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가 좋았던 꼬꼬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놀이였다

by 맑은샘

돌아보면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잘 놀았기 때문이다. 마당은 흙이 단단하고 물이 자 빠지는 동네에서 제일 높은 집이었다. 햇볕이 잘 들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동네 놀이터였던 우리 집 마당


봄에는 산으로 들로 다니기 바빴다. 변변히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찔레에 새 순이 나면 가시가 단단해지기 전에 한 움큼씩 뜯어 잎사귀를 떼어내고 한 입 베어 물면 풀 맛이 나며 단물이 나왔다. 배가 고팠던 시절인지라 오물오물 거리며 먹기 바빴다. 삐비는 연두색 풀인데 쏙 뽑아 입에 물면 풋풋한 맛이 좋았다. 입 안에 넣고 계속 오물거리면 껌처럼 질겅질겅 씹혔다. 쑥이랑 냉이랑 캐서 집에 오면 엄마는 샘가에 앉아 오물조물 씻어서 보리싹이랑 합쳐서 된장 풀고 된장국을 끓였다. 구수한 된장향이 온 집안에 퍼지면 '꼬르륵꼬르륵' 고픈배를 채워주는 든든한 맛이었다. 옻칠한 동그란 상 하나 놓고 아버지랑 오빠는 상에 앉고 엄마랑 딸들은 작은 상에 앉아 보리밥 한 그릇, 김치, 된장국만 먹어도 행복했던 그 시절이다.


여름에는 그나마 푸성귀가 밭에서 나오기 때문에 먹을거리가 생겼다. 목화를 심고 고랑에는 오이 몇 개를 심었다. 연노랑 목화꽃이 피고 지면 단단한 열매가 열렸다. 연한 열매를 따서 한입 베어 물면 달콤한 맛이 느껴져 허기진 배를 조금은 달래주었다. 엄마 따라 풀매로 가면 고랑 사이사이에 열린 어린 오이를 따서 아기작 아기작 배어 먹었다. 여름 더위가 물러가며 물을 먹지 않아도 시원했던 오이맛, 한바탕 땀을 흘리고 오면 엄마는 국수를 삶았다. 찬물에 헹궈놓고 윗샘의 물을 길어다 설탕국수를 만들어 한 그릇씩 먹었다. 더운 여름 땀 흘리고 나면 냇가에 가서 옷을 입은 채로 멱을 감는다. 범바위산 아래 바위를 따라 흐르는 물은 장마가 지나고 나면 물살이 거셌다. 아랑곳하지 않고 높은 바위에 올라가 다이빙하고 한바탕 놀고 나면 냇가의 자갈을 주워 집으로 가져온다. 뒷곁에 놓아두고 손가락으로 돌을 튕겨 선을 그려가며 땅따먹기를 하고 공기놀이로 시간을 보냈던 나의 놀이터였던 뒷곁과 마당이 눈에 선하다.


가을에는 범 바위산에 꾸지뽕이 열렸다. 아버지 따라 산에 나무하러 가면 빨갛게 익은 뿌지뽕열매를 따주신다. 하얀 액체가 줄줄 흐르고 한 입 베어 물면 달짝지근한 맛이 그만이다. 지금은 몸에 좋다고 하여 많이 알려진 열매지만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범바위산에만 있었던 꾸지뽕 나무의 열매, 감나무에 홍시라도 보이면 긴 장대를 들고 홍시하나 따 먹으려고 높은 감나무 곡대기 까지 올라갔다. 다리가 후들거려도 달콤한 홍시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뒷곁의 밤나무에 알밤이 떨어지면 제일 먼저 먹으려고 일어나자마자 한 바퀴 돌아 주워온 밤을 생으로 베어 물었던 배고팠던 어린 시절, 가을에는 단단한 나뭇가지를 잘라 큰 자, 작은 자를 만들었다. 따을 일자로 깊게 파고 공격과 수비로 나누어 공격팀은 뾰족하게 판 땅에 작은 나뭇가지를 걸쳐서 긴 자로 떠서 멀리 날리면 수비는 그걸 받으면 아웃, 받지 못하면 자의 길이만큼 잰다. 다음은 왼손에 작은 자를 들고 큰 자로 쳐서 멀리 날린다. 잡으면 아뭇, 다음단계는 작은 자를 공중에 띄워 큰 자로 ㅎ나 바퀴 돌려 멀리 보낸다. 수비가 잡으면 아웃, 이런 놀이를 하다 보면 어느새 집집마다 엄마들의 ' 밥 먹어라' 부르는 소리에 흩어져 집으로 갔다.


겨울에는 하얗게 눈이 오면 작은오빠가 판자로 썰매를 만들었다. 뒤집어 철사를 양쪽에 박아주면 얼음 위를 지치는 썰매가 되었다. 송곳을 만들 때는 동그란 나뭇가지 두 개에 큰 나사못을 시뻘건 불에 달궈서 나무에 거꾸로 박아서 송곳을 두 개 만들어 얼음을 지치러 동네 앞으로 나간다. 온 동네 아이들이 다 나왔다. 장갑도 없이 언 손을 호호 불면서도 오빠가 만들어준 썰매를 타다 보면 이마에 땀의 송골송골 맺혔다. 종일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집으로 오면 소죽을 끓이고 잔불에 고구마를 넣어서 구워주신 아버지 노란 속살이 드러난 고구마를 뜨거워도 한 입 베어 물면 얼음 위에 추웠던 한기가 저절로 식었다. 빨간 내복 입고 도톰한 옷 한 벌로 겨울을 나야 했던 춥고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 따라 자연에서 뛰어놀고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이용해 마음껏 놀았던 그 시절로 인해 지금의 나를 완성했다고 생각한다. 아련한 그 시절, 배는 고팠지만 어딜 가나 먹을거리가 있었던 자연 속에서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다. 지금의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실컷 놀았던 놀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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