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낸 오늘!

by 도로미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극 중 뱀파이어는 이렇게 말한다.
“영겁의 시간은 고통이라고.”


살아올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아진 지금
나는 간밤에 속절없이 떨어져
아스팔트 위에 알알이 박혀버린
벚꽃 양탄자를 지나가며
오늘을 마무리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날이 더 많아졌고
아름다웠고 즐거웠으며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이
겹겹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후회스러움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
그 사실이 문득 고맙게 느껴진다.


전쟁통에 태어나지 않음을 감사하고
보릿고개에 피죽을 먹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어릴 적 고무줄 놀이에 날이 저문 줄도 몰랐던
아날로그 시대를 살았음에 감사한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삐삐, 시티폰, 인터넷, 그리고 인공지능까지…
얼마나 더 많은 변화를 겪어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좁아터진 내 머리는 이미 과부하 된 지 오래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어릴 적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떠올려본다.


한때는 영원히 사는 삶이 부러웠던 적도 있었다.
늙지도, 아프지도 않은 시간을 살수 있다면
사람의 피를 먹는 뱀파이어의 숙명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때 내가 보았던
절망에 빠진 뱀파이어의 눈빛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지나온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비에 젖어 바닥에 달라붙은 벚꽃 잎을 즈려 밟으며
고개를 들어보면
여전히 탐스럽게 피어난 벚꽃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앞으로 몇 번의 봄을 더 볼 수 있을까.


그 생각 끝에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오늘, 참 잘 지냈다.

그리고 조용히
내일의 나에게 말을 건넨다.


내일의 나도
오늘처럼 잘 살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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