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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MJ Apr 29. 2024

세번째퇴사,감옥을 맛보다 #9

개발자 포기 후 1년6개월의 공백기, 30곳이 넘는 면접과 6번의 도망

같이 일하는 매니저님께 말했다.

대표님과 회식할 때마다 우울증 걸릴 것 같아요.



첫번째 회식 

대표님과 팀장님과 술자리를 가졌다. 대표님은 치킨 기프티콘을 보내시면서 남동생한테 치킨을 시켜주라고 했다. 잘 먹겠다고 했다. 대표님은 넌 먹지말고 남동생이 치킨 먹고 있는 사진을 인증샷으로 찍어 보내라고 했다.

" 팀장님한테는 팬티를 선물해줬는데 그걸 인증샷으로 찍어보내더라? 더러워서 그건 안봤어 "

순간 장난이지 싶었다. 이건 성희롱이 아닌가? 내가 여기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하지? 정색하면 분위기가 안좋아질텐데. 팀장님도 속으로 많이 불편해하시고 있겠지? 아무렇지 않은척 유머스럽게 받아쳐야겠다

" 팬티는 무슨 색깔 이였나요 ? ㅋㅋ "

나름 난 내 답에 뿌듯했다. 당사자도, 분위기도 불편해지지 않게하는  유머스러운 농담.

하지만 대표님은 내 예상보다 더 또라이였다.

" 와~ 너 진짜 무서운애구나. 그냥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면 되는데 거기서 뻔뻔하게 그런 말로 받아쳐? 너 좀 힘들게 살았나보구나. 바로 그런 농담이 나온거보면. 가난하게 살았어? "


사실 힘들게 살았던 것도 맞고 가난하게 살았던 것도 많다. 나또한 그런 짬밥에서 나온 유머였으니까.

팀장님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민망해하지도, 얼굴이 빨개지지도. 난 정말 물어보고 싶었다.

대표님이 팬티를 선물해준게 맞냐며. 장난이라 믿고 싶었다. 장난일 수도 있다.

도라에몽 사각팬티일 수도 있지.


그날 난 집에와서 치킨을 시켜 동생에게 먹고 있는 사진을 찍어야된다고 했다. 엄마와 동생은 대표님이 말은 그렇게하시지만 나름 그 사람만의 챙겨주는 방식이니 좋게 생각하자고 했다.


두번째 회식

대표님께서 팀 회식을 하자고 했다. 이번엔 타부서 팀장님과 넷이서 술을 마시게되었다.

그 회식자리에서 남동생 치킨 인증샷은 놀림감이 되었다. 계속되는 막말과 놀림 속에서 나는 계속 웃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대표님이 팀장님께 물었다. "MJ 일 잘해요? MJ 좋은 점 말해봐요 "

" 잘 웃어서 좋습니다. "

" 일 잘한다는 소리는 아직 안나오네 ? 너 뽑아서 다행이다라는 소리 나올 때 광어회사줄께 "

나는 또 웃으며 열심히 하겠습니다.

" 지금보면 웃고 있는게 진짜 재밌어서 웃는건지, 가식적으로 웃는 것인지 구분이 안가~ "

" 아, 제가 무표정으로 있으면 차가워보인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웃는게 좀 습관이 된 것 같습니다. "

"  그 말은 가식적으로 웃는다는거잖아. 가식쟁이 맞네~~ 이제 이름을 가식이라고 바꾸자"


내가 살아온 방식이,  윗사람에 눈에 띄지않으려, 예쁘게만 보이려 했던 노력들이 가식과 가난으로 비춰질 수 있겠구나. 어쩌면 들통이 난걸지도? 아니. 근데. 모른척해줄 수 있잖아요.


.

.

.

대표님은 회사에서 매출을 내는 직원이 아니면 사람으로 안보는 경향, 계속 의심하는 경향이 있었다.

마케팅, 영업, 전략기획은 매출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나마 덜 관여하는 편이지만 우리 부서와 경영 쪽은 회사에서 매출을 담당하는 부서가 아니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에도 용납을 하지 않는 편이였다.

급기야는 업무를 시작할 때 '업무시작 버튼'을 누르고, 끝날 때 '업무 끝 버튼'을 누르면 시간이 기록되는  버튼을 만들었다. 바쁘게 작업하다보면 버튼 누르는 것을 깜박할 때도 있었고, 또 버튼을 누르고 나서는 팀장도, 다른 동료도 업무지원을 요청할 수 없게 만드는 정말 비효율적인 시스템이였다.

경영 부서에는 실수 노트를 도입했다. 10원이라도 오차가 날 경우 실수 노트를 만들어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했다. 실수 노트에 부담감을 느낀 직원분은 퇴사하게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제일 힘들었던 것은 비효율적인 눈에 보이기 위한 야근 방식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대표님이 7시에 퇴근을 해야 일한다고 인정해주기 때문에 팀장은 적어도 7시까지는하고 퇴근을 하라고 하셨다.  한달은 빠르면 6시 30분, 늦으면 7시까지하고 퇴근을 했다.

나는 그것도 야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타부서 팀장님의 생각은 달랐다. MJ씨가 요즘 MZ처럼 야근을 싫어하는 사람인 것 같다고 팀장님께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팀장님과 술을 마시며 '야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너는 몇시까지 일하는게 야근이라고 생각하니 "

" 6시가 퇴근이면 7시까지 하는 것도 야근아닌가요? "

" 타부서 팀장님이 말씀하시는 야근은 적어도 밤 9시까지는 하고 가는거야 "

" 그럼 저녁은 언제먹어요? "

" 저녁은 언제 먹어야된다고 생각하는데? "

" 밤9시까지 야근하면 저녁6시-7시...? "

" 밤 11시 넘어서 야근한다면 식대는 줘 "

" 에??? "

" 근데 전 야근을 해야하는 업무도 아니잖아요. "

" 유도리있게 알아서 해야지 "


이미 타부서 직원들은 저녁도 안먹고 밤8시, 9시까지 연장근무를 하고 있는 중이였다. 하지만 그분들은 정말 일에 치이고 치여서 야근이 필수였다. 하지만 우리 부서는 야근이 필요한 업무는 아니였다.

그러고보니 우리 부서 팀장님들도 근무시간에는 일을 하지 않다가, 퇴근시간이 되면 일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아, 다들 이렇게해서 살아남으셨구나..


한달은 눈에 보이는 야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녁을 안먹고 한두시간 연장해서 근무하는 것은 고욕이였다. 어쩌다 7시에 퇴근하면 지하철에서 웃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과연 여기서 오래버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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