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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Feb 18. 2023

"엄마, 죽지 마"

  코로나 시국으로 전 국민 예방접종이 시행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우리 어머니를 담당하는 가족 요양보호사 일을 하기 때문에 의료 관련 계통 종사자로 1차 예방접종 접종 대상자였다.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이나 고령자, 의료인, 의료 관련 계통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우선 예방접종 대상이었다. 나는 우리 어머니를 가족 요양하고 있는 담당 요양보호사이며 늦은 나이에 간호사가 되기 위해 간호대학에 입학한 늦깎이 학생이기도 하다.


  다음 주부터 내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의 중간고사 시험기간이다. 시험공부도 해야 하는데 혹시 코로나 예방주사 맞고 부작용이 나서 크게 아프거나 컨디션이 나빠질까 봐 조금 걱정이 되어서 주사를 맞아야 할지 말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만약에 연기를 하게 되면 언제 맞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병원의 안내 전화에 예약일에 그냥 예방주사를 맞기로 했다. 접종 당일은 가급적 무리한 활동을 하지 말라고 주의 사항을 전해 듣고 도서관을 가지 않고 차를 몰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오늘 시험공부는 집어치우고 컨디션 유지를 위해 평소보다 저녁 일찍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1시경에 나도 모르게 눈이 저절로 떠졌다. 다시 잠을 청하면서 이래 저래 뒤척이고 누워있는데 이 시간에 어머니가 깨어 있는지 방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는 당뇨와 치매를 앓고 있으신데 가끔 새벽에 주무시다 일어나서 갑자기 장롱에서 옷을 다 끄집어내서 정리한답시고 방을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경우도 있고, 옷장 서랍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혼자서 의미 없이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어서 혹시 혼자서 옷장 놀이하고 있는가 싶어서 어머니 방에서 들리는 소리를 조용히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10여분이 지났는데 아무래도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어머니 방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방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두 팔과 양다리는 뻣뻣하게 강직이 와서 X자 모양으로 교차하고 있었다. 의식도 온전하지 않고 온몸은 저체온이라 생각이 들 정도로 싸늘했다. 순간 놀라기도 했지만 이대로 돌아가시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엄마, 정신 차려.”하면서 어머니를 힘껏 불렀다. 아직 동공상태는 괜찮지만 의식이 없는 듯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눈동자만 희번덕였다. 이렇게 허무하게 어머니를 저 세상으로 보낼까 봐 겁도 났다. “엄마, 죽지 마. 엄마 죽으면 안 돼”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렀다. 남편을 불러서 깨웠다. 지금 빨리 주스를 한 컵 가져오라고 시켰다. 의식이 없어서 그런지 아예 주스를 입으로 넘길 수가 없어서 그대로 흘러내렸다. 의식도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먹이다가 오히려 흡인으로 인해 질식하거나 더 큰 부작용이 생길 것 같았다. 얼른 119에 전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로 119 구급대원이 혈당을 재어 봐 달라고 했다. 혈당을 측정했는데 36으로 나왔다. 심각한 저혈당이 온 것이다. 다행히 전화 통화 후 얼마되지 않아 구급대원이 집으로 왔다. 어머니는 근처의 병원으로 들것에 실어서 이송됐고, 남편도 구급차를 따라서 함께 병원을 향해 출발했다. 나는 집에서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다.


  어머니는 응급 처방으로 포도당 수액을 맞고 다행히 의식을 회복하셨다. 그리고 두어 시간 지나서 남편과 함께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서야 나는 안심이 되었고 긴장이 일순간에 풀렸다. 내가 만약 그때 어머니 방을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아침에 어머니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어머니가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난 후였을 것이다.


   흔히 우리는 당뇨가 있다고 하면 고혈당을 염려한다. 나 역시 고혈당이 무서운 질환인 줄 알았는데 저혈당도 조심해야 한다. 저혈당이라고 말하는 수치는 공복에 혈당을 측정했을 때 70 이하를 저혈당이라고 하는데 저혈당의 초기 증상은 허기짐, 식은땀, 사지의 떨림, 무기력, 의식 저하가 있으며 저혈당 증상이 아주 심하게 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무서운 질환임을 알고 혹시나 평소보다 식사량이 적거나 입맛이 없어서 식사를 잘 못하는 경우에는 저혈당에 빠질 위험이 매우 높아지므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근래에 어머니가 입맛이 없다고 하시고 식사량도 평소보다 줄었다. 이럴 때 좋아하는 간식이라도 조금 더 낫게 챙겨드려야 했는데 '자녀들로부터 관심을 받으려고 흔히 하는 밥투정' 정도로 생각했던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주위에 당뇨를 앓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고혈당도 위험하지만 저혈당도 매우 위험한 상황이므로 항상 주머니에 사탕이나 각설탕 또는 요구르트 등 신속하게 당분을 보충할 수 있는 간단한 간식을 챙기고 다니는 것이 중요하겠다.


  다시 한번 생각해도 그날의 기억은 아찔하다. 하마터면 어머니를 여읠 뻔했다. 다행히 죽음의 문턱에서 가족에게 발견이 되어서 살아계시지만 한 번 충격을 입은 뇌는 되돌릴 수가 없다. 어머니의 치매 진행 속도가 더 빨라졌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이번에 어머니의 저혈당 사건으로 어머니는 이전보다 치매 증상이 더 심해졌고 의식이 흐리멍덩 해 졌다. 한바탕 야단법석을 벌이고 나서 이 일을 계기로 우리 가족은 항상 저녁에 잠들기 전, 또는 중간중간에 수시로 어머니 주무시는 모습을 확인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노인주간 돌봄을 다니고 계시는데 그곳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에 식사량이 어떤지 꼭 물어보고 확인해서 적게 드신 날은 다른 간식을 드시게 해서 식사량이 평소와 비슷하도록 유지해서 저혈당에 빠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게 되었다.


  어느 부모와 자식인들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오래도록 함께 의지하면서 행복하게 함께 살면 좋겠는데, 자식이 효도하기 기다려 주는 부모 없다고 세월이 야속하고 효도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남들은 "며느리가 그만하면 됐지, 잘하고 있다."라고 위로의 말을 해 주지만 부족하고 잘 대해주지 못해서 가슴 한편으로는 내도록 미안함 뿐이다. 10년을 넘게 함께 생활하면서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겠지' 하는 마음에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지만 오늘은 용기 내서 사랑한다고 말을 해야겠다. "사랑해요,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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