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넓은 세상으로

초등학교에서

by 맑은샘

동네 고샅이 온통 놀이터였던 꼬꼬마 시절을 지나고 여덟 살 봄,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왼쪽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접오 옷핀으로 고정해서 달고 엄마 손잡고 운동장에 서 있는데 여러 동네에서 모두 모이는 곳이라 아이들 소리로 바글거렸다. 구령대 위에서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한 줄로 서서 앞으로 나란히를 배우고 교실로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복도 앞에 나무로 된 신발장에서 하얀 실내화로 갈아 신고 교실로 들어서면 초록색 큰 칠판이 벽에 붙어있고 선생님 책상이 있다. 번호 순서대로 자리를 알려주는 선생님은 따라 두 명씩 짝을 지어 자리에 앉았다. 먼 동네 아이들까지 모두 합쳐 놓으니 두 명씩 앉아도 줄이 길게 늘어져있다. 한 반의 인원은 62명이다.


연필도 한 번 잡아보지 않고 입학하고 나니 첫날부터 공책에다 내 이름 쓰는 것을 먼저 배웠다. 선생님이 꼭꼭 눌러서 내주신 숙제도 가방에 챙기고 아침마다 출석을 부르는 선생님의 물음에 '네'라고 대답하는데 얼굴이 빨개졌다. 가슴은 두근두근 혹여라도 이름이 불릴까 늘 조마조마했다. 신학기, 학교에서 나눠주는 책을 받아서 집으로 오는데 가방이 무거웠다.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숙제를 해 놓고 동생과 놀았다. 밭에 가신 엄마를 기다리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면 그때야 마당으로 들어서는 엄마다. 종일 밭일하고 와서도 쉴 새 없이 쌀 씻어 가마솥에 넣고 하얀 쌀뜨물 받아 우거지 넣고 된장국 끓이고 장독에 가서 묵은지 꺼내와서 도마에 쫑쫑 썰어 담고 마당에 묻어둔 무 두 개를 꺼내서 깨끗이 씻어 도마에 놓고 채를 썰어 무생채를 뚝딱 만들어 밥상에 올린다. 중학생인 큰오빠, 초등학생 언니, 작은오빠, 나까지 밥상에 앉아 흰쌀밥에 무생채 쓱쓱 올려 비벼먹으면 설거지는 언니랑 나랑 한다.


초등학교 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호롱불아래 앉아서 엄마는 바느질하고 이불속에서 장난치다 잠이 든다. 달그락달그락 부엌에서 들려오는 그릇 부딪치는 소리에 이불속으로 더 숨어드는 우리들, 새벽부터 엄마는 밥을 한다. 큰오빠 중학교까지 한 시간을 걸어가야 하기에 새벽밥을 먹고 걸어서 간다. 우린 동네 앞에 학교가 있어 여덟 시면 출발해도 넉넉하다. 언니 오빠 따라 신발가방 들고 졸졸 학교에 도착하면 또 하루가 시작된다. 월요일은 용의 검사가 있는 날이다. 손에 때가 있는지 손톱은 잘랐는지 일일이 자를 들고 다니며 검사한다.


여름 무렵이었다. 선생님께서 용의 검사를 하고 대부분 씻지 않고 다니는 우리 반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앞을 흐르는 개울가로 갔다. 이유는 깨끗이 씻게 하기 위해서이다. 맑은 모래로 이를 닦고 돌멩이를 주워 손등에 있는 때를 벗기도록 선생님이 시범을 보였다. 뽀드득뽀드득 이를 닦아보고 손등에 불은 때도 물에 불려 벗겨냈다. 그렇게 우린 냇가에서 말갛게 씻고 학교로 다시 돌아왔다.


삼 학년부터는 보리를 벨 무렵 집에 있는 낫을 들고 노력봉사를 하러 갔다. 친구네 논을 정해서 반 친구들이 모두 가서 논에 익은 벼를 베는 것이다. 한 줄로 서서 오른손에 낫을 들고 왼손은 보리를 잡고 밑둥에 낫을 대면 쓱쓱 하고 베어져 나갔다. 여럿이서 함 꺄하니 일이 금방 끝났다. 학교 앞에 있는 논을 몇 개를 베고 나면 집으로 하교한다.


학교 운동장은 늘 아이들로 복작거렸다. 반공교육이 진행되던 때였다. 매주 공습사이렌이 울리면 운동장가에 있는 반공호로 피신하는 훈련을 했다. 혹시라도 공산당이 쳐들어오면 그곳으로 숨는 훈련이었다. 어린 마음에 숨을 할딱거리며 전속력으로 달려 엎드려 꼼짝도 않고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가을이면 운동회 준비로 매일 운동장에 모여 매스게임을 연습했다. 깃발을 들고 학년마다 다른 것을 연습했는데 줄을 맞추고 깃발을 흔들어 한 동작으로 맞추는 것이다.


가을 추수가 끝날 무렵 시작된 운동회는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했다. 농사를 짓던 부모님들도 함께 하는 시간이기에 운동장은 사람들로 꽉 찼다. 만국기가 펄럭이고 하얀 가루로 트랙을 만들고 아이들도 어른들도 들뜨게 만드는 축제의 날이었다. 부모님은 운동장 가에 자리를 잡고 아이들은 마스게임과 달리기, 줄다리기를 하며 청군백군으로 나누어 게임이 진행되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응원에 열심이었다. 달리기를 하러 출발선에서 선생님의 권총소리를 기다리던 두근거림은 지금도 생생한 기억이다.


그렇게 초등학교 생활은 매일매일 육 년 동안 한 번의 결석이나 지각도 없이 열심히 다녔다. 작은 동네 고샅을 놀이터 삼아 놀았던 꼬꼬마가 좀 더 넓은 학교라는 세상에 나가 다양한 경험을 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며 놀이와 공부에 눈을 떠서 세상이라는 견문을 넓혀 나갔던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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