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르다 Dec 02. 2021

마음의 계절

큰 창문

내가 살던 집들은 창 너머로 아파트 건물이 단단하게 가로막혀 있던 곳이었다.

친정집, 신혼집, 그다음 집. 전부

지금 살고 있는 집 거실에는 큰 창문이 있고 그 창 너머에는 아무런 건물이 없다.

그게 이 집으로 오게 된 이유들 중 하나이다.

이사를 하고 며칠 뒤 비가 내렸다.

창밖으로 간간히 지나가는 자동차의 라이트와 흰 가로등 불빛이 파-하고 번졌다.

나는 그것이 좋아서 한참을 서있었다.

창밖으로 날씨를 완전히 느끼는 건 좋은 일이구나.

-

어느덧 12월

이사를 온 게 올해 2월이니까

거실에 생긴 커다란 창밖으로 계절의 변화를 봐 온지도 일 년이 다 되어간다.

매일 아침마다 창 너머 수목이 흔들리는 정도를 보며 겉옷의 두께를 정하고 가끔은 산책하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부지에 이름 모를 수목들이 지저분하게 자라났다.

그 부지 쪽으로 인도를 내다 만 흔적이 있고 길이 끊어진 곳에도 무엇인가 어지럽게 자라나 있다.

누가 앉기는 하는 걸까 싶은 벤치도 듬성듬성.

-

거실에서 그런 것들을 보고 있으니 한번 가볼까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루는 유모차까지 끌고 그 근처에 가봤는데 거실에서 봐왔던 것보다 나무가 굉장히 컸다.

길이 끊어진 안쪽 부지로 들어가는 건 아무래도 어려워 보였다.

뭐든 멀리서 보기만 할 때와는 다르구나.

-

그날 이후 광활한 숲으로 여기기로  그곳은 착실히 계절을 바꿔갔다.

여름을 나며 수목들도 키가 많이 자라고 잎은 더 무성해져 갔다.

부지 가장자리에 뭘 심는 사람들이 생겼다.

가을쯤에는 가지에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는데 먹을 만한 것들이라는 것뿐 호박인지 고추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

건물이 가로막지 않는 풍경으로 날씨와 계절을 바라보며 서른 되어간다.

서른여섯이 될 때쯤에는 창밖을 보는 즐거움이 아주 없어질지도 모른다.

아파트가 생긴다고 하니.

친정집. 신혼집. 그다음 집과 마찬가지로

이 집마저 창밖으로 건물이 있는 집이 된다.

그게 아쉬워 블라인드를 바짝 올려둔다.

-

이곳에서 몇 해를 보내게 될지 모르겠지만

내 나이가 얼른 오십정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매번.

크게 연연하지도, 괜히 울지도 않고.

마음에 누구든 들고 나는 것에 많이 즐겁지도,

속상하지도 않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나는 얼른 오십정도 되면 좋겠다."

나는 너무 자주 운다.

우는 건 건강한 거라는데 진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

부지런히 자라는 수목이 댕강. 하고 잘려나갈 날을 상상한다. 자주.

깨끗하게 아스팔트가 깔리고 주차선이 그려지고 할 날을.

나무들과 주인모를 텃밭 같은 건 매일 변화한다.

지저분해 보이기도, 가까이 가면 어지럽기도 하다.

비가 와도 질척거리지 않을 아스팔트가 편리할지도 모른다.

-

그래도.

블라인드를 바짝 올려둔다.

가로막혀 있지 않아 작은 일에 연연하고 자주 울고 마음에 누구든 들이는 것에 크게 기쁘고, 크게 실망하는 변화를 온전히 바라보는 것.

그런 마음의 계절이 또 한 번 지나는 것이 아쉬워서

바짝.

매일 바라볼 수 있도록 바짝 올려둔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울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