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밭을 지나니 생강냄새가 났다

휴일아침 산책길

by 맑은샘

새벽어둠을 뚫고 습관처럼 운동화를 신는다. 뜨거운 물 한잔을 들고 잠시 멍하니 한 모금 두 모금 마셔본다. 뜨거운 물이 식도를 지나 위장이 꿀꺽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느낌은 몸이 다시 깨어나는 느낌을 주어 기분까지 좋게 한다. 밖은 일출이 시자되기 전 서쪽하늘에 둥근 보름달과 동쪽하늘에 떠오르는 해가 공존하고 있다. 아랫집 장군이가 멍멍하고 짖는다. '장군아'라고 부르니 알아듣고 멈춘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니 고남저수지가 눈앞에 있다. 비상등을 켜며 승합차가 멈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서 있다가 차량뒤로 지나가니 맞은편에서 구부러진 허리에 작은 보따리를 짊어진 어르신이 한 분 나오신다. '누구여?' 하고 물으신다. '안녕하세요, 산책하는 사람이에요' 하니 '양파 심으러 갈라고' 하신다. 구부러진 허리로 차량에 오르시며 활짝 웃는 모습이 참 좋다.


지난주 아침 산책 때 발견한 '쉼이 있는 공원'을 향해 안개 자욱한 새벽길을 걷는다. 주변 밭에는 고구마를 캔 황토흙과 타공 한 비닐을 덮고 양파와 마늘을 심어 넓은 밭에 푸릇푸릇 한 싹이 올라와 마치 봄을 느끼게 한다. 마을을 지나 농로사이의 개천을 걸으니 물소리가 졸졸졸 흐른다. 잔잔한 물소리가 마음까지 평온하게 해 준다. 앱을 켜니 '임영웅의 모래알갱이'가 흘러나온다. "나는 작은 바람에도 흩어질 나는 가벼운 모래알갱이, 그대 이 모래에 작은 발걸음을 내어요. 깊게 페이지 않을 만큼 가볍게... 어쩜 이렇게 가사를 잘 붙일까? 부러워하며 걷는다. 아직은 이른 새벽길이라 인적이 드물다. 주변풍경과 하늘의 변하는 모습을 보며 걷는다.


익숙한 풍경 교회십자가가 보인다. 쉼이 있는 정원은 교회 바로 뒤편이다. 고요한 아침 가꾸어진 정원에 오롯이 들리는 새소리와 새벽안개에 집중하며 작은 벤치에 앉아 잠시 내려놓는다. 힘들었던 몸도 마음도....

마치 천국에 온 것처럼 일시 평안이 찾아온다.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진다. 잠시 멍하니 고개를 들어본다. 그제야 동쪽 산 끝자락에 붉게 물든 하늘사이에 불덩이가 하나 올라오기 시작한다. 찰칵 사진 한 장을 남기고 다시 집으로 향한다. 들판을 지나 돌아오는 길 생강냄새가 풍긴다. 킁킁 거리며 찾아보니 하얀 서리를 맞아 잎사귀는 하얗게 시들었지만 아직 캐지 않은 생강밭에 생강이 그득하다. 아! 이 냄새구나 한 참을 들여다보다 기분 좋게 발길을 향했다.


하늘, 바람, 새벽안개 그리고 길 위를 걷고 있는 나, 둑길에 농사를 짓고 고춧대, 들깻대, 가지나무들이 버려져 있다. 싱싱한 빨간 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양파를 심으려고 수확해서 버린 것이라 아깝다. 주머니에 비닐봉지가 있어서 몇 개 따서 넣었다. 길가에는 노란색 들국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한 줄기 따서 코 끝에 대본다. 은은한 국화향이 온몸을 감싼다. 집이 보인다. 마당에는 남편이 빗자루로 거미줄을 걷고 있다. 텃밭에 무를 한 개 뽑아서 주방으로 향했다. 쌀을 씻어서 전기밥솥에 넣고 무는 깨끗이 씻어 도마에 놓고 칼로 채를 썰어 스텐볼에 담고 굵은고 금, 고춧가루, 다진 마늘, 설탕, 고추장, 참깨, 마지막으로 참기름 한 방울 넣고 조물조물 무쳤다. 어제 마트에서 산 콩나물은 콩나물은 씻어서 냄비에 넣고 굵은소금으로 간을 하고 산책길에 따 온 빨간 고추를 쫑쫑 썰어 넣으니 칼칼한 맛이 일품이다.


흰쌀밥과 콩나물국, 무생채, 김치, 계란 푸라가 놓인 쟁반을 들고 햇살이 드는 툇마루에 앉아 아침밥을 먹는다. 남편은 콩나물국을 한 입 뜨더니 '아, 칼칼하니 좋다'라고 표현해 준다. 산책길에 따온 빨간 고추 이야기를 해 주고 버리기 아깝다, 정원의 풍경도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하고 생강밭의 생강냄새, 들국화향을 맡은 이야기 새벽차를 타고 양파 캐러 가시는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 이야기를 하며 나란히 밥을 먹는다. 나란히 앉아 햇살을 받으며 아침을 먹는 이 시간 나의 맘속에 행복감이 충만하다. 걸으니 좋고 햇살을 받고 좋은 공기를 마시고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오늘 이 아침이 참으로 구하고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는 그대가 있어 참 좋은 날이다.

월요일 연재
이전 15화2020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