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하면 생각나는 노래가 ‘비발디의 사계 가을’도 있고, ‘어텀 리브스(Autumn Leaves)’도 있다. 이 ‘어텀 리브스’ ‘고엽’이라고도 하는 곡은 워낙 유명해서 여러 가수들에 의한 많은 버전들이 있다.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도 좋고, 이브 몽땅(Yves Montand)도 좋고, 냇 킹 콜(Nat King Cole)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 케빈 오(Kevin Oh)도 좋다. 그러나 나의 가을의 노래는 이곡들 보다 내 기억의 깊은 서랍 속에서 꺼낸 곡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다. 이 곡은 가수 조성모에 의해 2002년에 리메이크되어 크게 인기를 끈 바 있다. 조성모의 미성과 영화 같은 뮤직비디오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조성모의 노래인 줄 안다. 그러나 원곡은 1988년 시인과 촌장의 3집의 타이틀 곡으로 멤버 중 보컬인 하덕규가 작사 작곡을 했다. ‘시인과 촌장’은 기타리스트인 함춘호와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불리던 하덕규 2명으로 이루어진 팀이다. 이 곡은 하덕규의 차분하고 내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영혼의 목소리와 내적인 고뇌를 나타내는 시적인 가사,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사랑을 받았다. 나 또한 이 노래를 참 좋아했고 조성모 버전보다는 원곡인 ‘시인과 촌장’의 버전을 좋아한다. 물론 조성모의 버전이 좀 더 대중적이나 원곡의 깊이는 못 따라간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람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이하 생략)
때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쯤인 것 같다. 나는 그 당시 기독교방송 라디오를 즐겨 들었는데 특히 가수 하덕규가 진행하는 ‘가스펠 아워’를 애청하였다. 그 시간은 공부하면서 힘들 때마다 나에게 큰 위로와 힐링이 되어 주었다. 무엇보다 차분하고 안정된 그의 목소리와 아름다운 노래들은 나의 마음의 휴식처가 되어 주기에 충분했다. 한 번은 강남 뉴욕제과에서 공개방송을 했다. 나와 남동생은 너무 가고 싶었다. 마침 평일 오후에 했는데 나는 야자(야간 자율 학습)를 빼먹고 거기에 갔다. 공개 방송을 잘 듣고 하덕규 씨를 만나게 되었다. 동생과 나는 너무 좋았고 그분에게 무엇이라도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동생과 나는 주머니를 뒤졌고 잔돈 몇 개를 합쳐 작은 초콜릿을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좋은 방송 감사히 잘 듣고 있다는 말과 함께 수줍게 그 초콜릿을 내밀었다. 그분은 너무 감사하다고 하시면서 기쁘게 받아 주셨다. 그리고 그날 방송을 듣는데 우리의 얘기를 말씀해 주셨다. 동생과 나는 뛸 듯이 기뻤고 아주 작고 예쁜 추억이 되었다. 그 후 그분은 모 대학에서 실용음악과 교수로 계시다는 것을 동생의 친구에게 들었다. 마침 그 학과에 동생 친구가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를 기억하실까? 수줍게 학생들이 내밀던 그 초콜릿을... 그 추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