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밥상

엄마의 호미 끝에서 나왔다

by 맑은샘

햇살이 가득한 봄날의 아침, 노란 수선화가 말갛게 웃어준다. 엄마의 얼굴처럼... 유년시절 엄마가 해준 밥상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런데 그 음식을 해주지도, 가르쳐주지도 못한다. 걷고 있다가 누군가의 무덤 앞에 꽃이 놓여 있는 걸 보고 왈칵 눈물이 난다. 고부라진 할미꽃이 그런 날 위로하듯 수줍게 고개 숙이고 있다. 사무치게 그리운 날 엄마의 손에 들려있던 호미가 생각이 난다. 호미를 들고 잡초가 무성한 텃밭에 앉아 잡초를 뽑고 또 뽑았다.


그리움을 안고 그려보는 엄마의 밥상, 부엌에서 들리는 도마질소리, 맛있는 된장국 냄새가 나는 것처럼 그립고 그립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성품 좋고 인자한 아버지, 솜씨 좋은 엄마와 육 남매가 함께 살았던 그리운 고향집이 눈에 선하다. 끼니때를 제외하고는 엄마는 늘 밭에서 호미를 들고 살았다. 학교 다녀와 집에 아무도 없으면 뒷밭으로 간다. 밭고랑 사이 엄마의 손에 들린 호미는 고랑사이사이를 다니며 깨끗하게 잡초를 뽑았다. 엄마의 호미 앞에 놓인 작은 광주리 안에는 늘 반찬을 만들 푸성귀며 나물이 들어있다.


엄마가 뒷밭에 있는 걸 확인하고 집에 와서 공기놀이, 자치기, 땅따먹기 집안 이곳저곳을 다니며 숨바꼭질 놀이를 했다. 햇살 드는 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고 나면 서산 너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 엄마가 집에 왔다. 엄마의 광주리에는 보리싹도 조금 솎고 풀도 먹을 수 있는 것은 광주리에 담았다가 저녁 찬거리로 사용했다. 수건을 머리에 쓰고 몸빼바지 입고 속에 입은 메리야스는 땀에 절어 군데군데 해져도 빨아서 다시 입던 엄마였다. 해 질 녘 돌아온 엄마의 손에 든 보리싹을 주물럭주물럭 봄나물과 섞어 자근 솥에 된장 넣고 끓이고 가마솥에 보리밥 해서 온 식구가 둘러앉아 도란도란 밥을 먹으며 하루해가 진다.


비가 내리면 엄마가 쉬는 날, 호미도 쉬는 날, 비가 그치면 동네 뒤편 바위에 붙은 도롯을 주우러 갔다. 언니랑 동생이랑 바구니에 주워 담는다. 통통 불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을 샘가에 두면 바구니에 넣고 깨끗해질 때까지 헹구고 또 헹궈냈다. 검은색 도롯에 윤기가 자르르 나면 부엌에 가져와 요리를 했다. 간장, 부뚜막에 담근 막걸리식초, 설탕, 다진 마늘, 참깨 넣고 조물조물 무쳐준 후 샘에서 길어온 물을 한 바가지 부으면 도로지국이 되었다. 밥상에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새콤한 맛이 도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호미를 들고 감자고랑에 있는 풀을 캐도 캐도 끝이 없다. 엄마는 이걸 매일 했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호미는 쇠로 만들었지만 얼마나 흙을 긁어댔는지 닳고 닳은 몽당연필처럼 될 때까지 엄마의 호미질은 끝이 나지 않았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밭고랑 끝에 와서 뒤돌아보니 무성했던 풀밭이 말끔해졌다. 고랑에 있던 감자가 더 돋보였다. 엄마도 호미질을 하며 돌아봤을 때 깨끗해진 밭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겠지.


엄마의 호미는 봄, 여름, 가을이 될 때까지도 놀 틈이 없었다. 겨울이 되어야 엄마와 호미는 좀 쉴 수 있는 시간이다. 아침상 물리고 나면 뜨끈한 아랫목에 잠시 누워있던 엄마는 밀가루에 이스트를 넣고 아랫목에 넣어두었다가 작은방 솥에 배 보자기를 깔고 동그랗게 빚어서 찐빵을 만들어주었다. 앙꼬도 없이 그냥 부풀기만 했던 찐빵이지만 그 맛은 지금도 아련하다.


엄마의 손에 들린 호미는 우리를 먹이기 위한 도구요 수단이었다. 엄마의 호미질은 계속되었고 손끝에서 나온 푸성귀, 나물로 인해 자식들은 성장했고 점점 엄마의 호미도 힘을 잃어갔다. 호미를 꺼내고 문득 생각난 엄마의 희생이 오늘따라 더없이 값지고 소중했던 시간이었다. 나도 그런 엄마처럼 자식들 입에 들어갈 음식을 생각하며 오늘도 힘껏 호미질을 해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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