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e You Next Year

은퇴보다 장수를 전제로 한 삶의 설계

진료실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수의사는 병보다 사람의 성향과 기대치 즉 전제를 더 자주 보게 된다.

맥스는 올해 열일곱 살이 된 치와와다.
주인은 미스 드와일.
그녀는 단 한 번도 “이제 나이가 많아서요”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대신 병원에 올 때마다 예방약을 항상 1년 치를 사 간다.
계산을 마치고 문을 나서며 늘 같은 말을 남긴다.

“See you next year!”

그 말에는 망설임이 없다.
맥스는 내년에도 살아 있을 거라는 전제가 이미 그녀의 삶에 깔려 있다.
그래서 준비도 늘 1년 단위다.
내년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행동도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 두들리는 열두 살 된 또 다른 치와와였다.
주인은 미스 슈메이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이도 많은데, 먹고 싶은 건 그냥 먹게 하려고요.”
“혹시 모르니까 예방약은 6개월 치만 주세요.”

그 말속에는 분명 사랑도 있었고,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또 하나의 전제가 담겨 있었다.
‘오래 살지는 않을 거다’라는 전제였다.

그 이야기는 벌써 2년 전이다.
결과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예상하는 그대로다.
두들리는 별나라로 떠났고,
맥스는 오늘도 씩씩하게 병원에 들어와
예방약 12개월치를 사고
“See you next year!”를 남기며 경쾌하게 문을 나섰다.

나는 이 차이를
관리의 차이, 운의 차이, 체질의 차이로만 보지 않는다.
그보다 먼저 전제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내년을 확신하고 행동했고,
누군가는 남은 시간을 가정하며 선택했다.
그리고 그 전제는
강아지의 삶뿐 아니라
주인의 태도와 준비, 선택의 밀도까지 바꿔 놓았다.

이 장면을 반복해서 보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사람의 삶을 떠올리게 되었다.

언제부터 우리는
“어차피 곧 늙는다”
“평균 수명은 이 정도다”
라는 전제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신경가소성이라는 개념은 말해 준다.
뇌와 몸은 나이를 따라 자동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삶을 전제로 설계하느냐에 따라 그 방향으로 재구성된다고.

조기 은퇴를 전제로 하면. 뇌는 멈출 준비를 하고
몸은 쓰임을 줄이는 쪽으로 적응한다.

반대로
“나는 100살까지 살 사람이다”라는 전제를 두면
뇌는 배울 이유를 찾고
몸은 오래 쓰이기 위한 질서를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은퇴를 목표로 살지 않기로 했다.
나이가 아니라
선택권을 유지하는 상태를 목표로 살기로 했다.
언제까지 일할지는 수명이 아니라
체력과 정신, 그리고 내가 설계한 삶의 구조가 결정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맥스의 주인이 매년 1년 치 예방약을 사듯,
나 역시 내 인생을
‘곧 끝날 이야기’가 아니라
‘계속 이어질 이야기’로 전제하며 살고 싶다.

어떻게 살 것이라 믿느냐는 전제는
그 믿음을 품은 존재 전체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 방향으로 데려간다.

나는 빨리 끝내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깊게, 선택하며 살기 위해
오늘을 설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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