
그리고 두리안은 다시 사먹지 않았다.
어떤 경험들은 그렇다. 한 번이면 충분한. 하지만 그 한 번이 주는 신선함과 놀라움은, 여행이 선사하는 가장 소중한 선물 중 하나다.24일, 아이 넷과 보낸 여름
그랩을 타고 근처 정형외과로 향했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랩 운전기사가 대신 전화를 걸어준 결과는 . "예약제입니다. 예약 없이는 진료가 불가합니다."
운전기사의 배려로 근처 병원 응급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접수를 마치고 의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일주일 전 찢어진 이마를 꿰맸고, 한국 의사가 8월 4일에 실밥을 풀어야 한다고 했다고.
간호사와 의사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의료용 글루는 생각보다 완고했다. 절반의 실밥만 겨우 제거할 수 있었다. 막내는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고, 의사는 다음에 다시 마취를 하고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마취라니. 금식부터 시작해서 마취가 깰 때까지 기다리면 6시간은 족히 걸릴 일이었다. 한국 의사는 분명 "금방 끝난다"고 했는데...
한국 병원에 급히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자, 다행히 해답이 나왔다. "따뜻한 물에 거즈를 적셔서 올려두면 글루가 불어서 잘 떨어질 거예요."
결국 이틀 동안 집에서 거즈에 물을 적셔 올려두고, 응급실 의사가 추천한 방콕 병원으로 다시 가기로 했다.
응급실에서 이미 지쳐버렸지만, 이왕 나온 김에 올드타운의 사원 하나는 보고 가자 싶었다.
왓프라싱, 14세기 불교사원. 솔직히 불교 사원에 딱히 관심이 있는 건 아니라서 살짝 걸어다니며 사진 몇 장만 찍었다.
화장실은 20바트(약 860원) 기부가 원칙이었다. 어떤 이들은 무시하고 그냥 사용하기도 했는데, 지켜보는 직원이 한 명 있긴 하지만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지는 않았다.
점심은 태국 식당으로 향했다. 유튜브에서 본 카오소이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똠양꿍, 카오소이, 망고스티키라이스. 인원수가 많을 때의 장점은 이런 것이다. 여러 가지 음식을 모두 시켜서 맛볼 수 있다는 것.
아이들은 망고스티키라이스와 카오소이에 집중했다. 카오소이는 달짝지근하면서 칼칼한 태국식 코코넛 카레라면인데, 위에는 바삭한 계란면이 튀겨져 올라가 있고 아래에는 일반 면이 국물에 들어있어서 재미있는 식감을 만들어냈다.
똠양꿍은 칼칼했지만 토마토와 라임 맛이 강해서 한 수저는 맛있었지만 더 먹고 싶지는 않았다. 생강을 큰 조각으로 넣어서 한 수저 크게 입에 넣었다가 생강을 씹는 바람에... 얼굴이 확 찌푸려졌다.
망고스티키라이스는 밥을 코코넛 밀크와 설탕을 섞어서 지었는지 달짝지근하고 부드러웠다. 그 위에 코코넛 맛 나는 연유까지 뿌린 맛이었는데, 망고와 함께 먹으니 달콤하면서도 배부른 디저트가 되었다.
맛있게 점심을 헤치우고 주변을 한 바퀴 돌다가 베이커리를 찾았다. '베이커리'라고 적힌 카페에 들어갔는데, 베이커리라기보다는 브런치를 함께 파는 식당이었다.
와플과 망고플레이트를 시켰고, 나는 녹차오렌지주스를 주문했다. 태국에는 한국에서 먹어볼 수 없는 신기한 음료들이 정말 많다. 다 먹어보려면 1일 1카페를 해야 할 수준이다.
디저트까지 해치우고 물 한 보따리를 사서 그랩으로 집에 돌아왔다.
저녁시간, 아이들을 다 재우고 나 혼자 그랩을 타고 쇼핑을 나섰다.
필요한 물건들을 장보고 시장에서 과일도 사고, 야시장을 구경했다. 야시장에는 옷도 팔고 음식도 팔았지만, 다음에 나이트바자에 가서 제대로 구매하기 위해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과일만큼은 예외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망고와 망고스틴, 용과, 바나나를 한 봉지 가득 샀는데 고작 178바트(약 8,000원)였다.
실밥을 제대로 풀지도 못한 하루였지만, 치앙마이는 그 나름의 위로를 건네주었다. 때로는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는 여행이 더 특별한 기억이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