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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서의 24일, 아이 넷과 보낸 여름4

7-9일차 아누산 야시장부터 왓파랏 트래킹까지, 가족여행의 진짜 재미

by 마마규

7일차 - 아누산 야시장에서의 특별한 하루

오전은 평온했다. 아기들이 낮잠을 자는 동안 큰아이들과 클럽하우스 수영장으로 향했다. 아직 사람들이 많지 않은 시간이라 여유롭게 수영을 즐기며 산책 겸 다녀올 수 있었다.

오후엔 기다리던 Anusarn Market 으로! 태국 야시장들은 어디를 가든 파는 물건이나 음식이 비슷비슷하다. 중요한 건 어떤 야시장이냐가 아니라, 그 순간을 얼마나 즐기느냐인 것 같다.

곳곳에서 작은 공연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태국 전통 공연부터 팝 뮤직 버스킹까지 -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우리 가족의 저녁 메뉴는 포크립, 파인애플 볶음밥, 닭꼬치와 소세지꼬치. 그리고 망고주스와 바나나주스로 마무리.

태국 생과일 주스의 가장 큰 장점은 설탕을 넣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 그대로의 단맛이라 아기들에게도 안심하고 줄 수 있어서 좋았다.

아이들에게 100바트씩 용돈을 주며 "사고 싶은 걸 골라봐"라고 했다. 둘째는 역시 나를 닮아 결정이 빠르다. 자동차 퍼즐을 바로 집어 들었다. 반면 딸은 아빠를 닮아서인지 한참을 고민하더니 미니 장식품 세 개를 골랐다.

나도 여행용 파우치 지갑을 하나 장만했다. 가죽지갑이 탐났지만 동물들을 생각해 참았다. 손목시계도 눈에 띄었는데 너무 화려한 디자인뿐이어서 포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아누산 마켓은 모든 구역에 지붕이 있어서 비를 피해 계속 구경할 수 있었다. 마지막엔 아이스크림 롤로 달콤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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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차 - 일상의 필요들을 채우는 하루

오늘은 현실적인 용무들을 처리하는 날이었다. 대형마트로 출발!

둘째 머리가 너무 길어져서 눈을 찌르게 되어 바버샵에 갔다. 2000바트를 주고 세련된 헤어컷을 받았는데, 보니까 내가 초등학교 때 유행하던 스타일이었다. 앞머리만 뾰족하게 염색하면 2000년대 초반 초딩 남자아이 머리 완성이겠더라.

첫째는 가져온 신발이 작아져서 신발 쇼핑. 브랜드 중고 신발을 깨끗하게 세탁해서 파는 곳이 있었다. 나이키 운동화를 350바트(약 13000원정도)에 득템! 막내는 신발 한 짝을 잃어버려서 크록스를 샀는데... 너무 컸다. 실패.

과일 시장에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망고, 망고스틴, 바나나, 수박을 왕창 샀다. 우리 아기들은 특히 용과를 좋아하는데, 빨간 용과는 온 얼굴과 옷을 다 더럽혀서 하얀 용과로 선택했다. 세 봉지 가득 사도 135바트, 우리 돈으로 5천 원밖에 안 된다. 정말 과일만 먹어도 살 수 있는 나라구나.

두 번째 방문한 베트남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베트남 음식은 속도 편하고 야채도 많이 먹을 수 있어서 가족 여행에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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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렌트카 결정!

고민 끝에 자동차를 렌트하기로 했다. 수영장만 가려고 해도 20분을 걸어야 하는데, 이 날씨에... 그랩을 불러도 10-20분씩 기다려야 하고.

에어비엔비 호스트에게 추천받은 렌트카 업체는 일반 업체보다 20만 원가량 저렴했다. 거기다 운전자 추가, 카시트까지 무료. 이건 진짜 개꿀이었다.


9일차 - 아침부터 시작된 가족 샌드위치 만들기

아침 일찍 오트밀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온 가족이 참여하는 샌드위치 만들기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에게 자기가 먹고 싶은 재료로 직접 만들어보라고 했더니, 각자의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첫째는 빵과 마요네즈, 양상추, 오이, 토마토만 넣고 "야채 샌드위치"라며 뿌듯해했고, 둘째는 빵과 치즈, 오이, 계란만으로 심플하게 완성했다. 나와 남편 것은 내가 만들었는데, 계란, 오이, 양상추, 토마토를 넣어 든든하게 준비했다.

간식까지 챙겨서 왓파랏까지 40분간 드라이브 시작!


트래킹 입구에 도착하니 차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었다. 빈자리를 찾아 주차하고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한국 산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바닥은 진흙탕에 축축하고, 예상대로 모기가 많았다. (뭐, 모기는 한국에도 많으니까) 한국에서 가져온 아기용 모기 스프레이로는 역부족이었다. 모기들이 요가바지를 뚫고 물어뜯는 통에 결국 태국에서 산 모기용 로션을 온몸에 덕지덕지 발라야 했다. 그제서야 모기들이 다가오지 않았다.

다행히 아침이라 기온이 낮았고, 등산로가 그늘져서 좋았다. 너무 가파르지 않은 완만한 코스라 아이들도 무리 없이 따라올 수 있었다.


1시간 30분 정도 걸어 왓파랏 사찰에 도착했다. 불상 앞에 앉아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불교도가 아니지만, 사랑하는 신에게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게 맞는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뭔지 모르게 절은 언제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어느 종교시설이든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인간보다 더 높은 존재를 경외하기 위해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공간이라 그런 걸까?

폭포도 구경하고 가족사진도 찍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배가 고파 샌드위치를 먹을 장소를 찾았는데, 사찰 안에서는 아무도 음식을 먹고 있지 않았다. 특별한 금지 표시는 없었지만, 한국처럼 등산 갈 때 도시락을 싸 오는 문화는 아닌 것 같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등산 갈 때 간식과 밥을 싸서 올라가는 게 자연스러운데, 어느 누구도 우리처럼 도시락을 싸 오지 않은 것 같아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사찰 탐방을 마치고 내려가는 길에 가족이 함께 앉아 샌드위치를 먹었다. 간단하지만 맛있었다.

쌍둥이들은 아기띠에 매여 있는데 많이 덥고 힘들어 보였다. 땀도 많이 흘리고 보채기도 했다. 다행히 내 체력은 좋아졌는지 3시간 정도 왕복 등산을 해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등에 업힌 아기가 더 힘들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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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을 마치고 근처 마야몰에 주차한 후 미슐랭 추천받은 'GINGER FARM kitchen'으로 향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카오소이와 튀긴 돼지고기, 파파야 샐러드, 카레 등을 주문했는데, 뜻밖에도 카레가 제일 맛있었다. 대체로 다른 식당보다 매운 편이었지만, 그 깊은 맛이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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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님만해민도 구경했다. 하지만 다른 여느 관광지와 별다를 게 없었다. 태국 고유의 색깔보다는 서양 관광지의 모습을 그대로 가져다 꾸며놓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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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야시장 쪽이 훨씬 더 재미있고 매력적이었다. 현지의 진짜 문화와 사람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곳 말이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집으로 돌아와 쉬었다. 오늘 하루도 가족과 함께한 소중한 시간들로 가득했다.


여행에서 가장 값진 건, 예상치 못한 순간들에서 느끼는 작은 감동들이다. 사찰에서의 조용한 성찰, 아이들과 함께 만든 샌드위치의 맛, 그리고 가족이 함께 걸은 트래킹 코스의 모든 발걸음이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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