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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모험가 Jan 01. 2024

그 수업은 마감되었습니다

초단편 소설


갑자기 매진된 강의     


“선생님! 큰일입니다. 이렇게 되면 최악의 경우 폐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허! 참! 희한한 일이네요. 어떻게 수강생이 단 한 명도 없단 말인가요? 일단 내일이 마감이니 조금 더 기다려 봅시다.”

전화를 끊으며 김기중 씨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참! 희한한 일이로군!”     

김기중 씨는 30년 넘는 경력을 가진 유능한 사진사다. 60대 초반인 그는 현재 모 대학에서 영상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문화센터에서 실버 대상으로 사진, 동영상 수업을 하고 있다. 노인들에게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는 그의 강의는 늘 매진이다. 그런데 올해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강의를 할 수가 없어 온라인 줌 수업으로 한다는 거다. 수업을 열었는데 웬일인지 단 한 명의 수강생이 없다. 슬슬 김기중 씨도 초조해진다. 천하의 김기중 씨인데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노인들이 줌을 어려워한다 해도 이렇게 단 한 명도 없단 말인가?      

다음날 문화센터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강의가 매진되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수업을 진행하실 수 있으세요.”

“하! 잘됐군요.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매진되었는지 신기하군요.”

“그러게, 말이에요. 마감 한 시간 전에 순식간에 몰려 매진되었습니다. 아무튼 수업 준비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기중 씨는 전화를 끊으며 참으로 신기하고 뭔가 홀린 기분이었다. 며칠 동안 단 한 명 의 수강생이 없다가 마감 한 시간 전에 매진이라니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도깨비에 홀렸단 말인가?     

          

첫 수업     


첫날 젊잖은 그의 목소리로 줌 수업이 시작되었다.

“어르신들 안녕하세요? 저는 김기중이라고 합니다. 오늘 첫 시간인데 서로 돌아가면서 간단한 자기소개와 왜 이 수업을 들었는지 이 수업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김풍달 노인이 먼저 시작했다.

 “음... 에.. 에... 안녕하십니까? 저는 김풍달이라고 합니다. 올해 7학년 4반이고요. 허허.. 제가 왜 이 수업에 들와왔는고 하니 손주들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주고 싶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선상님들 앞으로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아, 네. 김풍달 선생님 반갑습니다.” 김기중 씨가 환하게 인사한다. 다른 노인들도 일제히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어 최춘자 노인이 말을 잇는다. “안녕하세요? 저는 최춘자입니다. 그냥 꽃을 좋아해서 사진을 찍는데 좀 잘 찍고 싶어요. 여기 줌인가 뭔가도 잘 몰라서 딸이 도와줬어요. 잘 배울 수 있을지 걱정이네요. 도와주세요. 나이는 올해 67세입니다.”

“반갑습니다. 최춘자 선생님,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잘 배우실 수 있으세요.”

“호호, 정말이죠? 선생님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이어서 염장수 노인이 말문을 연다.

“안녕하세요? 저는 염장수입니다. 나이는 올해 65세입니다. 저는 노인들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선생님께 잘 배워서 남은 세월 봉사하며 살고 싶습니다.”

“염장수 선생님 반갑습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김기중 씨가 대답한다.

“너무 좋으신 생각이세요” 최춘자 노인이 거든다. 모두가 손뼉을 친다.

“오늘 첫 시간 서로 다른 이유로 이 자리에 오셨지만 다들 사진을 찍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제가 과제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다음 주에 오실 때는 사진을 찍어서 오세요. 어떤 사진도 좋습니다. 자신이 찍고 싶은 대상을 찍어오세요. 그럼 다 음주에 뵙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모두 인사를 한다.

이렇게 첫 시간이 끝났다.               

 

각자의 사연 1     


두 번째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들 한 주간 잘 지내셨지요? 제가 내준 과제 다 해오셨지요? 한 분씩 사진을 보여주시고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김풍달 노인이 찍은 사진을 공유했다. 손주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사진이다.

“저는 손주들 사진을 찍어 왔습니다. 그런데 제 손이 떨려 사진이 흔들렸네요.”

“그런데 선생님, 손주들을 왜 이리 멀리 잡으셨어요? 좀 더 가까이 촬영하시지요”

“아... 그게 사실은 제가 풍이 와서 손주들이 저를 피하는 것 같아 멀리서 찍었습니다. 손주들이 보고 싶어서요.” 김풍달 노인이 말을 흐린다. “에구.. 손주들이 피하는 것이 아닐 거예요. 할아버지가 달라졌다고 느끼는 거지요. 선생님이 피하지 마시고 손주들에게 다가가셔요” 최준자 노인이 얘기한다.

“선생님, 멀리 있는 대상을 찍으실 때는 줌인(Zoom in) 기능을 활용해 보세요. 화면에 엄지와 검지를 대고 양쪽으로 벌리시면 됩니다.”

 “아! 예. 그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은 최춘자 노인이 찍은 사진이다. 꽃의 줄기와 잎만 찍었다.

“선생님은 꽃을 찍으셨네요. 그런데 왜 꽃의 정면을 찍지 않으시고 잎과 줄기만 찍으셨나요?”  

“저는 꽃만 보면 눈물이 나요. 꽃을 너무 좋아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저에게 딸아이가 하나 있는데요. 6살 때 남편이 간암으로 저세상으로 갔어요. 그 후로 조그만 선술집을 운영하며 버겁게 살아왔지요. 딸아이 하나만 바라보면서요. 그런데 딸아이가 마흔이 다 되도록 시집을 갈 생각을 안 해요. 다 저 때문인 거 같고”

“선생님! 선생님이 꽃이잖아요. 꽃을 바라보시고 꽃과 함께 화면에 가득 보이게 찍으세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김기중 씨가 따듯하게 얘기한다.

“아이고 괜히 꽃이 질투할까 봐 그러시오?” 김풍달 노인이 농섞인 말투로 얘기한다. 다들 크게 웃는다.

“옷 예쁘게 입으시고 따님에게 꽃과 함께 찍어달라고 하세요” 김기중 씨가 얘기한다.

“예. 그러겠습니다.” 최춘자 노인이 눈물을 훔치며 대답한다.            

    

각자의 사연 2     


이번엔 염장수 노인이 사진을 공유한다. 그것은 자신을 찍은 사진이다.

“선생님, 이 사진은 선생님 자신을 찍으셨군요?”

“네. 이것은 저의 영정사진입니다.”

“선생님, 왜 영정사진을 찍으셨어요?”

“저의 직업은 장의사입니다. 평소 죽음을 가까이에 접하고 있지요. 저의 아버지는 배를 타셨어요. 그러던 중 풍랑을 만나 그 뒤로 영영 돌아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충격으로 어머니도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어요. 저는 혈혈단신으로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모진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늘 외로움이 컸습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제가 죽으면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 제 영정사진을 준비하고 싶었지요. 그러면서 저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에게 영정사진을 찍어드리고 싶습니다.”

“참 훌륭하십니다.” 김풍달 노인이 얘기한다.

“맞아요. 좋은 일 하시네요.” 최춘자 노인이 한마디 덧붙인다.  

그 이야기를 듣던 김기중 씨가 말문을 연다. “저의 아버지께서 3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치매를 심하게 앓으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예전과 달라지신 모습에 힘들었습니다. 더구나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아버지를 보며 차갑게 대했습니다. 그러던 중 뇌출혈까지 와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갑자기 마주한 아버지의 죽음에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빚을 갚는다는 생각에 봉사로 노인분들에게 사진과 동영상을 가르쳐 드리게 되었지요.”

“아! 그러시군요. 아버님도 다 이해하실 겁니다.” 염장수 노인이 대답한다.

이렇게 두 번째 수업을 마쳤다.      

다음 수업도 그다음 수업도 그렇게 수업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매번 수업마다 따듯하고 화기애애한 그의 진행과 열심 있는 수강생들로 채워져 갔다. 그렇게 7주간의 수업이 흐르고 마지막 한주 오프라인 출사 수업만 남았다.                


마지막 출사 모임     


“선생님들 그동안 7주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잘 따라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수업은 함께 모여 사진도 찍고 영상도 촬영하는 출사 모임을 하겠습니다. 장소는 경복궁이고요. 정문 매표소 앞에서 2시에 뵙겠습니다.”

“와! 기대됩니다. 다들 직접 뵙겠네요”

“줌이 아닌 영상이 아닌 실물로 볼 수 있겠어요”

“그날 모두 봬요~”

 분위기는 그렇게 좋고 좋았다.      

이윽고 그날이 되었다. 김기중 씨도 그동안 정든 수강생들과 만나 출사를 가려니 괜스레 설렜다. 모자도 쓰고 자신의 보물 카메라를 목에 걸고 선글라스를 끼고 장소로 갔다. 2시가 넘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다들 조금 늦으시나 보다고 생각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한 시간이 넘었는데 단 한 명도 오지 않는다. 김기중 씨는 저번처럼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다들 다른 날로 착각하신 걸까? 분명 모두 오신다고 하셨는데 말이다. 오는 길에 무슨 일이 있으신 걸까? 한두 명은 늦을 수 있지만 수강생 모두 나타나지 않는 건 아무래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받은 명단을 살펴보았다. 할 수 없이 받은 명단의 연락처로 한 명 한 명에게 전화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김풍달 어르신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계속 신호가 울리는데 받지를 않다가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삐 소리에 메시지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멘트만 공허히 울릴 뿐이었다. ’ 어르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다음 염장수 어르신께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결번이오니 다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전화번호를 잘못 받았나?‘

김기중 씨는 다음 최춘자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울리더니 드디어 받았다. 그런데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저 안녕하세요? 최춘자 선생님 핸드폰 아닌가요?”

“최춘자는 저의 어머니 성함이에요. 어머니는 2년 전에 돌아가셨는데요?”

“네?”

순간 김기중 씨는 온몸이 얼어붙는 듯함을 느꼈다.      

“그런데 어머니는 왜 찾으시죠? 안 그래도 며칠 전 제 꿈에 나타나셔서 환하게 웃고 계셨거든요”  

 


♡ 이 소설은 나디오에서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나디오에서 당신의 주파수에 맞는 이야기들에 귀 기울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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