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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Sep 09. 2024

시골밥상

오빠야!  지금 뭐해? (비오는 날 수제비)

  유년시절을 글쓰기 주제로 받았다. 초등학교 이전 기억은 사실 별로 없다. 특별하지도 까탈스럽지도 않았던 작은 소녀였을 나를 떠올려보기로 했다. 엄마는 하늘나라에 계시지 무어볼 수 없고, 두 동생은 더 기억이 없을테고, 출근해서 작은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무슨일이냐?" 물어볼 게 있다는 나의 말에 무슨일 있는 줄 알았단다. 글쓰기 숙제를 위해 어린시절의 기억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오빠 역시 별 기억은 없단다. 그래도 동네모습이나 친구들과 놀았던 놀이에 대해 대해 말해주었다.


  나의 어린 시절 기억속에는 외할머니가 있다. 햇살 가득했던 날 토방에 걸터 앉아 작은오빠랑 나랑 할머니 젖을 물고 있었던 희미한 기억이 한 장면이다. 두살, 세살 터울로 육남매를 낳고 새벽이면 밭으로 논으로 일하러 가신 엄마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일이며 밥을 해서 먹이는 것은 외할머니가 많이 하셨다낟. 작고 꼬부라진 허리로 막대기를 짚고 다니면서도 어린 손주들 빈 젖이라도 물리던 할머니였다. 그런 할머니는 내가 여섯 살 오빠가 여덟살 때 하늘나라로 가셨다. 오빠는 상여가 지나갔던 길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집은 동네 놀이터였다. 동네에서 제일 높은 곳에 집이 있었고 넓은 마당은 항상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작은오빠와는 두살 터울이다. 오빠는 손재주가 좋았다. 장난감이 없던시절 놀이에 필요한 도구는 거의 만들었다. 봄에는 자치기를 만들었다. 긴 나뭇가지를 잘라 긴 막대와 작은 막대를 5배 차이나게 만들었다. 나무는 검은색을 단단한 재질의 나무를 찾아와 만들었다. 아침만 먹고 나면 오빠친구들이 약속도 없이 모여들었다. 자치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모인 친구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장, 깨, 포시로 편을 나누어 공격팀과 수비팀으로 나누었다.


  마당의 흙을 파서 작은 막대가 걸칠만한 구멍을 파고 막대기를 걸치고 큰 막대로 높이 떠서 날아가는 막대를 수비가 받으면 체인지, 날아간만큼 길이를 재서 긴 편이 이겼다. 다음은 긴 막대로 작은 막대를 때려서 멀리 날리고, 작은 막대의 끝을 쳐서 빙 돌아 다시 맞춰 멀리 날아가게 하는 게임으로 박진감이 넘치는 게임이다. 한 차례 오빠들의 놀이가 끝나고 들로 산으로 오빠들은 꽆을 베러 망태메고 나가고 나면 마당은 여동생들이 차지가 된다. 마당 한 쪽에 모아 놓은 작은 돌로 공기놀이를 하거나 소꿉놀이, 숨바꼭질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여름의 마당은 한산했다. 장맛비가 내리는 날은 툇마루에 앉아 맞은편에 보이는 범바위산을 멍하니 보고 누워있거나 집 옆으로 내려가는 도랑물에 고무신을 뛰워 물살 따라 내려가는 놀이를 했다. 비 오는날은 엄마가집에서 쉬는 날, 까슬한 밀가수 반죽을 치대두었다가 국솥에 멸치 몇 마리 넣고 육수를 내서 수제비를 끓여주었다. 작은 나뭇가지를  불을 때서 육수가 끓으면 밀가루 반죽을 떼서 넣으며 매캐한 연기로 인해 눈물을 훔치던 엄마의 분주했던 손길, 담장에 달린 애호박을 송송 썰어 넣었던 뜨끈한 수제비 한 그릇이면 추적하게 내리던 비도 어느 새 그쳐있었다.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 날 우리들의 놀이터는 범바위산 밑을 흐르는 넓은 개울가의 조개둠벙이었다. 동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옆 동네 윗동네 아이들까지 모여 왁자지껄했던 추억의 놀이터였다. 바위를 따라 흐르는 물줄기 따라 조개모양으로 동그랗게 파여진 곳에서 물놀이를했다. 옷을 입은 채 개헤엄을 치고 물장구를 치며 놀다가 냇가의 조약돌을 주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물이 줄줄 흐르던 옷은 어느 새 말라 있었고 그늘진 처마 밑에 모아진 돌을 가지고 땅따먹기, 공기놀이, 소꿉놀이를 하면 여름해는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갔다.


  날씨가 쌀쌀해지는 가을이 오면 앞산, 뒷산으로 작은오빠를 따라 밤을 주우러 다녔다. 바구니 하나, 대꼬챙이들고 산을 오르면 밤나무 아래 벌어진 알밤을 주워 바구니에 담고 오빠는 나무위에 올라가 밤나무가지를 흔들어댔다. 작은 체구로 나무도 잘 탔지만 자우자레로 이 나무 저나무 올라 다니며 벌어진 밤송이를 떨어뜨려주면 양발로 잡고 대꼬챙이로 눌러 벌어지 사이에서 세 개씩 들어있는 밤을 주워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간식이 없던 시절 가마솥에 찐 밤을 쉴 새 없이 까서 먹던 어린입이었다.


  겨울은 작은오빠가 바빠지느 시간, 집 뒤 대나무를  베어 칼로 반을 자르고 대나무를 얇게 얇게 작은 칼로 만들어 창호지에 대고 밥풀을 붙여 방패연을 만들었다. 얼레도 만들고 엄마가 오일장에서 사 온 무명실을 감아 연과 연결하여 마당에서 날리면 뒤산 꼭대기가지 날아갔다. 높은 바람을 탄 연은 한 자리에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를 맴돌며 떨어질 줄 몰랐다. 눈이오고 동네 앞 미나리깡이 얼면 나무로 썰매를 만들고 커다란 대못을 불에 달궈 두 개의 송곳을 만들어 썰매 탈 때 사용했다. 장갑도 없이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오빠가 만들어 준 썰매를 타다 손이 꽁꽁 얼어 집에 오면 따뜻한 아랫목세 손을 녹이던 시절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작은오빠와 함께 누볐던 들판, 뒷산, 앞산, 조개둠벙에서의 놀았던 추억으로 인해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낼 힘이 되었고 그 흔한 장난감 하나 없어도 모자람 없이 보냈던 어린시절, 이렇듯 유년시절 행복했던 기억은 나의 삶에 따스한 정서를 남겼다. 배부르게 먹지 못하고 늘 부족했던 시절이었지만 작은오빠와 함께 성장했던 어린시절, 나의 친구였고 동지였고 놀이의 스승님이 함께 있어 늘 든든했던 시간이었다. 오늘 난 궁금하면 오빠에게 전화를 건다 "오빠야, 지금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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