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남리의 여름

개똥벌레를 만나다

by 맑은샘

벚꽃이 만발한 봄이 지나고 고남리에 여름이 왔다. 장맛비로 인해 뒤뜰을 따라 흐르는 수로에 물 내려가는 소리가 졸졸졸 정겹다. 마치 어린 시절 비 오는 날 집 앞 골목길 한편에 흐르는 개울물처럼. 3월 마당에는 온통 민들레로 노랑노랑 변했다. 조금 지나니 민들레 홀씨들이 하얗게 휘날리며 씨앗을 퍼트렸다. 4월에는 매실나무에 연봉홍색 수술을 달고 하얀 매실 꽃이 피었다가 꽃이 진 자리에는 초록색 매실이 방울방울 열렸다. 5월, 뒤뜰 밤나무에 하얗게 밤꽃이 피면 그 향기가 마당까지 퍼져 풍겨왔다. 마치 아카시아꽃 향기처럼 밤꽃의 향기가 그렇게 좋은 줄 모르고 살았었다.


밤나무 꽃이 누렇게 변해서 지고 나면 아기밤송이들이 연두색으로 열려 자라는 모양이 너무 사랑스럽다. 6월 중순이 되면 매실나무 아래 포장을 펼치고 나무를 흔들어 떨어진 매실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말린 후 설탕을 넣고 매실청을 담가 창고에 보관해서 숙성을 시켰다. 밭둑에 있는 감나무에 감꽃이 노르스름하게 피고 떨어지면 옛날 어릴 적 감꽃을 주워 명주실에 끼워 목걸이며 팔찌를 만들었던 생각이 났다. 아이들이 많았던 시절 깨끗한 감꽃을 주우려면 그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야 했다. 깨끗한 감꽃으로 만든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면 으쓱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듯 고남리의 봄은 꽃이 지고 열매가 열리며 여름으로 변해가고 있다.


여름마당은 백일홍 꽃이 가지각색으로 피었다. 연분홍 꽃, 보라색꽃, 흰색꽃이 피어 눈을 즐겁게 했다. 연못가 한쪽에 초록색대가 쑥 오르더니 분홍색 꽃이 피었다. 검색해 보니 상사화란다. 꽃과 잎이 서로 만날 수 없어 더 애절한 꽃 상사화가 지고 나면 초록색 잎사귀가 돋아났다. 뒷곁 밤나무 밑에는 장마가 지나고 나면 수로를 따라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흘러내려갔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깨끗해 발을 담그고 작년에 떨어진 밤송이도 치울 겸 첨벙첨벙 물장난을 했다. 마당에 핀 꽃을 보기 좋았지만 여름은 풀과의 전쟁이다. 비라도 한 번 내리고 나면 풀은 우후죽순으로 자라 매주 풀을 깎느라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우웅 정적을 깨웠다.


여름 텃밭은 심은 작물보다 풀이 더 자랐다. 풀 사이에 용케도 심은 상추, 호박이 자라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주었다. 자라난 상추 몇 잎 따서 쌈장에 쌈 싸서 먹거나 간장, 식초, 설탕 넣고 살짝 버무려 샐러드처럼 맛있게 먹었다. 애호박은 유용한 양식이었다. 연초록색 애호박을 잘게 채 썰고 양파 썰어 넣고 간장, 고춧가루, 고추장 넣고 보글보글 끓인 애호박찌개는 초여름 더위를 날리는 맛있는 밥상의 재료였다. 유월이 될 때까지 고남리는 서늘한 기온이다. 벽난로에는 아침, 저녁으로 장작을 때서 집안 온도를 데웠다.


뜨거운 여름, 매실나무 밑에 테이블을 놓고 있으면 산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예초기 돌리고 흐르는 땀을 등목 한번 해주고 나면 마주 앉아 막걸리 한 사발에 목을 축였다. 한낮의 태양은 뜨겁지만 서산너머로 해가 지고 나면 마당의 찾아온 고요와 함께 마당에 앉아 있으면 금세 시원해졌다. 도시에서는 복사열 때문에 지열이 발생하지만 땅은 해만지면 시원한 기온을 만들어 주었다. 선풍기, 에어컨이 없어도 잘 지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오면 마당에 의자 하나 놓고 앉아서 하늘을 본다. 선명한 별이 쏟아질 듯 가까워 보이고 북두칠성, 북극성, 카시오페아, 물병자리, 물고기자리, 어릴 적 배웠던 별자리를 헤보며 수없이 많은 별을 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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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려 연못 쪽을 보았을 때 연두 빛 불빛이 깜박깜박 거린다. '설마'라고 생각한 순간 반딧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릴 적 마당에 앉아 있으면 수많은 반딧불이가 불빛을 반짝이며 눈앞을 아른거리면 작은오빠는 반딧불이를 잡아 꽃무늬에 반짝이는 부분을 얼굴에 바르고 손목에 바르기도 했다. 반짝이는 것이 참 신기했었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 잠시 잊고 있었던 반딧불이의 추억이 되살아나 까만 밤하늘에 내려오는 별빛과 꽁지를 반짝이며 빛을 내는 반딧불이 불빛에 여름밤이 기대로 가득 차 더운 여름밤이 기다려진다.


고남리의 여름, 풀도 많고 물도 많고 꽃도 많았던 나의 첫 시골집, 그 땅을 일구고 풀을 베고 땀을 흘려도 마냥 좋았던 곳, 마당의 풀 한 포기, 뒷곁을 흐르는 개울물조차도 마음에 남아있는 고남리의 여름, 특히 한 주간 도시에서 살다가 깜깜한 밤 마당에 도착했을 때 밤하늘의 떠 있는 별을 보면 '그래, 이거면 됐지' 모든 것이 좋았던 고남리, 까만 밤하늘도 쏟아지는 별빛도 그리고 꽁지를 반짝이는 반딧불이조차도 그리운 고남리의 여름밤, 오늘밤에도 개똥벌레가 찾아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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