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수제비
비 오는 날은 수제비와 부침개가 먹고 싶어 진다. 그렇다고 수제비와 부침개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입 짧은 남편은 아무리 맛있어도 한 장 부치면 그만이고 칼국수나 수제비는 먹지를 않는다. 그래도 비가 내리는 날은 부침개라도 한 장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마당 한쪽에 덩그러니 열려있는 애호박 하나를 따서 곱게 채 썰어 부침가루와 계란 한 개를 넣고 물을 적당히 넣어 반죽을 만들었다. 딱 한 장만 만들기에는 내 손이 너무 크다. 달군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지지직' 소리가 나게 한 국자 반죽을 두르고 평형하게 펴준다. 노릇하게 익으면 뒤집게를 이용해 한 번 뒤집어 주고 적당히 눌러 주어 먹음직한 호박전을 부쳐낸다. 접시에 담아 한입 한입 먹으며 비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다.
비 오는 날 수제비와 부침개가 그리운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 먹었던 기억 때문일 것 같다. 농사일로 늘 바빴던 엄마, 아버지, 동트면 들에 나가 일을 해도 쌀밥을 먹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여섯 남매 입에 풀칠이라도 해 주려면 엄마의 부엌은 가마솥에 쌀 한 줌과 보리쌀로 밥을 지어 아버지와 오빠 밥그릇에는 쌀이 들어가고 나머지 식구들은 보리밥을 먹었다. 당연한 걸로 알고 먹었지만 늘 마음으로는 쌀밥이 먹고 싶었다. 점심은 아침에 먹은 찬밥을 남겼다가 물을 넣고 가마솥에 푹 끓인 밥이나 고구마, 감자를 삶아서 끼니를 때웠다.
비가 내리는 날은 엄마 아버지가 농사를 쉬는 날, 엄마는 별미를 준비했다. 빻아온 거칠한 밀가루를 반죽해서 아랫목에 잠시 놓아두었다가 가마솥에 멸치 몇 마리 넣고 푹 끓인 육수에 수제비를 뚝뚝 떼어 애호박 썰어 넣고 푸짐하게 끓여주었다. 아궁이에서 매캐한 연기가를 마셔가며 수제비를 떼서 넣던 엄마는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두르고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수제비를 끓여냈다. 먹성 좋은 육 남매는 대접에 가득 담긴 국물을 훌훌 마시며 쫀득한 식감의 수제비를 한 그릇 가득 먹고 또 먹었다.
그런 날 저녁이면 어김없이 탈이 났다. 잠자리에 누워 배가 살살 아파오면 깜깜한 마들을 지나 외진 곳에 있는 변소까지 가기가 무서웠다. 안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소를 키우는 외양간과 붙어 있었지만 큰 독 위에 널빤지 두 개 올려놓고 뒤편으로는 뒤엄자리가 있고 바닥에는 아버지가 잡아서 담근 뱀술이 몇 병 놓여있었다. 벽은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곳에 흙을 발라 바람이 솔솔 통했으나 깜깜한 변소를 혼자 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옆에서 자고 있는 언니를 깨운다. "언니야, 나 배 아파" 어김없이 언니는 핀잔을 쏘아댄다. "계집아이가 그럴 줄 알았다. 적당히 먹으라니까" 그렇게 말해 놓고도 내 손을 잡아주는 언니다.
깜깜한 마당을 지나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밖에 서 있는 언니가 있는지 궁금하다. '언니야, 거기 있지?' 잠시 정적이 흐를 때 등에 솜털이 바싹 솟으며 더럭 겁이 났다. 볼 일을 급히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오면 언니는 그 자리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 '빨리 들어가자' 언니 손을 꼭 잡고 깜깜한 밤하늘의 별 빛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모습도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와 잠을 청한다. 그렇게 수제비를 먹는 하루도 어둠 속에 묻힌다.
세월이 흐른 지금 비 오는 날이면 걸쭉하게 끓여진 수제비가 그립다. 까만 밤 하늘에 쏟아지던 별빛과 변소에 앉아 있으면 벽 사이로 솔솔 들어오던 바람도 그리움으로 남는다. 비 오는 날 언니와 함께 엄마가 해주던 추억의 수제비를 다시 한 번 끓여 먹고 싶다. 그리고 언니에게 전해야겠다. '언니야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