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오래 나와 있으면 한국이 생각날 때가 참 많다. 가족들을 보고 싶을 때도 있고 친구들과 놀고 싶을 때도 있는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제일 그리운 건 역시 한국 음식이다.
한두 번 외국 음식 먹는 거야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그러나 한 달 넘게 한국 음식을 못 먹는다? 그건 거의 고문에 가깝다. 다행스럽게도 캠핑카를 선택하면서 아주 큰 장점이 하나 생겼다. 무슨 말인가 하면, 언제 어디서든 내 마음대로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빌린 캠핑카 안에는 꽤나 쓸만한 주방이 있었다. 불쇼를 일으키며 요리를 할 만큼 큰 가스레인지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전기로 작동하는 인덕션, 설거지하기에 적당한 싱크대, 그 옆에는 이런저런 재료를 놓고도 칼질을 할 수 있을 만한 꽤나 너른 공간도 있었다.
당시 여자 친구는 현지의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요리를 하겠다는 커다란 포부를 품고 있었는데 캠핑카 안의 작은 주방을 마주했을 때 그녀는 아주 흡족스러워했다. 내 입장에서야 매일 밥상을 차려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당연히 '감사합니다'하며 그 계획에 적극 찬성했다.
뮌헨에 도착하고 나서 며칠간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해외에 나왔는데 현지 음식은 먹어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에서 맛보던 서양 음식과는 다른 느낌에 ‘오! 바로 이게 현지의 맛인가’하며 즐겁게 식사를 즐겼다. 그러나 역시 나는 한국 사람인가 보다. 일주일이 지난 내 머릿속에는 한국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맴돌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한인 마트를 찾아 그곳에서 라면, 김치, 고추장 등을 산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마트에서 산 물건을 바리바리 싸들고 캠핑장으로 돌아온 날의 저녁, 룰루랄라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라면~ 라면~ 레이첼, 라면 먹자!”
비록 얼큰한 국밥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한국인의 소울 푸드, 라면이 있지 않은가? 라면이 내 손에 들어온 순간부터 다른 저녁 메뉴는 존재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내가 끓여야 하나 잠깐 고민했지만 여자 친구는 여행을 다닐 동안 자신이 요리를 담당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라면도 여자 친구에 맡겼다.
‘그래, 라면을 전혀 안 먹어 본 친구도 아니고 호주에 있었을 때 내가 라면을 끓이는 모습을 많이 봤을 테니 뭐 큰 문제 있겠어’
이런 생각하며 한국의 맛을 얼른 맛볼 수 있기를 고대했다.
그러나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했는가. 침이 한가득 고이도록 기다린 내 앞에 나타난 건 인터넷에서만 보아 왔던 바로, 바로 그 ‘한강 라면’이었다! 물 양은 왜 이렇게 많고 국물 색깔은 희멀건지. 거기에 면발은 퉁퉁 불어 있기까지!
“레이첼, 도대체 이게 무슨 라면…?”
“아니, 왜?”
“이건 라면이라고 부를 수 없어!”
내가 기대한 게 별 게 아니다. 그저 짭조름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일 뿐이었다. 봉지 뒷면에 나와있는 레시피 대로만 끓이면 나오는 인스턴스 누들이면 충분했는데... 이건 도대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어떻게 하면 라면을 이렇게 끓일 수 있는 건지 심히 궁금해짐과 동시에 파인애플 피자나 아메리카노를 보는 이탈리아인의 심정이 이렇겠구나 절감한 순간이었다.
‘안 돼! 내 라면은 이럴 순 없어!’
‘아, 역시 내가 끓일 걸, 왜 괜히 맡겨가지고’
온갖 후회가 몰려왔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라면을 버릴 수는 없는 노릇. 다행히 라면 한 개분의 스프는 남아 있는 상태였다. 나는 그 즉시 냄비에 담겨 있는 2인분의 라면을 절반으로 나눈 뒤 내 몫의 라면과 아직 개봉되지 않은 스프를 들고 인덕션 앞으로 달려갔다.
스프를 탈탈 집어넣고 30여 초간 다시 끓인 라면은 기사회생으로 되살아났다. 이미 불어 있는 면발은 한층 더 두꺼워져 우동 면발에 가까워졌지만 다행스럽게도 국물은 제 맛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거기에 남은 밥을 국물에 말아 김치 한 조각을 올려 먹으니 그나마 아쉬움이 가셨다.
애초에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대만인 여자 친구에게 무리한 기대를 한 내 잘못이었다. 돌이켜 보니 호주에서부터 이미 한국 라면을 가지고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먹는 친구였다. 그런 사람에게 한국식을 기대하다니.
얼큰한 라면을 기대한 날, 난 뜻하지 않게 한국에 있는 한강을 마주하게 되면서 이런 말이 생각났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그리고 라면은 한국 사람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면보다 국물이 네 배는 되는 라면을 보고 나서, 난 다짐했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라면만은! 기필코 라면만은 반드시 내 손으로 끓이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