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밥상

살아가는 원동력

by 맑은샘

산책에서 돌아와 아침밥상을 준비한다. 재료가 없다. 봉지와 호미를 들고 뒷문을 열고 나가본다. 밭두렁에 찬 서리가 내렸지만 뾰족 나온 냉이가 제법 많다. 초록색 냉이를 호미로 콕 찍어 잎사귀를 잡고 당기니 하얀 자태의 긴 뿌리가 쏙 올라온다. 작은 냉이로 골라 봉지에 담았다. 어느새 봉지가득 냉이향이 가득찼다. 냉이를 흐르는 물에 씻으니 초록잎과 하얀 뿌리가 선명하다. 된장을 풀고 팔팔 끓인 후 씻어놓은 냉이를 넣으니 온 집안에 냉이향이 가득하다. 텃밭에서 딴 매운 고추도 하나 넣었다. 남편과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김치와 곁들여 냉이된장국에 여유로운 아침을 먹었다. 밥을 먹을때면 남편과 엄마와 시어머니 이야기를 하게 된다. 엄마는 당신을 위한 밥상을 차려본 적이 있을까?


내가 태어난 곳은 전남 화순군 도암면 작은 산골마을이엇다. 2남 4녀중 넷째 아들선호사상이 강하던 시대다. 따ㅏㄹ이 태어났다고 해서 부모님이 기뻐하셨을까? 지금와서 드는 생각이다. 엄마 아버지는 아들을 좋아하셨지만 딸들에게도 참 잘하셨다. 우리 남매들은 크게 말썽부리지 않고 사이가 좋았다. 집의 풍겨은 뒷곁에는 대나무 숲이 있고 엄마의 장독대가 있었다. 대문 대신 서 있던 감나무에는 납작감이 주렁주렁 열렸고 외양간과 그 옆에는 큰 항아리로 된 변소가 있었다. 마당가운데는 곡식을 보관하는 양철로 된 사이로가 있었다. 변소는 안채에서 떨어져 있어 깜깜한 밤에 가는게 무서웠다. 언니 동생을 꼭 밖에 세워두고 볼일을 보았다.


엄마의 장독대 옆에 보물창고 같은 공간이 있다. 진달래를 따서 설탕에 절여 놓거나 설익은 참외를 따서 소금을 절여놓고 오이를 절여놓은 시원한 공간, 그 옆이 우리들의 놀이공간이었다. 작은 돌맹이를 잔뜩 모아놓고 땅따먹기, 공기놀이, 고구려, 신라, 백제 놀이를 할 때면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며 놀이구역이 넓어졌다. 10분정도 걸어서 동네 앞 초등학교를 거쳐 장터를 지나면 냇가에 가서 놀이를 했다. 물고기도 잡고 다슬기도 잡았다. 여름이면 조개둠벙은 온 동네 아이들의 수영장이었다.


외양간에 있는 소를 위한 풀을 베야하는 것은 학교를 끝낸 우리들의 숙제였다. 아부지가 시킨 꽆을 베고 땀에 절은 몸을 옷을 입은채로 풍덩 물속으로 들어가 멱을 감으며 놀았다. 수영은 따로 배우지 않았지만 매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익혀진 몸놀림이다. 높은 바위까지 올라가 다이빙을 하는 대담함도 지니게 되었다. 흐르는 물을 따라 실컷 놀다 지치면 꼴망태를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초등하교 4학년 무렵 어둑해질 때까지 일하러 가신 부모님이 오지 않으셨다. 쌀을 씻어서 솥에 넣고 불을 때고 처음 밥을 했다. 농사이 끝내고 돌아오신 엄마가 '오메 내가 밥을 했냐?'라며 좋아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귓가에 선명하다. 산골마을은 농토가 생활밑천의 전부였다. 농사일로 바쁘신 부모님을 기다리며 집안 곳곳을 누비며 동생들과 놀았다. 배가 고프면 엄마가 먹을 것을 놓아두던 광에 들어가 오빠마 주던 원기소를 몰래 먹는 맛, 아버지 드시라고 끓여놓은 옻닭도 한 국자 몰래 먹었다.


엄마는 솜씨가 좋았다. 무생채, 김치, 동태찌개, 밀가루만 떼어넣은 말간 수제비국도 엄마가 끓이면 맛이 있었다. 여름이 다가올 무렵 바위에 붙어 있는 검은버섯을 비온 뒤 주워와서 살짝 삶아 티끌얼 제거하고 무채썰고 식초를 넣어 도롯지국을 만들었다. 바위에 붙어있는 검은색의 버섯을 물에 불리고 티끌을 제거하려면 여러 번 헹구기를 반복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그래도 오이살짝 채 썰어넣고 온 식구가 함께 먹는 추억의 음식이었다.


여름이면 냇가에 엎드려 돌에 붙은 다슬기를 잡았다. 돌맹이를 하나하나 뒤집어 가며 언니와 함께 잡아온 다슬기는 엄마의 저녁밥상 재료가 되었다. 학독에 살살 문질러 겉에 붙은 이끼를 제거하고 체에 받여 놓은다. 가마솥에 된장을 풀고 팔팔 끓으면 입이나온 다슬기를 넣는다. 찹쌀가루를 물에 플어 살짝 붓고 다진마늘 넣으면 맛있는 다슬기된장국이 된다. 밥을 말아먹고 다슬기는 따로 건져 간장, 다진마늘 넣고 살짝 졸이면 짭짤한 밑반찬이 되었다. 온 식구 마당에 덕석 펴 놓고 앉아 다슬기를 쪽쪽 빨아 먹으면 여름밤이 깊어간다.


추석이면 엄마는 산자를 하셨다. 방앗간에서 찹쌀을 가루로 빵아와서 따뜻한 물로 익반죽을 하고 살짝 쪄서 동그랗게 빚어 작은방에 불을 때고 종이를 깔고 며칠을 말린다. 바삭하게 잘 마르면 불을 지핀 아궁이에 솥뚜껑이 올라가고 기름을 펄펄 끓인다음 말린 산자를 넣고 주걱과 국자를 이용해 쭉쭉 눌러서 늘리면서 튀겨낸다. 기름에서 건져낸 산자에 물엿과 쌀 튀김을 발라 바삭한 산자가 완성되면 박스에 담아 간식으로 두구두고 먹었다. 달콤하고 입에서 살살 녹는 그맛이란.


동짓날 엄마가 끓여준 동지 팥죽은 정말 맛있었다. 팥을 푹 삶아 채에서 으깬 다음 물과 함께 섞어 껍질을 걸러내 앙금을 가라앉힌다. 찹쌀가루는 따뜻한 물로 익반죽을 해 주면 네 딸이 동그랗게 새알심을 빚는다. 암반에 가득 새알심을 빚어 놓으면 가마솥에 물을 적당히 넣고 팔팔 끓으면 새알심을 넣고 동동 떠오르면 앙금을 넣고 끓여주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뜨거운 단팥죽은 장독대에 한 그릇, 대문간에 한 그릇, 가마솥 옆에 한 그릇 떠 넣고 돈 가족이 둘러앉아 한그릇씩 먹고 나면 찬 겨울 추위가 가신다.


엄마는 김치를 잘 담그렸다. 텃밭에서 뽑아온 배추를 소금에 절여두고 학독에 멸치젓, 고추, 식은 밥, 마늘, 생강을 넣고 동그란 돌로 살살 문질러 주면 거칠하게 갈린다. 절인 배추를 물에 헹구어 바구니에 건져서 물기를 뺀 다음 학독에 넣고 버물버물 엄마의 손길에 배추에 빨간양념이 베인다. 엄마의 김치는 다양한 재료도 응용이 되었다. 호박넣은 호박김치, 고구줄기김치, 열무김치, 가족을 먹이기 위해 없는 살림에 엄마의 부엌은 늘 분주했다.


오일장이 열리면 온 동네 사람들도 장구경을 간다. 길거리에 좌판을 펼쳐두고 왁자지껄 고을 사람들이 다 모여 사람물결로 넘쳐난다. 이럴때는 평소 먹을 수 없는 생선을 먹을 수 있는 기회다. 엄마는 갈치, 고등어, 새꼬막을 사오셨다. 조림도 해 먹고 새꼬막은 깨끗이 헹군다음 물기를 빼고 무채썰고 고추가루, 다진마늘, 설탕 넣고 버무려 새콤달콤한 무침이 된다. 흰쌀밥 넣고 양푼에 너도나도 쓱쓱 비벼먹는 행복한 밥상이 된다.


이른 새벽 엄마의 부엌에서 연기가 난다. 차가운 날씨에 방바닥이 다시 따뜻해진다. 게으름 피우기 좋은 계절,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난다. 가마솥에 쌀, 보리 섞어 앉히고 작은 솥에는 된장풀고 시래기 넣고 끓인다. 밥을 하고 남은 잔불에 김을 살짝 구워 아버지 밥상은 네 조각, 우리들 밥상은 여덟조각을 내고 아침상을 차린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든든한 아침을 먹고 아이들은 학교로 부모님은 논밭으로 일을 나갔다. 엄마의 밥상은 온 가족이 일터에서 학교에서 버텨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도 엄마의 부엌은 행복한 기억이다. 언제나 그리운 그 시절 엄마의 따뜻했던 부엌냄새는 살아가는 힘이요 생명의 원동력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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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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