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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성 Oct 01. 2022

우리 언젠가 지금을 그리워하겠지.​

친애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작년은 감정이 날이 되어 나의 온몸을 쑤시는 느낌이었다면 올해는 너무 무뎌져 아무런 감흥도 없는 것 같다. 쉽게 말해, 사는 게 썩 재미있진 않다. 감정에 충실한 건 독이 되는 것 같고 글 쓰는 것은 사치 같다. 감정에 기반한 글을 쓰는 건 점점 더 어려워진다. 글은 평생 쓸 수 있을 거야. 염불처럼 외우던 과거의 내가 허세 찬 모습으로 그려질 만큼. 정말? 평생 쓸 수 있을까? 느낌표 가득하던 문장에 물음표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무서워졌다. 이런 의문을 갖는 내가. 더 이상 문장 하나 완성하기 어려워하는 나를 그리는 것이.

  사랑하는 것을 많이 만들자며. 그게 어느 순간 숙제 같아졌고. 부유하는 언어들을 붙잡아 기록하자며. 그건 나의 감정과 고찰은 결여된 건조한 기록에 불과할 뿐이었다. 생각 없이 느끼고 모든 자극이 생경하던 시기가 그립다. 근데 또 그럴 수 있는 순간이 오면 되려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 노력하겠지.

  아. 그래도 여전히 사무치는 것들은 존재한다. 본래 그걸 온전히 느끼기에 스스로의 그릇이 작은 감이 있어 다른 데에 집중하기 위해 애써 외면할 뿐. 작년엔 활발히 왕래하던 관계의 길에 올해는 발자국이 덜 찍히는 것 같다. 챙겨야 마땅한 사건들과 일정들만 지킬 뿐 서로의 사정과 일정을 존중해주기 위해 만나는 일이 적어졌다. 물론 그에 반해 새로운 인연이 생겼으나 딱히 감흥은 없어서. ​


  아쉽지 않을 수가 없다. 오가던 감정은 적어지고 간단히 묻는 안부만 늘어나니. 예전에는 떠나는 사람은 떠나고 머무를 사람을 머물러라 주의였는데. 그게 어려워진 날들을 보내고 있다. 멀어지는 사이가 안타까워서.

  우리 언젠가 지금을 그리워하겠지.​


  하고 운을 뗐다. 매일 같이 보는 사람이 시간이 흐른 미래의 어느 날엔 매일 만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인물이 될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도 벌써부터 아쉬운 마음이 피어오른다. 습한 기운의 감정이 꾸물꾸물 올라와 또 여기저기 곰팡이를 피우는 것 같았다. 그래도 위로하듯 해보는 말은, 마음껏 슬퍼하기로 했잖아.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는 것보단 슬퍼하고 기뻐하고 좋아하고 싫어할 수 있는 것이 더 기적 같다 했잖아. ​


  생각을 맥락 없이 서술해 나가다 보니 모호했던 감정이 한 단어로 정의된 것 같다. '아쉽다.' 요즘은 참 아쉬운 것이 많은 나날들이다. 나를 위해 변한 내 모습도. 모양새가 알맞게 변해가는 관계도. 유유히 흘러가는 나날도.


  그래도 다행인 건, 여전히 어떤 영화를 보고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나를 떠올리는 이가 있다는 것. 네가 이 노래를 들었으면 좋겠다며 플레이리스트를 보내는 이가 있다는 것. 이 짧은 문구가 너를 떠올렸다는 이가 있다는 것. 너의 언어를 애정한다는 이. 늘 마음이 닿아 있는 이가 있다는 것. 소중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 꿈꾸는 나의 이상이 있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이 존재해 섣불리 아쉬운 한편 고맙다.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누군가가 있어서. 미래를 약속할 이들이 있어 다행이다. 그래 우리는 우리가 여유로워질 미래를 기약하잖아. 서로를 존중하고 애틋해하잖아. 그러면 되는 거지.

  그러니 난 기꺼이 아쉬워하고, 기꺼이 매 순간 미래에 만나기 어려워질 이들을 그리워하련다. 그게 내가 내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식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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