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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뱅이 Jan 05. 2023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그래, 그때 내가 왜 그랬더라?


때는 바야흐로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주 이전의 나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나뭇잎과 같았다. 무언가 하고자 하는 의지를 완전히 상실한 채 흘러가는 대로, 남들이 하는 대로 살고 있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높은 허들에 지레 겁을 먹어 버린 탓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머릿속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와,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제대로 스펙을 쌓고 있나? 아니지. 그렇다고 다른 걸 하고 있나? 이것도 아니고.’

‘이렇게 살다가는 X 되겠는 걸.’


이대로 가면 대학교는 어찌어찌 졸업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다음은? 이미 해 놓은 게 있으니 아깝다고 생각하며 스펙에 맞춰서 취업하는 것이 당연히 수순일 테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이 생활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생각해 봤을 때 내 고민의 결과는 ‘NO’였다.


내 미래가 상상이 가다 못해 눈앞에 선명히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가끔 즐거울 때도 있을 거다.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같이 축구를 하고 끝난 뒤에는 맥주 한잔을 기울이면서 스트레스를 풀겠지. 하지만 쳇바퀴 굴러가듯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에 내 인생은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하며 신세를 한탄할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러자 내 마음속 어떤 녀석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말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어?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당연히 아니었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해’라는 이찬혁의 노래 ‘파노라마’의 가사처럼 나는 그렇게 호주행을 결정했다.




호주에 도착한 지 3일째 되는 날. 이 나라에서 제일 큰 도시라는 시드니의 사람들을 보며 나는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여유가 넘쳐난다는 것을. 그리고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이 나라가 지루한 천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처럼 딱 알맞은 나라였다. 활동적인 성격이 아니기에 지루한 것은 나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노가다 복장을 하고 쇼핑몰에 가도 누구 하나 신경을 쓰지 않을 만큼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도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선진국인 만큼 임금 수준 또한 높았다는 것이다. 3D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버는 사회 구조였다. 이러니 호주에 머문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 나라가 더욱더 마음에 들 수밖에. 더군다나 ‘헬조선’이라 불리던 당시의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었고.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나는 호주에 살기로 결심했다.


특정 전공으로 전문대학 입학 후 그 분야에서 몇 년 정도 일하면 영주권을 딸 수 있었다. 그나마 흥미가 있는 분야는 목공 쪽이었지만 사실 영주권을 딸 수만 있다면 어떤 전공이든 큰 상관없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학비였다.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내 통장에는 평생 보지 못한 큰 숫자가 찍혀 있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하다. 수중에 큰돈이 생기니 마음 한편에서 그 이상한 녀석이 또 고개를 쑥 들이미는 거 아니겠는가?


‘아~ 유럽 여행 가고 싶다!’

‘유럽 여행? 거기에 드는 돈이 얼마인데! 돈 모아서 나중에 가면 되지!’

‘그래, 언제든지 갈 수야 있겠지. 그런데 그게 언제가 될까? 영주권을 따려면 대학도 가야 하고 졸업하고 나서 바로 일도 해야 하고. 그게 끝인가? 한번 자리 잡고 나면 떠나기 쉽지 않을 텐데? 그러다 보면 못해도 40살은 되지 않겠어?’


그 당시의 나는 ‘지금 당장 행복해져야 한다’는 말을 삶의 신조로 삼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무력하기 그지없었던 내가 불현듯 호주행을 결정했다. 결과는 너무나도 만족스러웠고 그 선택을 내린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선택의 결과로 인생 자체가 바뀌어 버린 나에게 내 마음속 어떤 녀석이 다시금 ‘지금 당장 행복해져야 한다’는 주문을 외치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지금 안 하면 언제 해보겠어. 미래의 일은 미래의 나에게 맡긴다! 대학 포기! 유럽 여행 간다!



이렇게 마음을 먹었지만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바로 여자친구. 그래도 사귀는 사이인데 나 혼자서 가겠다는 건 아무래도 예의가 아니었다.


나 :  나... 유럽 여행 생각 중인데? 혹시 너도 같이 갈래?

여자친구 : 유럽 여행? 좋지! 그래, 같이 가자!

나 : 응…? 진짜? 간다고? 나랑?


사실 당시의 우리는 사귄 지 겨우 네 달밖에 되지 않은 커플에 불과했다. 오래 사귄 연인이 같이 여행을 가는 건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네 달은 짧아도 너무 짧은 시간 아닌가. 거기에 몇 주 잠깐 가는 여행도 아니고 3개월이나 되는 긴 여행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여자친구의 빠른 답변은 정말 의외였다.

 

더군다나 우리는 국적조차 달랐다. 나는 한국인, 여자친구는 대만인. 같은 나라에 살더라도 사는 곳이 멀면 헤어지기 일쑤인데 심지어 다른 국적이라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여행이 끝나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게 되면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그런 사이이지 않은가?


뭐,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당시는 이렇게까지 자세히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여행 같이 가자고 물어본 것 자체도 그냥 대책 없이 지른 말인데 이런 고민을 할 겨를이 있었을까. 여자친구의 대답은 그저 아주 조그마한 당황스러움을 안겨주었을 뿐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 주는 친구와 여행을 간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잔뜩 젖어 있을 뿐이었다.




여자친구의 흔쾌한 동의는 말만 하고 끝났을지도 모를 단순한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배낭여행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오호라, 그거 괜찮은데?'


듣는 순간 고민을 하고 말 것도 없었다. 이게 다 내가 행복하자고 하는 짓인데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여행을 간다면 얼마나 더 재미있을까!


캠핑카라는 게 움직이는 집 아닌가. 언제 어디서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멈춰 설 수도 있고 잘 수도 있는 그야말로 자유로움의 극치! 거기에 호텔이나 비행기티켓을 예약할 필요도 없는 건 덤.


물론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그때 당시 단점들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순식간에 캠핑카를 타고 여행 가는 걸로 결정이 났다. 이후 여러 가지를 준비해야 했지만, 여행에 대한 설렘에 들뜬 우리에게는 그저 자잘한 과정에 불과할 뿐이었다.




시간은 흘러 2018년 3월 26일, 독일 뮌헨.


나의 이야기이자

현 와이프, 구 여자친구와의 이야기.


서로 다른 문화와 성격,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의 소통, 그리고 멋도 모르고 캠핑카를 선택하면서 벌어진 일들을 생각해보자면 이건 여행기가 아닌, 마치 여행극복기.


여행의 아름다움이 아닌 여행 전후의 삶과 맞닿은 사소한 추억들로 가득한 이야기.


무모했기에 선택할 수 있었던 우리의 여행은, 88일간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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