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위로받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 유년시절 기억 속에는 늘 노래를 흥얼거리는 엄마가 있었다. 해치 하는 날 동네 아낙들은 삼삼오오 모여 미나리에 홍어 넣고 무치고 쑥절편 만들고 막걸리 한 잔을 나눠 마셨다. 동네 뒤편 묘등에 가서 장구도 치고 노래도 부르며 흥겹게 놀았다.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 하루 휴식인 셈이었다. 한복을 입고 허리에 질끈 매고 장구를 치며 덩실덩실 춤을 추던 엄마도 그때는 젊은 날이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술 한잔의 취기를 빌려 당신들의 설움을 토로하던 엄마들의 애환을 그때는 몰랐다.
1984년 여름 강변가요제에 곱슬곱슬 파마머리를 한 작은 소녀가 커다란 뿔테안경을 쓰고 마이크를 잡았다. j 스치는 바람에 j 그대 모습 보이면 난 오늘도 조용히 그댈 그리워하네 곱고 고운 미성으로 당차게 노래를 부르던 가수 이선희를 세상에 알린 곡이다. 그 노래는 나의 이십 대 시절 애창곡이었다. 신입사원 시절 가을 야유회 때 돌아가며 노래 한 곡씩 부를 때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j에게를 불렀다. 순간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분위기를 깬 것 같아 미안했다. 얼굴이 화근 거리며 노래를 마쳤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며 잘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선희의 노래를 좋아했다. 아! 옛날이여, 갈바람, 갈등, 그래요 잘못은 내게 있어요. 나는 사랑에 빠졌어요, 소녀의 기도, 가난한 연인들을 위하여 1집에 수록된 모든 곡들은 나의 마이마이에 담겨 쉬는 시간이면 늘 즐겨 듣던 애창곡이었다. 곱슬머리였던 소녀는 점차 대중의 인기를 얻으며 성장했고 많이 예뻐지고 스타로서 발돋움하는 시기였다. 슬픔 많았던 나의 이십 대 노래로 인해 그 시간들을 견디며 성장한 시간이었다.
스물세 살 동네 오빠를 만났다.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사귀게 되었다. 진짜 사랑이었는지, 그냥 동경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연애시절 편지를 주고받을 때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은 노래였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해서 보내주었고 그 노래가 바로 '알고 싶어요'이다. 노랫말의 가사는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나요?' 공중전화를 붙들고 노래를 불러주며 우린 그렇게 물들어갔다.
스물 다섯 결혼을 했다. 남자 하나 믿고 인천행을 선택했다. 친구도 친척도 없는 외로움은 사랑하나만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전업주부, 남편 출근하고 단칸방에 홀로 있는 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부르며 위안을 받았다.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 이광조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당신, 김수희의 멍에,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 수많은 대중가수들의 가요는 마음을 위로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서른 즈름, 김광석이란 가수를 알게 되었고 그의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을 울고 웃게 만들었다. 이등병의 편지, 군대를 가는 것도 아닌데 그 노래만 들으면 콧날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노랫말인가 보다. 아이를 낳고 돌아볼 겨울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점차 나를 위한 노래보다는 아이에게 들려줄 자장가를 불렀고 동요를 부르며 30대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나 마음속에 좋아했던 가수들의 노래는 일상에서 흥얼거림으로 여전히 나를 위로했다.
사십 대, 아이들이 자라면서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생이 된 두 아들과 노래방을 갔다. 임재범의 고해를 멋지게 불러주는 큰아들에게서 대리만족을 얻었다.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알게 되었고 작은 아들은 아빠유전자를 닮아 부르는 것보다는 즐기는 편이었다. 그래도 함께 노래를 하며 시간을 보내 줄 두 아들은 나의 보배였다. mp3에 저장해 준 kcm, 보즈의 노래는 밤마다 운동장을 돌 때 나의 귓가에서 다정하게 속삭여준다. 큰 아들은 여자친구와 헤어졌을 때도 우린 함께 노래방을 갔다. 아들의 절규 어린 노래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흐뭇했다.
오십 대,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아하는 노래의 장르도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타 선율이 울려 퍼진다. 관객석이 숨죽인 듯 고요하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몇 해 전 미스터 트롯 1 임영웅이 불렀던 노래이다. 관객석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졌다. '어머, 어머, 첫 소절을 부를 때 가슴이 아렸다. 깜깜한 거실에 누워 혼자 텔레비전에 나오는 노래를 듣는데 나도 모르게 볼을 따라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알고 있던 노래였지만 다른 사람이 불렀을 때 같은 노래는 다름 힘을 느끼게 한다. 오십을 지나며 요즘에는 트로트 노래를 보고 듣게 된다. 워낙 다 야한 경연도 많고 어린 시절부터 노래하는 가수들도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최근에는 유지우가 노래를 부를 때 가슴이 아려왔다. 내가 부르려고 하면 그 감성은 살아나지 않지만 여전히 나의 삶에 노래는 삶의 힘이요, 위로다. 노래의 힘은 그런 것 같다. 어떤 상황에 따라 어루만져주는 힘이 있다.
나의 애창곡은 많다. 김연숙의 그날, 조용필의 상처, 최진희 꼬마인형, 허영란의 날개, 노사연의 만남, 구창모의 희나리 솔개트리오 아직도 못다 한 사랑, 한혜진의 갈색추억, 조성모의 아시나요. 시간이 지나며 좋아하는 노래는 다시 다른 가수를 만나 다른 감성과 느낌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기도 한다. 나도 그렇다, 나를 위한 노래를 들으며 다시 힘을 얻고 위로는 받는다. 노래의 힘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