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묻는다

젊음이란 무엇인가..

by 도로미

이십 대 때 본 영화가 떠오른다.

1992년 개봉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죽어야 사는 여자(Death Becomes Her>라는 영화다.

그 영화에는 메릴 스트립과 골디 혼, 두 여배우가 나온다.

아름다움과 젊음을 영원히 유지하려는 집착으로

불사의 묘약을 마신 두 여성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몸은 썩어가고, 마음은 병들어간다.

코믹하게 그려졌지만,

그때 그 영화를 보며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젊음은 언젠가 반드시 끝나며, 그 끝을 받아들이는 일은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오늘, 아침 출근길에 거울을 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죽어야 사는 여자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면 그냥 한숨이 나온다.

눈밑이 꺼지고 입가는 팔자 주름이 깊어진다.

피부는 칙칙하고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뱃살은 안 빠진다.

'이젠 나도 늙어가는구나' 신세한탄이 절로 나온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1992년 개봉한 죽어야 사는 여자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생각난다.

메릴스트립과 브루스 윌리스, 골디혼이 나온 블랙코미디이다.

이 영화 나오자마자 참 신기하다 싶었다.

그때 내 나이가 겨우 22살이었으니 신기했겠지


죽으라고 서로 미워하는 애증의 친구 그리고 그 사이에 끼인 불쌍한 의사..

그러다 결국 늙고 병듬에 한탄하다

젊어지는 묘약을 마시고 기이 학적으로 젊어진 이야기이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앙숙이었던 메릴과 골디는 서로 복수를 꿈꾸며

결국 서로 죽이지만 죽지도 못한다.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서로 결탁하고

스스로 고쳐가면서 숨어서 사는 신세가 된다.


마지막 장면 때 부르스 장례식장에서 나와 계단에서 싸우다

결국 인형처럼 부서진 두 사람…


그 당시 이 영화를 볼 땐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을까 싶었다.

친구로 만났다가 서로 자존심 세우고 할퀴고 죽이다가

결국은 마네킹처럼 벗겨지고 뒤틀려져서 부서지는 결말이 참 씁쓸하기도 했다.


저렇게 젊어지려고 처절하게 살 바엔

차라리 그냥 자연스럽게 늙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자연스럽게 늙어갸야지 했다.


그 후로 30년이 훨씬 지나 나도 나이가 들다 보니

오늘 아침 내 얼굴을 보면서 혹시 나에게도 젊어지는 약이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정말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조그마한 병이 내 앞에 나타났다.

무지갯빛이 살짝 감도는 그 액체는 아서 날 먹어줘 하는 듯했다.


난 고민이 되었다. 가만히 손으로 들어 그 병을 집었다.

그리고 뚜껑을 열려는 순간 내 안의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을 한다.


“신중하게 잘 생각해야 해 도로미!

이 약을 먹으면 넌 평생 늙지도 않고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어

그렇지만 넌 죽음의 신이 절대 널 찾아오지 않을 테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야 하는 이별을 평생 겪으면서

혼자 살아가야 할 텐데

가능하겠어?”


그 질문을 받는 순간 난 가만히 그 아름다운 병을 잠시 내려놓았다.

내가 평생 아름다워지고 건강해지겠지..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내 자식은 나보다 더 늙을 거고 곧 죽음을 맞이하겠지..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 사라지겠지..

그리고 새로운 것들이 채워지더라도 난 여전히 혼자 쓸쓸해지겠지..

몸은 건강하겠지만 내 영혼은 평생 외로울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자 다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내 얼굴은 여전히 늙어가고 주름도 늘어나겠지만

그 대신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과 같이 늙어가겠구나

그리고 나의 인생은 끝맺음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내가 소중해지는 것을 느끼겠구나..


나는 지금도 젊음을 부러워한다.

고운 피부, 날렵한 턱선, 생기 가득한 눈빛.

하지만 이제는 안다.

늙어간다는 건 후회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것을.

그 안엔 내가 견뎌온 시간의 무게가 있고,

사랑하고 아파했던 순간의 흔적이 있다.

나는 이 주름들 속에서 자부심을 본다.

살아냈다는 흔적, 지금도 살고 있다는 증거.


그런 마음이 들자 내 앞에 있던 오색찬란한 병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난 처음 거울을 보며 자괴감이 들던 마음도 같이 사라졌다.

이제 나는 내 늙어가는 얼굴을 제대로 마주 볼 수 있게 되었다.


“도로미! 너는 지금도 멋있어!

예전 아름다웠던 지난날보다 지금 네가 훨씬 여유로워 보여

그러니 너의 늙음도 사랑해 주자!

우린 정말 멋진 인생을 같이 잘 살아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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