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길에 핀 꽃조차

산책길 위로가 된 꽃

by 맑은샘

들길에 핀 꽃조차 아름답던 시간, 고남리에 봄이 오고 마당은 온통 노오란 민들레 천국이다. 새벽 꼬끼오 소리에 눈을 떠 제일 먼저 마당으로 나가면 피어있는 꽃으로 인해 마음이 꽃처럼 활짝 피어 웃게 된다. 뜨거운 물 한잔을 머그잔에 담아 마당을 서성이며 천천히 마시며 아침의 공기를 느낀다.


나의 루틴인 아침산책을 하기 위해 운동화를 신고 길을 나선다. 조금 걸어 내려가면 메타쉐콰이어가 둘러싼 작은 웅덩이가 있다. 일찍 일어난 새들의 합창이 지지배배, 재잘재잘 기분 좋은 합창소리로 들린다. 잠시 웅덩이에 떠 있는 하얀 배 한 척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가 저수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10분쯤 내려가면 동네 집이 보이고 논둑길을 따라 멀리 돌아서 저수지 쪽으로 향한다. 들길에는 보랏빛 자운영꽃이 군락을 이루고 피어나 봄소식을 알린다. 논둑에 봄동, 갓의 어린잎이 돋아나 있고 비어있는 밭에는 냉이가 소담스럽게 초록빛으로 올라와 있다. '돌아오는 길에 냉이 조금 캐서 된장국 끓여야겠다' 혼잣말로 되뇌며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동네 앞 버스정류장을 지나며 잠시 앉아서 숨을 고른다. 아침 8시, 점심 12시, 오후 5시 3대의 버스가 들어오는 고남리는 시간을 잘 맞춰 나가야 한다. 정류장에서 바라본 동네풍경과 맞은편 산자락은 벌써 봄을 알리는 새싹들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고 데크길로 들어서면 저수지 앞집 강아지가 멍멍멍하고 짖는다. 아랫입술을 말아 쪼르르륵 소리를 내면 금세 꼬리를 흔들며 조용해진다.


저수지는 언제나 고요하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물결이 일렁일 뿐 잔잔하다 못해 고요하다. 가끔 날아가는 새들이 끼룩끼룩 날아가고 전망대 위에 서서 잠시 스트레칭을 하며 해가 떠 오르기를 기다린다. 동쪽 하늘은 주홍빛으로 물들어 가더니 동그란 해가 붉게 떠오르고 고남저수지에 비친 해가 물 위에 비추면 다시 발길을 재축해 동네 앞길로 나선다. 만보 걷기를 하기 위해서는 옆 동네까지 갔다 와야 만보가 채워진다.


조금 뛰는 걸음으로 저수지를 벗어나 옆 동네 논둑길을 따라 걸으면 새로 지어진 전원주택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집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산자락 끝까지 도달해 다시 돌아온다. 논길 따라 옆에는 고랑물이 졸졸졸 흐르고 논둑길에 이름 모를 잔잔한 하얀 꽃이 피어 있어 걷는 길에 위로가 된다.


부지런히 걸어 동네 앞 빈 밭에 돋아난 냉이를 하나하나 캐면서 그 향에 한번 취하고 하얀 뿌리가 긴 것에 감탄한다. 한 줌 캐서 집으로 돌아와 수돗가에 앉아 냉이를 깨끗이 씻으면 하얀 뿌리가 더욱 선명해지고 잎사귀는 싱싱한 연둣빛이다. 부엌으로 들어가 냄비에 물을 올리고 펄펄 끓으면 반은 살짝 데치고 반은 된장국을 끓인다. 냉이의 향긋한 내음이 집안을 맴돌며 봄의 향기를 끌어들인다.


여름 산책길에 보랏빛 아름다운 꽃이 피어있다. 대가 튼튼하게 올라오고 잎사귀는 가시가 돋아난 듯 만지면 따갑기도 하다. 바로 엉겅퀴꽃이다. 정말 오랜만에 보게 되는 꽃이다. 잎사귀에는 연두빛깔 가시 같은 뾰족한 가지가 빼곡히 모여 동그랗게 이루어진 꽃이다. 봄에 나는 잎사귀는 살짝 데쳐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한다. 아름답지만 가까이할 수 없어서 먼발치서 보고 있다. 걷다가 산기슭에 빨간 산딸기가 탐스럽다. 따서 한알 입에 넣으니 새콤한 맛이 입안을 맴돈다.


들길에 핀 꽃조차도 아름다웠던 고남리의 봄, 여름, 가을은 계절마다 피어나는 이름 모를 꽃을 보며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잊고 지냈던 소중한 사람도 함께 생각났던 시간이다. 걸으면서 보이는 높은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 길가에 피어난 꽃 조차도 나의 소중한 친구였던 고남리의 아름다웠던 산책길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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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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