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모든 것은 길 위에 있다

중학교를 가는 길

by 맑은샘

우리 동네에는 중학교가 없다. 중학교를 가려면 한 시간 거리를 걸어서 가야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진학하면서 엄마는 샘물을 길어다 새벽밥을 하였다. 학교에 늦지 않게 가려면 7시에는 출발해야 지각하지 않는다. 가방 속에는 도시락과 5,6 교시 수업에 든 책과 공책이 든 가방을 메고 동네 앞 어귀를 지나면 비포장 신작로가 나온다. 길을 따라가면 용강 1구에서 많은 친구들이 합류하여 넓은 비포장도로는 까만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가득하다. 마을을 지나 산 입구에 저수지가 나오고 본격적인 산길로 들어선다. 산길로 접어드는 길은 90도 정도의 가파는 경사길이다. 저수지는 외딴곳에 있었고 여름철 장마에는 저수지의 물이 넘치면 학교를 가지 못할 때도 있었다. 가끔 저수지에 하얀 소복을 입고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다.


중학교를 진학하면서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 이성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누가 누구랑 사귀고... 동네 친구들은 여자만 5명이었다. 학교를 같이 오가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들어주었다. 그중에는 우리 보다 한 살 위지만 일 년을 쉬고 학교를 다닌 친구도 있어서 언니라 부르며 우리가 잘 따랐다. 우리 몸의 변화에 대해서도 물어보면 잘 알려주었다. 그래서인지 신체성장속도도 조금 빠르고 이성에 눈을 뜬 것도 빨랐다. 아랫집에 사는 순자는 동창이랑 좋아하는 사이였다. 가끔 학교가 끝나면 만나기 위해 우리끼리만 걸어올 때도 있었다. 동네 앞에서 점빵을 하는 유임 이는 공부를 잘했다. 학교가 끝나면 점빵을 보면서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시험기간 새벽버스를 타고 학교 가는 걸 제외하고는 우리는 늘 걸어서 학교를 다 다녔다.


3학년이 되면서 여동생이 입학을 했다. 친구들과 걸어 다니던 길을 동생도 데리고 걸어갔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아침 등굣길에 버스를 탔다. 학생들이 많아서 임시로 버스를 증차해 주었다. 동생은 친구들이랑 걸어간다고 해서 3학년인 우리들만 버스를 탔다. 버스는 이미 만석이었다. 학생들로 통로까지 꽉 끼어 있어 몸을 돌릴 여유조차 없었다. 저수지 언덕길을 버스가 털털거리며 올라간다. 평소처럼 버스 안에서 손잡이를 잡고 재잘거리던 우리들은 버스가 갑자기 속력을 내는 것이 이상했다. 언덕길을 오른 후 다음은 꼬부라진 내리막길 옆에는 산중턱은 깎아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천길 낭떠러지다. 버스는 굉음을 내며 언덕길을 달린다. 우린 식은땀이 났다. 버스기사는 '학생들 손잡이를 꽉 잡아요'라고 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이다. 버스기사가 운전대를 왼쪽 산 쪽을 향해 틀었다. 다행히 버스는 낭떠러지로 구르지 않고 언덕을 들이받고 비스듬히 누웠다. 버스 안에 있던 우리들도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졌다.


그 작은 시골 동네에 난리가 났다. 경찰차가 오고 학교에서는 선생님들도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차가 누우며 볼을 바닥에 쾅 부딪치며 볼이 발갛게 부어올랐다. 걸어오던 동생들이 저수지를 지나는데 갑자기 언덕길을 버스가 급하게 오르고 나서 사고가 났다는 걸 알고 '오메 우리 언니 죽었다'며 울면서 뛰어왔다. 작고 작은 동네에서 버스가 사고가 났으니 온 동네가 시끌벌 쩍 했다. 우리 화순읍내에 있는 병원에 다녀와서 다시 학교생활을 했다. 그 후 버스를 타고 그 낭떠러지를 지날 때는 식은땀이 난다.


학교 가는 길 우리의 일상은 매일 반복적이었지만 그 일상을 잘 지내왔다. 봄이면 연분홍 진달래가 온통 붉게 물든 산길을 걸었고 여름이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방울을 식혀주는 산바람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다. 가을 붉게 물든 단풍과 산에 열린 열매들의 풍성함을 알았고 겨울이면 미끄러운 운동화에 언덕길을 조심조심 걷는 법, 하얀 눈이 쌓인 산길을 걸으며 겨울의 아름다움도 알게 되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길 학교 앞 가게에는 우리가 들려야 하는 참새방앗간 같았다. 오백 원, 천 원씩 걷어서 튀김, 떡볶이를 함께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 공부이야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가 더 많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거리고 호호거리다 보면 어느새 집에 도착한다. 학교 가는 길 함께 걸었던 그 길 위에서 경쟁자, 동반자, 상담자였던 그 시절의 친구들아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니? 인생의 모든 것은 길 위에 있었음을, 그 길을 함께 걸었던 친구들이 있었기에 현재를 살아가는 힘을 얻었음을 알고 있다. 다시 한번 그 길을 걸어보자.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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