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계엄사태와 악의 평범성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저녁 11시경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로부터 약 3시간 동안 경찰은 국회의원의 입회를 차단하고 군병력이 국회 침입을 시도했다.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잘못이야 자명한 것이고 지시를 받아 작전을 수행한 경찰, 군 사령관들도 죄가 있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
경찰과 군인의 직업이 상명하복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방부장관이 지침 전달 중 불응 시 항명죄라는 언급을 했다고 하니 명령 불복종으로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국회 긴급현안 질의에서 이러한 고뇌가 느껴지기도 했다.
같은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타당할까?
과거에 이를 심도 있게 고민하고 기준을 제시한 사례가 있다.
악의 평범성은 1963년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저서에 제시한 개념이다. 아이히만은 나치에서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인물 중 하나이지만, 재판에서 자신의 행위는 그저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변론했다. 본인이 효율적으로 유대인의 추방, 수송, 학살을 관리한 것은 지시에 따라야 하는 공무원이기 때문이고 직접적인 의지가 아니기 때문에 본인은 무죄라는 것이다.
아렌트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상부의 명령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모르며, 심지어 현실을 마주보아야 한다는 생각자체가 없다고 보고 있다. 명령을 받았다고 하여 아무런 생각 없이 시키는데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인정해준다면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 리 없다. 우리에게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본인에게 주어지는 지시와 명령이 무엇인지 충분히 사유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악은 악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하는 무사유에서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명제는 악인이기 때문에 악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공감하지 않고 무사유로 있는 상태에서는 우리도 자칫하면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밀그램은 권위와 인간관계에 대한 실험을 했다. 먼저 실험의 목적을 ‘처벌의 강도가 학습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실험으로 피실험자들을 속인다. 실험에서 피실험자는 선생의 역할, 학생은 일반인으로 위장한 조교들이 역할을 수행한다. 선생은 학생에게 외워야 할 단어를 알려준 후 제대로 못하면 전기쇼크를 주는 버튼을 누르게 한다.
학생역할을 하는 조교들은 계획된 대로 틀린 답을 계속 이야기하고 선생은 전기충격을 준다. 틀릴수록 전기충격은 75볼트, 150볼트, 300볼트로 점점 강해진다. 물론 실제로 충격을 주는 것은 아니며 조교들이 연기를 하는 것이고 선생인 피실험자들은 그들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실험을 계속한다.
피실험자들은 점점 강하게 나오는 고통의 소리에 실험을 계속하기를 망설인다. 이때 옆에 있던 연구자가 말한다. “괜찮아요, 당신은 실험에서 선생역할을 하는 것 뿐입니다. 당신은 아무 책임도 없어요.” 넌지시 연구를 계속할 것을 종용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놀랍게도 실험에 참여한 인원 40명 모두가 300볼트의 전기충격까지 버튼을 눌렀고 63%의 인원이 실험 최고치인 450볼트의 전기충격을 주었다.
(Reference : https://blog.naver.com/healing2010/220410250636)
권위에 복종하게 되면 쉽게 타인의 입장을 무사유하는 상태가 될 수 있다. 또한 무사유 상태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에 둔감한 악인이 될 수 있다는 아렌트의 주장이 실험으로 확인된 것이다.
2.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악의 평범성
가습기 살균제사건은 1994년부터 2021년까지 20년이 넘게 펼처진 비극이다. 가습기 살균제는 가습기를 통해 공기 중으로 분무되도록 만들어진 생활용품으로 정부인증을 받고 판매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10여년간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의 주요성분 중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인산을 호흡기로 흡입하는 경우 폐섬유화를 유발할 수 있는 유독성 제품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제품을 처음 개발한 회사에서부터 카피, PB제품을 만드는 회사들까지 ‘무해성’을 강조했다. 일부 회사는‘아이와 함께 사용할 수 있다’는 식의 마케팅도 진행하여 어린이들 특히 심각한 피해를 받았다.
피해 규모는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렵지만 사망자 1,700명 이상, 부상자는 5,900며 이상이다. 노출된 인원은 890만명이 넘는다고 하니 누적된 피해로 인한 후유증으로 피해자는 계속하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제품이 어떻게 출시될 수 있었을까? 개발 회사에서는 빠른 출시와 비용절감을 위하여 QA, 마케팅 검토단계에서 안정성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생략했다.
2000년~2010년 대에는 소비자 클레임 및 피해 사례가 관찰되면서 점차 피해가 공론화되었다. 이 시점부터 회사들은 내부 실험을 통하여 제품의 유해성을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5년까지 내부적으로 유해성을 확인한 연구결과를 은폐하고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며 제품을 계속해서 생산, 판매했다. 심지어 외부 기관의 연구 결과를 조작하기 위하여 금품 및 향응을 제공하고 조직적으로 증거인멸, 은닉행위까지 강행한다. 피해가 명백히 드러난 이후에도 기업의 이익을 위하여 제품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법적,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는 행태를 보인다.
현재 2024년까지도 해당 제조회사와 개발회사의 일부는 유죄로 확정이 되었으며 일부는 아직 재판으로 다툼이 진행 중이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이 사건에서도 악의 평범성의 요소들이 확인된다. 제품의 개발과 검증을 업으로 삼는 사람임에도 직업윤리를 무시하고 회사의 명령에 따라 품질 검증을 원칙대로 진행하지 않는다. 회사의 빠른 출시 명령에 따라 관료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유추해보건데 아마 이행과정에서 직원 개개인은 문제를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조직차원에서 비판적인 태도를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분위기에 침묵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본인의 책임을 합리화하면서 마치 전기 충격을 주는 버튼을 누른 것처럼 무심하게 검증을 진행했을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에 따르면 업무상 법적 책임자가 아니더라도 무비판적으로 역할를 수행한 경영진, 직원, 유관 정부기관에도 귀책이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3. 개인윤리와 조직윤리의 차이점
개인윤리는 본인의 도덕적 가치에 의하여 결정을 하고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직관적이다.
그러나 조직윤리는 조직의 가치, 절차, 문화가 스며들어 개인들의 책임을 희석하는 특성이 있다.
우리가 서로 간 견제하지 않고 전체주의에 빠져 무조건적 업무 수행을 한다면 우리는 사회에 크나큰 해를 끼치는 악이 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회사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얻은 이익으로 실현하고 싶은 가치를 도출해야 한다.
이 가치를 통하여 우리에게 하는 명령, 지시가 불법적, 비윤리적인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하고 구성원에게 교육해야 한다. 사건에 대하여 적법성과 윤리성을 검토하는 공식적인 기구와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비판적 사고를 통하여 거부나 피드백을 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다행히도 최근 기업들은 관료주의를 벗어나 기업의 윤리성, 수평적 문화, 솔직하게 피드백을 나누는 문화 등을 트렌드로 잡고 있다. 그러나 그 본질을 살피지 않고 말로만 이상을 외치는 경우 동일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수평적 문화와 솔직한 피드백은 회사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평범한 악인이 되지 않도록 해주는 하나의 방어막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우리가 악인이 아니라고 믿기 보다는 우리도 언제든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 권위주의 속에서 나에게 다른 사람을 해하는 지시가 내려온 순간, 쉽지 않겠지만 과거를 돌이켜보고 내가 행동해야 할 바를 잘 사유해야 한다.
계엄 발령 후 사령관들은 무사유의 상태에서 명령을 이행한 이들도 있지만 계엄에 투입된 군인들은 명령상황에서도 작전이 국회를 탄압하는 것임을 알게 된 순간,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방어적인 대응으로 충돌을 최소화하려고 했으며 어떤 군인은 철수 중 시민들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소수의 어떤 이들은 군인으로서 명령과 지시를 철저하게 이행 못하고 사과를 한 것에 대하여 전시상황을 빗대어 비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악의 평범성의 기준에서 생각해본다면 투입된 군인들은 국민을 수호한다는 원칙을 최우선으로 삼으며 부당한 명령과 지시를 비판적으로 사유한 사람들이다. 나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만들지 사유하고 본인들에게 주어질지도 모를 불이익까지도 받아들이려고 노력한 이들에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