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인간」 : 내면의 벙커로 자신을 지키며 현실적 목표를 세우는 사람.
갑작스레 큰 일이 생겨도 덤덤한 사람.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사람.
“다음”, “하면 되지”를 외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태어난 걸까요, 아니면 그냥 낙천적인 걸까요?
제가 본 ‘벙커인간’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단단한 방어 기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실패를 오래 곱씹지 않습니다. 실패에서 의미를 찾아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리합니다. 스스로를 비난하는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서 다시 방향을 잡습니다. 남들은 포기라고 부를지도 모르는 순간에도, 이들은 말합니다.
“내가 한 발 뒤로 물러선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야”
저는 이런 사람을 ‘벙커인간’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 벙커인간 (Homo Bunkerianus)
1) 내면에 단단한 벙커를 가지고 있어, 외부의 비판이나 실패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
2) 실패를 오래 붙들지 않고, 배울 점만 챙겨 현실적인 방향을 설정하며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대표 습성 : “그럴 수 있지”적 사고
- 이름: 서다연
- 나이: 26세
- 직업: 취준생
- MBTI: ESTP
- 취미: 주식 투자, 실용서 읽기
“다연아, 괜찮아?”
민지가 다연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민지는 다연이 오늘 오후 디자이너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민지는 다연이 울상일 거라 예상하고, 위로 한마디라도 해주려고 온 거였다. 그런데 다연의 표정은 의외로 평온했다.
"어, 괜찮아. 오히려 좀 홀가분한데?"
민지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했다.
“아니, 홀가분하긴 왜 홀가분해? 너 진짜 이 회사 준비 열심히 했잖아. 포트폴리오 만든다고 며칠 밤을 밤새우기도 했고.”
다연은 민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열심히 준비한 건 맞아. 근데 생각해 보니까, 그 회사 진짜 바쁠 거 같더라고. 내가 듣기로는 밤낮 없이 프로젝트 돌린대. 나 같은 야근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안 맞았을지도 몰라.”
민지는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그렇지, 진짜 괜찮아?”
다연은 민지를 바라보며 킥킥 웃었다.
“솔직히 조금은 합리화일 수도 있지. 근데 말이야, 안 맞는 회사에 들어가서 스트레스 받느니, 이렇게 빨리 탈락해서 시간 낭비 안 한 게 낫지 않아?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나한테 맞는 곳 찾아보는 게 좋을 거 같아.”
민지는 다연의 태도에 감탄했다.
다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난 잘 될 때까지 계속 지원하면 돼. 사실 이번에도 많이 배웠어. 다음 면접 때는 더 자신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걱정 말고 술이나 마시러 가자”
술잔이 돌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다. 누구는 일 이야기, 누구는 연애 이야기.
“야, 다연아. 너 코인 어떻게 됐어? 이번에 난리 났다던데.”
조용했던 다연이 고개를 든다. 다들 슬쩍 눈치를 본다. 위로를 해야 할 타이밍인가?
다연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휴대폰을 꺼내 차트를 확인한다. 그리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음… 많이 떨어졌네.”
끝이었다. 한숨마저 나오지 않았다.
“야, 너 진짜 괜찮아?”
다연이가 맥주 한 모금 마시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일단 아직은 던질 타이밍 아니야.”
우리는 멍해졌다. 코인이 반 토막 났는데, 뭐가 더 중요하단 말인가.
“그게 무슨 뜻인데?”
다연이가 휴대폰 화면을 우리 쪽으로 돌렸다.
“봐봐. 지금 시장 전체가 빠졌지? 지금 팔면 바보 되는 거야.”
“근데 다 잃을 수도 있잖아. 어떻게 멘탈 관리하냐? 난 못 해 그런거.”
“그치 다 잃으면 빡치긴 하지. 근데 그럼 뭐가 바뀌나.”
다연이가 술잔을 내려놓는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손절할 타이밍도 아니야. 화낼 시간에 다음을 고민하는 게 낫지.”
“좀 더 지켜보다가 상황 보고 추가 매수할지 결정할 거야.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움직여야지.”
“만약 더 떨어지면?”
다연이가 피식 웃는다.
“그럼… 인정하고 손절해야지.”
“야, 넌 진짜 마인드가 단단하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거지.”
벙커인간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이 없는 것도, 무조건 강한 것도 아닙니다.
이들은 ‘어떻게든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버틸 가치가 있는 걸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일이든 감당할 수 있는지 먼저 판단하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만큼만 움직입니다.
벙커인간은 방어력이 높은 게 아니라, 언제 방어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입니다.
무조건 견디지 않고, 포기해야 할 땐 미련 없이 내려놓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사람입니다.