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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건네준 크림빵

트럭 짐칸 위로 고무대야와 이불 보따리가 실려 있었다.

by 도로미

1981년 가을 즈음,

나는 목포에서의 10년을 마무리하고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필요한 살림살이만 트럭에 싣고,

아버지는 조수석에, 엄마와 우리 삼남매는 그 뒤에 앉았다.

이삿짐 옮기며 갓바를 고쳐 매시던 아버지의 표정,


이제는 알 것 같다.

삶의 터전을 바꾸면서까지 가족의 생계를 지켜야 했던

그 비장한 마음을.


트럭이 출발하려는 순간,

엄마는 기사님께 잠깐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급히 내리시더니

자전거를 타고 오신 외할아버지를 마주하셨다.


잠시 후 돌아온 엄마의 눈가는 촉촉했고,

손에는 누런 봉투가 들려 있었다.

커서 들은 이야기지만,

그날 외할아버지는 쌈지돈을 엄마에게 건네고는

뒤도 안 돌아본 채 급히 돌아섰다고 하셨다.


그 모습을 지켜 본 엄마의 마음이

지금 아버지의 부재로 아파하는 내 마음과 닮아 있었으리라.


서울 강동구 천호동, 단칸방.

우리 가족의 새로운 보금자리.

아버지는 잠실주공 관리사무소에 취업하셨고,

엄마는 아버지의 박봉 월급을 보태려

인형공장에 다니기 시작하셨다.


야근이 잦았던 엄마의 공장 생활.

어린 나와 동생들은 밤마다 눈을 비비며 엄마를 기다렸다.

그날 엄마가 가져오시는 우유와 크림빵을 먹기 위해서.


그때 그 포장지가 선명하다.

삼립 크림빵—보드라운 크림빵 사이에 하얀 크림이 박혀 있던...


숫자가 적어 엄마는 자지 않고

기다리는 아이에게만 몰래 주곤 하셨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그 크림빵과 우유가 엄마의 입이 아닌 아이들 손에 먼저 가는 이유를.


“야근 특식으로 주는 크림빵과 우유 그냥 드시지!

엄마, 그때 왜 안 드시고 가져왔어?”


“니들이 눈 비비면서 기다리는 거 뻔히 아는데

그게 내 입으로 들어가겠니?


그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느 날, 이마트에서 장을 보다

그때 그 삼립 크림빵을 발견했다.

무심코 손에 들고, 그 시절이 떠올랐다.

크림빵을 장바구니에 넣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크림빵 사이에 발라진 크림처럼, 묘하게 부드러워졌다.



� 작가의 말

“누군가의 우유 한 모금, 크림빵 한 조각이

한 가족의 기억이 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날의 따뜻한 밤, 엄마의 마음을 꺼내봅니다.”


크림빵.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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