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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모험가 Oct 27. 2021

바바라의 그림선물

포틀랜드에서 1년 살기

  나에게 기억에 남는 선물은 무엇일까? 문득 떠오른 장면이 있다.


남편이 나를 커뮤니티 센터에 내려준다. 나는 미술도구 가방을 들고 커뮤니티 센터로 들어간다. 들어가기 전 하늘은 매우 파랗고, 따듯한 햇살이 나를 반겨준다. 커뮤니티 센터 앞 작은 정원에는 팬지, 제라늄 등 어여쁜 꽃들이 나를 반긴다. 나는 눈을 감는다. 향기로운 꽃내음과 풀냄새. ‘아! 좋다.’ 나는 영영 이 아름다운 꿈에서 깨고 싶지 않다.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금방 깰듯한 꿈같아서이다. 나는 생각한다.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자. 이곳, 이 시간, 이 냄새를 기억하자. ’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고, 앞으로 계속 추억하며 살자’라고. 나는 커뮤티니 센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계단을 내려갔다. 가는 길이 매우 고요하다. 그리고 또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간다. 들어가니 루디 선생님과 회원들이 반갑게 나를 맞아준다. 나는 그림도구를 펼치고 그림을 그린다.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그림 속으로 빠져든다.


6년 전 남편 직장에서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로 1년간 가족동반 연수를 보내주어 살았던 적이 있다. 본래 나는 미대에 가고 싶었으나 집안 형편상 포기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늘 미대에 대한 갈망과 프랑스나 미국에 유학을 가고픈 꿈이 있었다. 비록 유학은 아니지만 1년간 미국에 살 수 있어 매우 행복했다. 그래서 나는 동네 커뮤니티 센터에서 평소 하고 싶은 수채화반 수업을 신청했다. 그림을 배운다기보다는 함께 그림을 그리고 서로 코멘트를 해준다. 강사분은 그 당시 90세 전직 외과의사이신 루디 할아버지셨다. 6.25 때 인천에서 해군 복무를 하셨다면서 한국에서 온 나를 반겨주셨다. 매우 정정하시고 은퇴하신 후에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시면서, 그림 강사로 사회에 기여하시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같이 그림을 그리는 회원들은 10명 남짓 되는데 은퇴한 교사, 주부, 현직 그래픽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들이 계셨다. 주로 은퇴하신 분들이 많아 50~60대 분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분들은 10년 가까이 함께 그림을 그려오셔서 서로 친하고 가족같이 분위기도 좋았다. 그래서 새로 온 나를 반겨주시고 친절히 대해 주셨다. 한 번은 인물화를 그리려고 아이들 사진을 가지고 왔다. 회원 중 한 분인 바바라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신데 아이들 사진을 보며 너무 예쁘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아이들 사진 파일을 자신의 이메일로 보내달라셨다. 처음에는 '왜 보내달라고 하실까?' 생각이 되었지만 '아이들을 이뻐하시나 보다' 하고  보내드렸다. 그런데 다음 수업에 바바라가 선물이라고 아이들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 액자 매트지에 가져오신 것이다. 너무나 감동이었다. 주시면서 아들의 눈 표현이 잘 안되어 못 생기게 그려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잘 그리셨고 무엇보다 그 마음과 정성에 감사하다고 했다. 사진은 두 아이들이 길거리 무료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는 모습이었다. 누군가 그림을 그려서 준 선물은 처음이었고 그래서 더욱 감동이었다. 타국에서 온 나에게 이런 친절은 더욱 내가 포틀랜드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6개월간 수업을 함께 했고 회원들과 정이 들었다. 할아버지 강사 루디의 90세 생일도 함께 하고, 교회에서 하는 그의 전시회도 가고, 시내에서 하는 아트페어에도 갔다. 내가 마지막 수업으로 갔을 때 다들 매우 아쉬워하고 안아주었다. 나도 한국을 나를 기억할 수 있는 작은 선물을 모두에게 주었다. 함께 그림을 그리는 시간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이 좋았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그 그림이며 우리 집 벽에 잘 걸려있다. 그림을 볼 때마다 바바라가, 포틀랜드가, 보석 같은 그 시간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나에게 포틀랜드에 있던 시간들이 내 인생의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아래는 사진 위에는 사진을 그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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